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용산 이전 발표하던 날

기자가 할 일, 기자여서 해야 했던 일

by 류재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결국 청와대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대통령 집무실을 용산 국방부 청사로 옮기기로 했습니다. 5월 10일 취임식이 끝나면 본인은 용산 새 집무실에서 일을 시작하고, 기존 청와대는 국민에게 돌려준다고 합니다.


여기서 ‘돌려준다’는 표현이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일반에 개방하면 충북 청주에 있는 대통령 별장 ‘청남대’ 같은 명소나 관광지는 될 것 같네요.


윤 당선인은 오늘 오전 11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기자회견장에 나와 집무실 이전 계획을 직접 발표했습니다. 저도 취재하고 왔습니다. ‘졸속 이전’이라는 우려에도 아랑곳없이 속전속결로 이전을 발표하는 모습에 여러 감정이 교차했습니다. 아마 국민적 찬반 여론이 갈리는 이유도 이 때문이겠죠.

임기 시작이 50일 남은 시점에서 대통령 집무실 이전을 너무 서두르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단 청와대 경내로 들어가면 제왕적 권력의 상징인 청와대를 벗어나는 것이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국민들께 불편을 드리는 측면, 청와대를 온전히 국민께 개방하여 돌려드리는 측면을 고려하면 용산 국방부 청사 이전 결정을 신속히 내리고 추진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합니다.
-윤석열 당선인 2022년 3월 20일 청와대 이전 기자회견 중

윤 당선인 발표 이후 기자들과 일문일답이 이어졌는데요. 회견에 참석한 70~80여 명이 전부 질문할 순 없는 일이었습니다. 재빨리 손을 들고 사회자가 지목해야 가능했는데요. 이날 김은혜 대변인에게 지목받은 기자는 16명 정도입니다. 대부분 중앙 일간지와 방송이었습니다.


지역 언론은 ‘경인일보’ 한 곳으로 기억하는데요. 거기도 수도권 매체라는 점을 고려하면, 실질적인 지역 언론사 기자는 한 명도 질문하지 못한 셈입니다. 저는 그걸 깨보겠다고 매우 열심히 손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청와대 뒤로 솟은 북악산만큼 큰 덩치가 보이지 않았는지, 아니면 대변인이 ‘아는 기자’가 아니어서인지 마이크를 줄 생각을 안 하더군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기자회견장 모습입니다. 당선인 대변인실 제공.

그렇게 회견은 끝났습니다. 윤 당선인은 기자 한 명 한 명과 악수하기 시작했습니다. 순간, 제 뇌리를 스친 생각. ‘그래. 지금이야’ 당선인이 저와 악수하러 왔을 때 준비했던 질문을 하자. 제 순발력은 기어이 윤 당선인의 답변을 받아내고야 말았습니다. 비록 ‘짧은 답변’이었지만. 자랑스럽게 ‘단독’이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멋들어지게 썼습니다. 오늘 하루 깊은 상념과 지침과 빡침이 한꺼번에 해소되는 순간이었습니다. [단독] 윤석열 당선인 “세종 제2집무실도 신속히 추진”

생각해보세요. 어제 저녁 신상정보를 담은 이메일을 보내 참여 신청을 했습니다. 식전 댓바람부터는 아니지만, 아침 일찍 KTX를 타고 서울까지 가서- 그것도 일요일에-서울역에 내려 삼청동 가는 마을버스를 기다렸을 땐 우박 섞인 비까지 맞았습니다.


회견은 11시부터인데 10시부터 입장이 가능하다고 해서 10시 전에 도착했죠. 대기장에서 대기하다 ‘요이땅’(학창 시절이나 훈련소 때 ‘선착순’이 생각났음) 소리에 후다닥 회견장에 들어갔습니다.

앞에서 세 번째 줄, 아주 아주 잘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 질문 시간만 기다렸거든요. 그런데 글쎄 질문 기회를 얻지 못했으니 얼마나 실망이 컸겠어요. 다행히 당선인이 악수하러 온 게 저한테는 ‘신의 한 수’였습니다.

KakaoTalk_20220320_223854873.jpg 연합뉴스 <"이제 청와대란 없다" 尹, 조감도 들고나와 '용산시대' 직접PT(종합)> 기사 중

과연 역사는 오늘의 ‘사건’을 어떻게 기록할까요? 공과는 역사가 기록하겠지만, 저는 오늘 역사의 현장에 있었다는 사실과 그 현장에서 기자로서 최선을 다했다는 데 의미를 부여하고 싶습니다.


오늘은 돌아가신 제 아버지 생신이었는데요. 늦은 점심을 먹고 어찌어찌하다 보니 좀 늦었습니다. 추모공원 폐문 20분 전 겨우 도착했네요. 악수는 못하고 눈 인사만 간단히 하고 왔습니다.

아버지는 “수고 많았다. 내가 다 봤다”라고 하셨습니다. 음식물 반입금지라 케이크는 못 가져갔습니다. 대신 그 케이크 사다 저희 네 식구 맛있게 먹었습니다. 아버지 괜찮죠? 그것도 보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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