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식 소통과 기자들의 가치관

국민은 멍 때리고 있는 기자들을 기다리지 않는다

by 류재민

정치권력과 언론은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관계라고 합니다. 너무 가까워서도, 그렇다고 멀리해서도 안 된다는 의미입니다.


지난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출범했습니다. 인수위 사무실은 서울 통의동 금융감독원 연수원에, 기자회견장은 삼청동 한국금융연수원에 각각 마련됐습니다. 저는 이번 주 삼청동 기자회견장으로 출근했는데요. 일주일 동안 출입해 본 소감을 써보려고 합니다.


먼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청와대에 절대 들어가지 않겠다고 한 거, 아시죠? 여러 우려와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용산행’을 선언했습니다. 그 배경에는 국민과의 ‘소통’을 내세웠는데요.


청와대에 있으면 소통이 안 되고, 용산으로 가면 소통이 잘 된다는 건 무슨 논리인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뭐 어쩌겠습니까. 굳이 가신다는데요.


대통령은 경호와 보안이 삼엄한데, 길 한복판에서 사람들 만나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만나더라도 시민들과 악수하고, 셀카를 찍는 수준을 '소통'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국민과 소통한다는 건, 결과적으로 ‘프레스 프렌들리’를 하겠다는 얘기일 겁니다. 윤 당선인이 인수위 사무실 앞에 천막을 쳐놓고 기자들과 커피 마시는 장면이 대표적이죠.


윤 당선인이 천막 다방 오픈일(23일) 기자들과 담소를 나누는 모습입니다. 당선인 대변인실 제공.

그런데 말이죠. 문제는 언론과 소통하는 방식에 있습니다. 쌍방향이 아니라 ‘일방적’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기 때문입니다. 대선 때부터 운영 중인 카톡 단체방에는 약 870명의 기자들이 들어와 있는데요.


인수위 출범식 당일 현장 취재 제한을 사전에 공지하지 않아 일부 기자들이 단톡방에 항의한 적이 있습니다. 원활한 소통을 위해 개인적인 의견을 제시한 기자들도 있고요. 그런데 채팅방 관리자는 아무 설명 없이 ‘가림’ 처리했습니다. 방 이름은 ‘윤석열 소통방’이라고 붙여 놓고요. 기자들은 반발했고, 대변인이 사과 글을 올리는 해프닝이 벌어졌습니다.


대변인들이라고 다를까요? 일단 뭘 물어보려고 전화하면 당최 받지 않습니다. 문자메시지를 보내도 답장이 안 옵니다. 결국 기자회견장에 가서 대변인을 직접 만나 물어봐야 합니다. 윤석열식 소통관에 자꾸만 ‘물음표’가 따라붙는 이유입니다.


인수위원들은 일부 회의에 들어가기에 앞서 ‘보안 서약서’에 서명하도록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수위 관계자는 “보안 유지 조항을 어길 경우 보직에서 해임된다”라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인수위 관계자들은 취재진의 개별 연락을 피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전화를 받지 않거나 “답할 수 없으니 양해해달라”는 취지의 문자만 보내는 것이다. 인수위 대변인마저도 몸을 낮추는 분위기다. 원일희 인수위 수석부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 앞서 취재인에게 매번 “기자들 전화를 받지 못했다”, “전화를 받을 상황이 안됐다”는 사과의 말로 시작하고 있다. -2022년 3월 23일《매일신문》 <천막서 커피 마시자는 尹, 인수위는 ‘조심 또 조심’ 다른 행보> 중

인수위 측은 ‘천막 다방’ 오픈 날 기자들에게 “현안 질문은 삼가 달라”라고 했습니다. ‘요구’에 가까운 요청이었습니다. 삼청동 기자들과 형평성을 이유로 들었는데요. 통의동이든, 삼청동이든 취재진은 그 언론사가 그 언론사입니다. 필요하다면 ‘공유’를 하면 될 일이고요.


삼청동 기자회견장도 사정은 비슷합니다. 오전에는 당선인 대변인, 오후에는 인수위 대변인이 정례적으로 브리핑합니다. 그래서 통의동보다 더 많은 취재진이 진을 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출입은 자유롭지 못합니다. 매일 저녁 정해진 시간 안에 온라인 ‘취재신청서’를 제출해야 다음날 들어갈 수 있습니다.


윤 당선인이 지난 20일 삼청동 인수위 기자회견장에서 청와대 집무실 용산 이전 계획을 발표하는 장면입니다. 당선인 대변인실 제공.

취재원 중에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보좌관이 있는데요. 이 분은 국회에서 꽤 오랜 기간 근무하고 있습니다. 통화를 나누다 이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원래 인수위 때는 다 그럽니다. 정권 교체기는 더 심하고요.” 업무가 미숙해서라기보다 ‘의도적’이라는 말로 들렸습니다.


