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뭘 잘못했다고 그러세요

문제는 장소가 아니라 ‘권위적 대통령’이다

by 류재민
“봄꽃이 지기 전에는 국민 여러분께 청와대를 돌려 드리겠습니다.”
-2022년 3월 18일 김은혜 당선인 대변인 브리핑 중

청와대를 옮기네, 마네를 놓고 온 나라가 시끄럽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청와대를 나와 다른 곳에서 일하겠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멀쩡한 청와대를 두고 왜 집무실을 옮긴다는 걸까요? 청와대가 무슨 죄를 지었길래요.

당선인 측 얘기를 종합하면 대략 이렇습니다. ‘지금의 청와대는 구중궁궐 이미지가 강하다’ ‘대통령 집무실과 비서동 거리가 멀다’ 과연 그럴까요? 먼저 ‘구중궁궐’ 이미지를 살펴볼게요. 이건 국민과 좀 더 가까운 곳에서 소통하겠다는 의미 같아 보여요.


그런데 말입니다. 윤 당선인은 국민과 ‘소통’이란 게 저녁 먹고 동네 마실 나가는 여염집을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대략 난감입니다. 대통령이나 영부인(이 역시 ‘대통령 부인’으로 바꾼답니다)은 어디를 가도 철통 같은 경호를 받습니다. 청와대 내에서도 밖에서도 24시간 경호가 이루어집니다.


대통령을 만나려면 사전 검증은 필수입니다. 청와대 출입 기자들도 일일이 검색을 거쳐야 합니다. 광화문 외교부 청사든, 용산 국방부 청사든 어딜 가도 마찬가지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광화문 대통령’을 선언하고도 이루지 못한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퇴근길 광화문에 나가 시민들과 맘 놓고 막걸리 한 잔 기울이기 힘든 것이 바로 ‘대통령’의 자리입니다.


좋습니다. 외교부로 가든, 국방부로 가든 당선인 뜻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습니다. 국민이 선출한 권력이 그렇게 하겠다는데 어쩌겠습니까. 다만, 이전하려는 건물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어디로 가야 하나요? (육각수 노래 ‘흥보가 기가 막혀’에 이런 소절이 있죠. ‘갈 곳이나 일러주오’) 이전 비용도 한두 푼 드는 게 아니고, 이사도 뚝딱하면 할 수 있는 게 아니랍니다.


과거 어느 날, 점심 먹고 청와대 주변 산책 중 찍은 사진입니다.

두 번째, 집무실과 비서동이 멀다고요? 그건 ‘이명박근혜’ 때 이야깁니다. 언론에도 보도됐지만, 문 대통령은 취임 이후 그런 불편을 없애려고 비서동에서 집무하고 있습니다.


청와대는 문 대통령 취임 100일을 기념해 출입 기자단을 대상으로 ‘오픈 하우스’를 한 적 있는데요. 비서동도 둘러봤습니다. 오래된 건물에 에어컨도 없어 한여름 무더위에도 선풍기를 틀어놓고 있던 여민관이 떠오릅니다.


구중궁궐 청와대 내부는 그동안 내가 상상했던 ‘꿈의 궁전’은 아니었다.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기 위해 묵묵히 일하고 애쓰는 사람들의 일터이자 삶의 현장이었다. -2017년 8월 18일 <디트뉴스24> ‘내가 본 청와대, 그리고 대통령과 사람들’ 중
관련 기사 링크: 내가 본 청와대, 그리고 대통령과 사람들

당시 임종석 비서실장이 그랬나, 박수현 대변인이 그랬나 이런 설명을 했습니다. “저희가 회의하고 있으면 밖에서 누가 돌아다니는 모습이 보이는데요. 누가 왔나 싶어 내다보면, 대통령께서 사무실을 왔다 갔다 하는 겁니다.” 대통령이 바로 위층에 있으니 아래층에 있는 참모들이 항상 긴장 상태라는 말도 들었습니다.


이는 최근 박수현 국민소통 수석의 설명에도 그대로 들어 있습니다.

청와대의 모든 참모들은 문재인 대통령을 1~2분 내에 언제든지 만날 수 있고 소통하고 있습니다. 대통령과 집무실에서 도시락 오찬도 자주하고, 때로는 대통령이 구내식당에서 예고 없이 들러서 참모들과 똑같이 줄을 서서 자율배식으로 식사를 하기도 합니다. 식사 후에는 경내를 산책하기도 하고 역시 산책 중인 직원들과 사진을 찍기도 합니다. 2022년 3월 17일 박수현 수석 페이스북 중
3년 전, 청와대 홈페이지 신청을 한 뒤 어머니와 경내 관람을 했을 때 찍은 사진입니다. 일반 국민 누구나 관람이 가능합니다.

청와대를 국민에게 돌려 드리겠다는 당선인 대변인의 말도 어폐가 있습니다. 청와대는 이미 국민들이 자유롭게 드나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청와대 홈페이지에 견학을 신청하면(시간은 걸리지만), 얼마든지 경내를 둘러볼 수 있습니다. 저도 3년 전, 견학 신청을 한 뒤 어머니를 모시고 경내를 구경한 적이 있습니다.

1968년 ‘김신조 사건’ 이후 52년 넘게 일반인 출입을 제한했던 청와대 뒤편 북악산 북측 면도 둘레길을 조성해 2020년 가을부터 개방했습니다. 올해 상반기에는 남측면도 개방할 예정입니다. 전 정부와 비교하면 그야말로 ‘개방형’에는 틀림없습니다.


물론, 문재인 정부가 국민과 소통에 부족함이 있었던 건 사실입니다. 언론과 접촉면도 약했고요. ‘소통’이라는 건 국민과 직접 만나는 것도 있지만, 결국 언론과 간담회나 토론을 통해 국정을 알리고 이해를 구하는 측면이 강합니다. 문제는 ‘장소’가 아니라 대통령의 ‘의지’입니다.

이 시국에 국민 혈세를 낭비하면서 집무실을 옮기는 게 과연 타당할까요? 국민은 대통령이 제왕적이지 않고, 권위를 내려놓는 걸 더 바라지 않을까요? 관련기사 링크 [칼럼] ‘닥치고 폐지’만 능사인가


일부에서는 ‘풍수지리설’도 이야기하는데요. 팩트체크가 안 된 부분은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 하나는, 청와대 이전 논란에 윤 당선인의 국정 운영 비전이나 철학은 어디로 갔는지 영 못 찾겠다는 겁니다. 못 찾겠다 꾀꼬리~꾀꼬리~ 나는야 오늘도 술래!!

이전 15화수학적 용기와 기자의 용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