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에게 갔었어

‘아들아! 장하다, 수고했다’라고 하셨다

by 류재민

7월 마지막 날. 바깥 날씨는 펄펄 끓습니다. 그래도 하늘은 맑고, 구름은 깨끗합니다. 아버지에게 갔었습니다. 어제 받은 황금열쇠가 담긴 패를 들고. 길가에 아까시 나뭇잎들이 바람결에 흔들렸습니다. 마중 나온 아버지가 반갑게 손 흔드는 것 같았습니다.


아버지에게 가는 길은 차들이 많기도 했지만, 오래 걸렸습니다. 다녀온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꽤 오랜 시간이 흐른 듯했습니다. 아버지는 저를 기자로 만들어 준 장본인입니다.


지원서를 넣는 곳마다 줄줄이 낙방하는 아들이 당신 눈에 안쓰러웠나 봅니다. 평소 알고 지내던 지역 언론사 지인에게 이렇게 사정했다고 합니다. “우리 아들 면접 좀 봐주시오. 소질이 있으면 월급은 적어도 좋으니 일하게 해 주시오.”


중앙언론사만 고집하던 저는 아버지의 그런 부탁이 내키지 않았습니다. 지역 언론사에 들어가면 ‘촌 기자’ 되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채근을 마냥 거부할 수만은 없었습니다. 서른이 다 된 나이에 무슨 일이라도 해야 했으니까요.


제 아버지가 계신 곳입니다.

중앙이든 지역이든 ‘언론’이란 울타리 안에 있으면, 언젠간 기회가 오리라고 여겼습니다. 그런 기대와 희망으로 지역 신문사에 입사했습니다. 기대와 희망은 금세 무너졌습니다. 신문사며, 기자들이며 제가 생각했던 언론의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지역 언론의 현실과 한계를 온몸으로 부딪치면서 실망과 허탈, 한숨만 쌓여갔습니다. ‘이게 무슨 언론인가, 때려치울까’ 거짓말 조금 보태면 하루에도 열두 번 이런 생각만 하던 날이 있습니다. 그때 아버지께서는 얼마나 낙담하셨을까요.


첫 신문사에서 2년을 근무하고 지금의 신문사로 옮겼습니다. 지금 다니는 신문사도 지역 언론이긴 하지만, 근무 여건은 여타 지역 신문사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대기업 수준의 매출을 올리거나 거액 연봉을 제공한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아버지 덕분에 상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장하다, 내 아들. 수고했다, 내 아들'이라고 격려해주셨습니다.

만 15년 6개월. 기자로 일하는 동안 아버지는 저를 응원했고, 지금도 응원하고 계십니다. 말수 적고, 표현도 서투른 분이셨지만.


이 값진 상을 아버지 앞에 놓고 인사 올리고 싶었습니다. 조부모에게 먼저 인사한 뒤 아버지에게 갔습니다. 납골함 앞에 패를 놓고 큰 절 두 번 올렸습니다. 시원한 바다를 뒤로 한 채 반 팔 차림의 사진 속 아버지. 생전에도 그랬듯이 늘 아무런 말씀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 선한 눈빛으로 ‘장하다, 내 아들’ ‘수고했다, 내 아들’이라고 격려를 보내셨습니다. 저도 속으로 아버지께 화답했습니다. “덕분입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자주 못 와 죄송합니다, 아버지.”

돌아오는 길은 가는 길만큼 멀지 않았습니다. 아버지 3주기 기일이 한 두어 달 앞입니다.


언젠가 내가 아버지에게 당신에 대한 글을 쓰겠다고 하자 아버지는 내가 무엇을 했다고? 했다. 아버지가 한 일이 얼마나 많은데요, 내가 응수하자 아버지는 한숨을 쉬듯 내뱉었다. 나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살아냈을 뿐이다, 고. -신경숙 장편소설 <아버지에게 갔었어> 중


*제목 ‘아버지에게 갔었어’는 신경숙 동명 소설 인용.


허각이 부르는 <나를 잊지 말아요> 띄워 드립니다.

*영상출처: 허각 나를 잊지 말아요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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