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적 용기와 기자의 용기

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를 보고

by 류재민

대통령 선거가 끝나면 하루 쉴 작정이었습니다. 딱 일주일 지나 하루 연차 휴가를 냈습니다. 기자는 쉬는 날이 없습니다. 기사를 쓰지 않는 시간이 쉬는 날이죠. 오늘은 기사 안 쓰고 종일 놀았습니다.


무얼 하고 놀까 궁리 끝에 영화관에 갔습니다. 예고편에 끌렸던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를 봤습니다. 배우 최민식 씨 2년 만의 스크린 복귀작. 역시 배우는 배우였습니다. 어린 배우들과 케미도 잘 맞고, 프로다운 모습이었습니다.


오랜만에 ‘아름다운’ 영화를 보고 왔습니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와 드라마 ‘스카이 캐슬’이 떠오르기도 하고요. 감히 추천합니다. 후회하거나 실망하진 않을 거예요.


영화 줄거리를 간략히 소개하면요. 이학성(최민식)은 탈북 4년 차로, 자사고 경비원입니다. 북한에서는 천재 수학자였는데요. 학문의 자유를 찾아 아들과 함께 탈북했습니다. 이후 아들을 잃고, 신분을 숨긴 채 살고 있었죠.


어느 날 수학을 포기한 학생 한지우(김동휘)를 만났고, 그로부터 수학을 가르쳐 달라는 부탁을 받습니다. 이학성은 죽은 아들 또래인 한지우에 끌렸고, 학교 별관 과학실에서 남몰래 수학을 가르칩니다. 정답을 알려주기보다 올바른 풀이 과정을 설명하며 ‘수학’의 진리를 깨닫게 해 줍니다.


극 중 이학성이 한지우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답을 찾는 것보다, 답을 찾는 과정이 중요하다. 기러니까 증명하라!”


이런 대사도 나옵니다. “수학을 잘하려면 제일 중요한 게 무언지 아네? 용기.” “뭐, 아자! 할 수 있다! 이런 거요?” “그건 객기고. 문제가 안 풀릴 때는 '야, 이거 문제가 참 어렵구나 야. 내일 아침에 다시 한번 풀어 봐야겠구나' 하는 여유로운 마음. 그게 수학적 용기다.”

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포스터.

기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옳은 지 그른지 증명해야 합니다. 증명하려면 용기가 필요합니다. 여기서 증명은 '팩트(Fact. 사실)'를 말합니다. 거짓으로는 증명할 수 없습니다. 마치 영화 속 수학 교사처럼. 시험문제를 유출해 놓고, 학생에게 누명을 씌우는 담임교사는 ‘부조리’와 ‘사회악’을 상징합니다. 진실과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 언론이고, 기자입니다.


사실을 보도하는 과정은 순탄치 않을 때가 많습니다. 유혹과 협박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거든요. 그런 것에 흔들리기 시작하면 끝까지 갈 수 없습니다. 주저앉거나 멈추고 돌아섭니다. 그때 필요한 게 바로 ‘용기’입니다. “야, 이거 취재가 참 어렵구나. 내일 아침에 다시 한번 취재해서 써야겠구나하는 여유로운 마음. 그게 기자의 용기”라고 생각합니다.


기자들은 늘 마감에 쫓깁니다. 시간에 쫓기면 완성도 높은 기사가 나오기 어렵습니다. 답(야마)이야 어떻게 짜내서든 나오겠죠. 하지만 답을 풀어가는 과정이 억지스럽다면 누가 그걸 답이라고 믿겠습니까. 하나하나 차근차근 따져보고 짚어가며 증명하는 수고로움이 필요한 게 ‘기사’입니다.


그래야 기사로 인한 피해자가 생기지 않을 테니까요. 기사 하나 쓰려고 몇 날 며칠, 아니 몇 달을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생고생하는 기자도 많습니다. 탐사보도 기자들이 대표적이죠. 하나 물었으면, 끝까지 파는 겁니다. 더 나올 게 없을 때까지 파헤치는 겁니다. 정답보다 중요한 건, 답을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용기와 집념으로 쓴 기사의 마침표를 찍었을 때, 세상은 조금씩 변하겠죠. 기자를 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그 기분을 만끽해본 기자들은 눈부시게 성장하고 발전할 것입니다. 저도 그랬으면 좋겠다는 각오와 다짐으로 쉼에 마침표를 찍습니다. 내일부터 다시 증명하러 나갑니다. Q. E. D 제대로 찍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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