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기억할만한 가치가 있는 기자가 될 수 있을까
이용마의 마지막 리포트
제가 그가 쓴 책을 산 건, 그가 세상을 떠나기 한두 해 전일 겁니다. 암 투병을 하면서 쓴 선배 기자의 책이라고 해서 사 봤는데요. 첫 장부터 심금을 울렸습니다. 그는 두 아들에게 물려줄 삶의 교훈을 책으로 남겼습니다. 그가 살아온 삶의 정리이자, 우리가 바꾸어야 할 세상에 대한 진솔한 기록으로. 그의 이름은 바로 ‘기자 이용마’입니다.
그는 지난 2019년 8월 복막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수천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입사한 MBC. 그는 그 어렵게 들어간 회사에서 언론의 독립을 위해 싸웠습니다. 공정방송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파업을 주도했고, 2012년 3월 ‘1호 해직 기자’가 되었습니다.
부당 해고 이후에도 공영방송 정상화 투쟁을 꾸준히 이어나갔습니다. 그 결과, 해고 5년 9개월 만인 2017년 12월 8일 MBC에 복직했고, 12월 11일 마지막으로 출근했습니다.
우리나라 언론이 제자리를 찾으려면 아직도 험난한 여정이 남아 있다. 다행히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소수 언론에 의한 정보의 독점이 깨지면서 과거와 같은 일방적인 여론조작은 불가능해졌지만, 기득권 세력들이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한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아직도 멀다. 이용마 『세상은 바꿀 수 있습니다』 210쪽
며칠 전 MBC 창사 60주년 특집 다큐멘터리로 그의 이야기가 방송됐습니다. 그는 기자 활동 시절을 비롯해 암 투병을 하면서도 MBC의 정상화를 위해 투쟁했습니다. 그리고 가족에 대한 애정, 특히 두 아들을 향한 무한사랑을 보였습니다.
MBC 창사 60주년 특집 다큐멘터리 <이용마의 마지막 리포트> 갈무리해직 기자로 살면서 속절없이 떨어지는 빗줄기를 바라볼 때, 담담히 죽음을 받아들인 뒤 아내와 함께 본인의 묏자리를 보러 갔을 때, 방송 마지막 장면에 아들에게 “남자 친구가 좋아, 여자 친구가 좋아”라고 물었을 때, 눈물이 멈출 줄 몰랐습니다.
송창식의 노래와 같이 낙천적이고 헤밍웨이의 소설과 같이 낭만적인 삶. 원래 꿈꾸었던 삶이었습니다. 하지만 스무 살을 전후해 한국사회의 모순과 부조리에 눈을 뜨면서 김산의 ‘아리랑’ 같은 치열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12월 2일 MBC 창사 60주년 특집 다큐멘터리 <이용마의 마지막 리포트> 중
그나마 그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 MBC를 통해 방송된 걸 보니, 그의 투쟁의 결과가 미약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김만진 PD는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방송을 통해 시청자에게 전하려는 메시지를 묻는 말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이 내용을 방송으로 만든 이유는, 기억할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을 기억하자는 것입니다. 그가 해온 말과 그가 해온 행동들이 가치가 있잖아요.” <오마이뉴스> 12월 10일 “존엄하게 죽음 맞이한 이용마 기자를 기억해 주길” 중
노동계에 전태일이 있다면, 언론계에는 이용마가 있습니다. 나도 그처럼 기억할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고뇌의 시간을 꽤 오래 가졌습니다. 이용마 기자처럼 저도 두 아이의 아빠인데요. 아이들에게 제가 하는 말과 행동이 가치 있게 느껴질까, 저 자신에게 몇 번을 묻고, 또 물었습니다.
암만 고뇌하고 자문을 해봐도, 저는 그만큼은 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나마 그렇게 살려고 노력은 해보자, 마음만 다잡을 뿐입니다. 찡한 코끝과 붉어진 눈시울로 그를 추모하는 밤입니다. 고(故) 이용마 님의 명복을 빕니다.
이용마 저서 "세상은 바꿀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