통의동이나 삼청동이나 소위 ‘뻗치기’는 대부분 막내 기자들인 ‘말진’입니다. 기자 출신 대변인들이 그걸 모를 리 없습니다. 기자들을 길들이려는 심산처럼 보입니다.


인수위는 심지어 KBS 같은 공영방송을 상대로 업무보고 성격의 간담회를 하겠다는데요. 이런 발상 역시 비슷한 맥락으로 보여 걱정입니다. 대통령직 인수위, 공영방송 업무보고 추진 ‘논란’


지난 2017년 1월 1일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 상춘재에서 출입 기자들과 간담회 형식을 빌려 국정농단 의혹에 해명하는 모습입니다. 청와대 제공

기자들도 걱정입니다. 당선인 바짓가랑이라도 붙잡고 물어보진 못할망정 ‘틈새’ 질문이라도 해야 했는데요. 헐. 현안 질문을 하지 말랬다고 안 합니다. “기자정신이 부족하다”라는 비판이 나오니까 그제야 하나둘 손을 들고 질문을 합니다. 같은 기자로서, 얼굴이 화끈거립니다.


이 광경을 보니 과거에 있었던 어떤 장면 하나가 떠오릅니다.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있었던 일인데요. 국정 농단 의혹이 불거져 국회에서 탄핵소추가 이루어졌을 당시였습니다. 때는 바야흐로 2017년 새해 첫날. 대통령과 출입 기자들이 상춘재에서 간담회를 가졌습니다. 형식은 간담회였지만, 탄핵 위기에 몰린 대통령 혼자 해명하는 자리였죠.


저도 그때 출입 기자였는데, 연락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때부터 찍혔던가?) 참석하지 못한 지역 기자들도 20분 전에 문자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간담회 초대장을 받은 기자들은 ‘무장해제’ 요구에 고분고분 따랐습니다. 노트북과 휴대폰, 카메라를 내려놓고 수첩과 펜만 달랑 들고 들어갔죠. 뉴스 화면에도 잡혔죠. 대통령 앞에 두 손 공손히 모으고 다소곳이 서 있던 ‘기자들’ 말입니다.


대체 윤 당선인이 혼밥을 해봤는지 궁금한 국민이 얼마나 될까요? 용산 구내식당에서 기자들이랑 김치찌개를 끓여 먹든, 데쳐 먹든 관심이 있을까요? 당선인의 국정 철학과 비전이 뭔지 파악하고, 혹여 ‘윤핵관’이 국정을 맘대로 주무르는지 감시하는 언론을 기대하지 않을까요?


정태춘·박은옥은 “기자들을 기다리지 말라”(‘92년 장마, 종로에서’)고 노래했습니다. 국민은 언제까지 기자들을 기다려줄까요? 저를 포함한 기자들 모두 정신 바짝 차려야겠습니다. 멍 때리고 있다가는 나라가 어떻게 돌아갈지 모르니까요.

출처=한국갤럽

한국갤럽이 발표한 3월 4주 차 여론조사에 따르면 윤 당선자가 직무수행을 잘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응답자는 55%, 잘못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응답자는 40%였습니다.


윤 당선인의 국정 운영 기대치는 과거보다 낮은 편이다. 전임 대통령들의 당선 2주 차 직무 수행 긍정 전망은 80% 내외였다. 한국갤럽에 따르면 2007년 12월 이명박 당선인 84%, 2012년 12월 박근혜 당선인 78%, 2017년 5월 문재인 대통령은 87%였다. 노태우, 김대중, 노무현 당선인의 당선 직후 직무수행 전망은 여론조사 질문이 달라 직접 비교하기 어려웠다. 1993년 김영삼 당선인의 취임 1주 차 직무수행 전망은 ‘잘할 것’ 85%, ‘잘못할 것’ 6%였다. 윤 당선인이 추진하는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에 대해서는 응답자의 36%가 찬성했고, 53%가 반대했다. 전직 대통령 이명박 씨 사면에는 39%가 찬성하고, 50%가 반대했다. -2022년 3월 25일 《미디어스》<윤석열 '잘할 것' 55%···역대 당선인들 80% 내외보다 낮아> 중

소통이 뭔지도 모르는 대통령이 입으로만 소통을 외치고, ‘핵관 정치’가 판치는 5년이 될 수 있으니까요. 언론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국민은 정말 기자들을 기다리지 않을지 모릅니다. 아휴, 생각만 해도 오싹합니다.


정태춘, 박은옥 님이 부른 노래도 좋지만 유튜브를 보다 보니 알리가 <불후의 명곡>에서 열창한 노래도 좋네요. 공유합니다.

*영상출처: 알리(ALi) - 92년 장마, 종로에서 [불후의명곡/Immortal Songs 2].20190330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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