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닫는 서울극장에서 명보극장을 떠올렸다

사라지는 동네 극장,추억 상실의 시대

by 류재민

1964년 문을 연 서울극장. 이달(8월) 말 문을 닫는다고 합니다. 동네 극장 형편이 녹록지 않은 건 짐작했는데요. 코로나19까지 겹치며 도저히 버틸 수 없었나 봅니다.

서울극장은 영업 종료일인 31일까지 평일 하루 100명, 주말 200명을 대상으로 선착순 무료 티켓을 선사하는 ‘고맙습니다 상영회’를 열고 있습니다.


충무로 사람들은 매주 토요일 오전 서울극장 광장에서 만났다. 만남의 약속도 없었다. 팡세에 자리를 잡고 앉아 극장 앞에 모여든 관객 대기줄로 신작의 흥행 여부를 예측하며 서로 관객수를 넘겨짚었다. 전국 극장을 전산망으로 연결해 흥행 규모를 체계적으로 집계하는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이 아직 없었던 시절, 매표소 앞에서는 관객수를 일일이 세어가며 매표를 도와주던 ‘입회인’이 큰 소리로 관객을 불러 모았다.
<스포츠동아> 2021년 8월 18일 기사 중
1964년 문을 연 서울 종로의 서울극장이 이달 31일 문을 닫는다고 합니다. 서울극장은 영업 종료일까지 무료 상영 이벤트를 진행 중입니다. 서울극장 홈페이지.

문 닫는 서울극장 기사를 보면서 ‘시네마 키드’ 시절을 떠올렸습니다. 제가 살던 시골 동네에는 변변한 극장 하나 없었습니다.

버스를 타고 구불구불한 시골길을 40분 정도 달려야 겨우 시내 극장에 다다를 수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방학만 되면 동생, 친척, 친구와 자주 간 곳이 천안 삼도상가 옆 명보극장입니다.


‘우뢰매’ ‘우뢰용’ 시리즈부터 ‘슈퍼 홍길동’ ‘홍콩할매 귀신’ 등 ‘영구 심형래’는 그 시절 어린이들에게 BTS급 인기였거든요. (이 영화들 아는 분은, 나이가 꽤~ㅎ) 동시 상영을 하면 ‘땡’ 잡은 날이죠. ‘원 플러스 원’의 시발점 아니었을까 미루어 짐작할 따름입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19금 영화도 보고 싶었지만, 차마 ‘범생이’ 기질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천안역 근처 성인 전용 ‘스카라 극장’에 내걸린 야한 영화 간판을 보는 것으로(알아서 생각하시길). 제가 본격적으로 영화를 탐닉한 건 대학 신입생 시절입니다.


당시에 저는 천안에서 청주까지 통학했는데요. 오전에 학교에 갔다가 오후 수업을 땡땡이치고 천안으로 돌아와 곧장 극장으로 향했습니다. 한 손에 '씨네21'을 돌돌 말아 쥐고서.

천안 대흥동에 ‘명동거리’라고 있는데요. 한일극장, 아카데미극장, 시네마타운, 브로드웨이 등 극장이 여럿이라 ‘영화 거리’로 불렸습니다. 아카데미극장은 예식장도 같이 운영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주말과 휴일에는 그야말로 번화가였죠.


저는 이 길을 밥 먹듯 쏘다녔습니다. 밥값으로 받은 용돈을 영화 티켓 사는데 쓴 적도 많습니다. 신규 개봉작 5편을 한주 만에 다 봤을 정도였으니까요.


문 닫는 서울극장 기사를 보면서 ‘시네마 키드’ 시절을 떠올렸습니다. 제가 살던 시골 동네에는 변변한 극장 하나 없었습니다. 서울극장 홈페이지.

불현듯 한일극장에서 아버지와 두 여동생과 함께 본 ‘공포의 외인구단’이 떠오르네요.

2000년 초에 신부동 버스터미널이 들어선 곳에 야우리 멀티플렉스가 등장했는데요. 반대급부로 대흥동 영화 거리는 원도심 쇠락과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습니다.


하나둘 문을 닫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신부동 피카디리는 ‘선생 김봉두’를 끝으로, 아카데미는 ‘동갑내기 과외하기’를 마지막으로 상영했습니다.

지난 2001년 9월 야우리 멀티플렉스가 등장하기 전만해도 천안의 영화 1번지는 대흥동 명동거리였다. 이곳에는 한일극장, 시네마타운, 아카데미극장이 오밀조밀 들어서 있고 인근에 또 다른 극장인 브로드웨이가 위치, 극장가로 손색이 없었다.

주말이면 영화를 보러 나온 이들로 명동거리는 '젊음의 거리'로 변했다. 특히 아카데미 극장은 530석을 갖춘 천안 최대 규모로 인기 영화를 발 빠르게 상영, 극장가를 주도했다. 하지만 명동거리 극장가도 급변하는 사회 분위기에 위상이 달라졌다. 극장가의 골리앗인 멀티플렉스가 출현하면서 직격탄을 맞았다.

멀티플렉스에 관객을 뺏기며 동네 극장 운영은 어려워졌고 적자 부담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급기야 문 닫는 극장이 속출했다. 2003년 3월 22일 오마이뉴스 <멀티플렉스 그늘에 가린 동네극장들> 중
그 옛날 천안 명동거리에 있었던 아카데미 극장 앞입니다. 출처: 2003년 3월 22일 오마이뉴스 <멀티플렉스 그늘에 가린 동네극장들>

대형 멀티플렉스는 점점 몸집을 키웠습니다. 천안 신도심인 신불당에는 얼마 전 롯데시네마와 CGV가 한 블록을 두고 개점했습니다.


뜨는 것이 있으면 지는 것도 있습니다. 그것이 세상사 이치라고 합니다만, 못내 씁쓸하고 아련합니다. 제 추억은 상실의 시대를 걷겠지만, 아들딸은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가겠지요. 쥐가 나오는 허름한 동네 극장이 아닌, 편안하고 안락한 멀티플렉스에서.


그나저나. 코로나 녀석 때문에 멀티플렉스조차 맘 편히 못 가니.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고, 변기까지 막힐 지경입니다. 뿡뿡!!

추억의 노래 <예스터데이> 들려 드립니다.

*영상 출처: Yesterday (With Spoken Word Intro / Live From Studio 50, New York City / 1965)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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