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집 ‘계란꽃’ 길을 걷다
'개망초'보다 곱고 예쁜 그 이름
주말, 고향 집에 들렀습니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동네 한 바퀴 산책을 나섰습니다. 며칠째 폭염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몇 분 걷지도 않았는데 땀이 비 오듯 쏟아집니다. 공기는 습하고, 축축하고, 끈적거립니다.
돌아갈까 하다가, 걸어온 길이 아까워 좀 더 걸었습니다. 하천 변으로 접어들었을 때입니다. 폭이 2미터 정도인 둑길 옆으로 초록색 배경에 희고 고운 꽃길이 펼쳐졌습니다.
어릴 적 ‘계란꽃’이라고 불렀던 꽃입니다. 본래 이름은 '개망초'인데요. 저는 그냥 ‘계란꽃’이 더 곱고 예쁩니다. 꽃말은 '화해'라고 합니다. 추억 돋는 계란꽃 길을 걷습니다.
봉평 메밀꽃만 소금을 뿌려놓은 줄 알았더니. 여기는 굵은소금에 노란 알맹이가 알알이 박혀 숨이 막힐 지경입니다. 날은 덥지만, 눈과 마음은 시원합니다.
봉평 메밀꽃만 소금을 뿌려놓은 줄 알았더니. 여기는 굵은소금에 노란 알맹이가 알알이 박혀 숨이 막힐 지경입니다.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붓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이효석 <메밀꽃 필 무렵> 중
둑길을 좀 더 걸었습니다. 소나기가 지나간 자리에서 풀냄새와 흙냄새가 올라왔습니다. 물가에는 더위에 지친 오리 떼가 오도카니 옹크려 있고, 황새인지 백로인지 모를 새 두 마리가 긴 다리를 물속에 담그고 먹이를 찾는지 두리번거립니다.
순간, 바람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에 비행기 지나는 소리가 납니다. 놀란 오리 떼가 푸드덕 날았고, 흰 새들도 깃을 펼치고 창공을 향해 날아오릅니다.
오리 떼와 흰 새의 날갯짓은 달라도 너무 다릅니다. 오리들은 순발력 있게 횡에서 횡으로 날고, 흰 새는 침착하고 기품 있는 자태로 아래에서 위로 서서히 오릅니다. 그리고 날아간 새들은 오래된 상수리나무 꼭대기에 내려앉습니다. ‘저 위에 둥지를 틀었구나’
흰 새가 집을 지은 상수리나무는 어릴 적 친구들과 열매를 줍던 그 나무였습니다. 내 아버지의 아버지 때도 있던 나무이니, 100년은 족히 됐을 ‘산신령 나무’입니다.
가을바람에 후드득, 떨어진 상수리를 주워다 마당에 자리를 깔고 말려주면 껍질이 잘 벗겨집니다. 그걸 가루로 빻아 묵을 쑤어먹던, 그런 날이 있었지요.
시골 사람들은 부지런합니다. 날이 더워지면, 새벽바람으로 일하러 나옵니다. 논물을 보고, 밭에서 김을 매고, 토마토와 옥수수와 애호박과 오이와 가지와 풋고추를 푸짐하게 따 집에 갑니다. 낮에는 더위를 피했다가 저녁 무렵 다시 논과 들로 갑니다.
그래서 한 시간 동안 이어진 한낮 산책길에 마주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코까지 가렸던 마스크를 벗어 손목에 걸었습니다. 엄마 품처럼 포근하고 아늑한 이곳은, 제 고향 성거입니다.
'이제 그리운 것은 그리운대로 내 맘에 둘거야. 그대 생각이 나면 생각난대로 내버려 두듯이'
이문세가 부릅니다. <옛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