며칠 전 온라인 진로체험 교육에서 한 학생이 제게 던진 질문입니다. 순간 망설였습니다. 대답이 금방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기자가 되고 싶다는 학생들에게 "꿈을 포기하지 말라"고 해놓고, 정작 제가 왜 기자가 됐는진 선뜻 말하기 어려웠습니다.
기억의 시계태엽을 15년 전으로 감아 돌렸습니다. 저도 기자가 되려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을 테니까요. 이름 석 자 뒤에 ‘기자’라고 부르고 불려 온 동안, 왜 기자가 되려고 했는지 잊고 산 모양입니다.
정치부 기자를 하다 보니 유세현장 취재를 꽤 많이 했는데요. 선거에 출마한 후보들이 연설에서 빼놓지 않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약자와 서민 편에 서겠습니다.” 곰곰히 생각했습니다. 저 역시 그런 마음으로 기자가 되려고 하지 않았을까.
그때 당선된 정치인들은 약자와 서민을 위해 얼마나 많은 일을 했을까요? 장애인과 여성, 소수자의 인권은 존중받고 안전해졌나요? 어린아이와 어르신들은 안심하고 돌봄 지원을 받고 있나요? 중소상인과 자영업자, 서민들의 주머니는 두둑해졌을까요?
저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기자답게' 살아왔고, '기자답게' 살고 있는가. 내가 쓴 기사는 사회적 약자와 서민을 얼마나 대변했는가, 세상은 또 얼마나 이롭게 만들었나, 강자에 약하고, 약자에 ‘갑’으로 살진 않았나.
돌아보면, 저는 초년 기자 시절 혈기만 넘쳐 좌충우돌했습니다. 취재 과정에서 화가 나면 분을 삭이지 못했습니다. 물을 먹으면(낙종) 잠들지 못할 만큼 치열하게 살았다고 자부합니다. 언제부터인지 긴장이 풀리고 일상에 익숙해졌나 봅니다.
‘불공정을 바로잡아 세상을 바꾸고, 약자 편이 되겠다’ 던 초심은 안드로메다로 사라졌나 봅니다. 기자로서의 성공만 좇은 건 아닌지 얼굴이 화끈거립니다. 음지보다 양지를 찾지 않았나 부끄럽습니다. 겸손하거나 지혜롭지 못했습니다. 학생들의 질문은 저를 돌아보며 성찰하고, 다시 배우는 동기부여가 됐습니다.
“사람이 살아 있어서 좋은 건 다시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권시우 문학 테라피스트
내가 쓴 기사는 세상을 얼마나 바꿨나
저는 학생들에게 열정과 용기, 지혜와 겸손이 기자에게 필요한 자질이라고 했는데요. 그것은 곧 제가 잃지 않아야 할 소명이자, 본분이고, 가치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언론사와 기자가 존재합니다. 자질 부족, 양심불량 언론사와 기자들이 숱합니다. 진실과 사실 보도보다 이익 창출에만 매달려 사회 질서를 혼탁하게 만드는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사회적 공기(公器)가 아니라 흉기로 전락했다는 지적도 받습니다. 그래서 저는 언론개혁 없이 검찰개혁, 사법개혁, 정치개혁은 요원하다는 말에 공감합니다.
불의에 저항하고, 비겁하지 않으며, 정론직필 하는 기자들이 세상에 많아지길 바랍니다. 그런 기자가 되겠다고 언론고시를 준비하고 있는 ‘예비 언론인’을 응원합니다. 그런 기자들을 많이 길러내는 언론사가 차고 넘쳐 세상이 살기 좋게 바뀌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잘하겠습니다.
●대문사진: 이용마 <"세상은 바꿀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MBC뉴스 이용마입니다> 책 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