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시대, 마지막 ‘춘추관 기자’라는 말에
아무렇지 않을 것 같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앞으로 ‘청와대 시대’라는 말이 남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청와대 시대 마지막을 지켜보는 증인들입니다. 아마 ‘춘추관 기자’라는 말도 이제는 마지막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5일 청와대 출입 기자들과 간담회에서 한 말입니다. 문 대통령의 재임 중 출입기자단 초청 간담회는 이번이 두 번째이자 3년 만이었는데요. 동시에 고별 간담회 성격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문 대통령은 기자들과 소통에 참 인색했습니다. 코로나 영향도 있었지만, 의지만 있으면 얼마든지 기자들과 자주 만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청와대는 ‘구중궁궐’이라고 불립니다. 실제로 참 넓습니다. 기자들이 일하는 춘추관은 청와대 본관을 중심으로 동쪽 끝에 위치합니다. 하지만 기자들은 춘추관 안에서 꼼짝을 못 합니다. 청와대 곳곳을 자유자재로 다니면서 취재를 할 수 없습니다.
경호와 보안을 이유로 활동 자체가 원천적으로 차단된 셈이죠. 쉽게 말해 춘추관에 갇혀 대변인이나 소통 수석이 브리핑하는 걸 받아 적고 질문하는 정도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청와대 출입기자라고 한들, 세세한 내용까지 파악하기란 한계가 있습니다.
설령 세부적인 내용과 정보를 얻더라도 대부분 보도 제한을 전제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맘대로 기사를 쓸 수 있는 환경도 되지 않습니다. 경내를 들어갈 수 있는 기자들은 풀(POOL) 기자뿐입니다. 중앙지와 방송, 통신사, 지역 일간지 중 일부 기득권 매체들이 공고한 카르텔을 만들어 자기들끼리만 돌아가며 취재합니다.
대통령이 주재하는 각종 회의나 지역 일정, 해외 순방까지도 대부분 이들의 전유물입니다. 풀 기자단에 속하지 못한 기자들은 ‘무늬만 출입 기자’입니다. 이 구태적 관행은 역대 정부부터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국가 최고 권력기관을 출입하는 기자들부터 이렇게 편 가르고, 취재를 독점하는데 무슨 언론개혁이 이루어질 수 있겠습니까. 저는 7년째 청와대를 출입하면서 그 흔한 국무회의 취재조차 해본 적이 없습니다.
지난 25일 청와대 녹지원에서 있었던 문재인 대통령과 출입 기자들의 고별 간담회 모습입니다. 청와대 제공.그래서일까요. 청와대를 개방해 국민 품으로 돌려주겠다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결정’에 큰 반감은 들지 않았습니다. 다만, 성급한 대통령 집무실 이전에 따른 시민 불편과 예산 낭비 요소는 저 역시 마뜩하지 않습니다.
문 대통령과 기자간담회를 하기 전 청와대 출입 기자들은 경내 관람 시간을 가졌습니다. 7년을 출입하면서 경내 관람은 여러 차례 했죠. 이번에도 별다른 감흥은 없었습니다. 경내 관람인 처음인 기자들은 마냥 신기한 듯한 표정이었지만.
그래도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사진도 찍고, 이곳저곳 구석구석을 눈에 담으려고 했습니다. 국민의 한 사람이라면 모를까 ‘기자’ 신분으로 경내를 둘러볼 일은 없을 테니까요. 대통령께서 “춘추관 기자라는 말이 마지막이 될지 모르겠다”라는 말에는 묘한 감정이 들었습니다. 아무렇지도 않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뭔가 어색하면서 쓸쓸했고, 먹먹하면서 울컥했습니다.
춘추관의 상징인 '신문고'에서 추억의 사진을 남겼습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현재 ‘청와대’의 새 이름을 공모 중입니다. 새 정부가 출범하면 ‘청와대’는 ‘과거의 역사’가 되는 셈입니다.
인수위는 대통령 취임식 닷새 후인 5월15일까지 공모를 진행한 뒤 ‘국민심사위원회’를 구성하고 최종 명칭을 선정한다. 심사위에는 국어학자와 역사학자 등이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6월 초 새 명칭이 확정되면, 청와대는 그 이름까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2022년 4월 26일 《뉴스1》 <새 대통령실 이름은 ‘피플스하우스’?…국민 공모, 열흘 만에 ‘1만건’> 중
인수위 청와대이전 TF는 오늘부터 네이버와 카카오, 토스 등을 통해 청와대 개방 관람 신청을 받았는데요. 6시간 동안 36만 128명이 신청했습니다. 신청자들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청와대, 국민 품으로’ 홈페이지 서버가 일시적으로 다운되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국민적 관심이 높다는 뜻이겠죠. 기회가 있으면 한 번 둘러보세요. 기대만큼 멋지고 휘황찬란할진 모르겠지만, 경치나 공기는 좋습니다.
춘추관을 출입하면서 인연을 맺은 한 선배가 있습니다. 현재는 한국인터넷기자협회 수석부회장인 이준희 기자인데요. 청와대 기자단 문제를 지적하고 바꾸려고 애썼다, 고생했다는 격려에 뭉클했습니다.
바뀐 것 없이 한 정권은 막을 내립니다. 곧 윤석열 정부가 들어섭니다. 벌써 언론과의 소통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는데요. 시작도 전에 걱정부터 앞섭니다. 그러나 저나 양심 있는 기자들은 기울어진 언론과 권력의 운동장을 1mm씩이라도 펴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그것이 기자의 본분이고, 사명이니까요. 한국인터넷기자협회 이준희 수석부회장이 말한 언론개혁이 필요한 이유 5가지! - YouTube
저는 새 정부에서도 언론 환경 개선과 권력기관 감시를 게을리하지 않겠습니다. 긴장타세요~
강준만 명예교수는 “윤석열은 문재인 정권의 비극에서 반면교사 교훈을 얻어야 한다. 진보 정권은 보수언론의 말을 더 경청하고, 보수 정권은 진보 언론의 말을 더 경청해야 한다. 반대편 언론의 비판을 악마의 목소리로만 듣지 않아도 절반의 성공”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여론 형성 권력은 언론에서 소비자들에게 넘어갔다는 걸 믿고, 비판 언론에 화를 내지 말고 국민 마음을 사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게 좋다”라고 조언했다. 2022년 4월 26일 《미디어오늘》 <강준만 “진보신문 친여적 이유로 등 돌린 독자도 있다”> 중
저는 오늘 배현진 당선인 대변인 정례 브리핑에서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이틀 전 문 대통령과 청와대 출입 기자간담회에서 ‘춘추관을 출입하는 마지막 기자들일 수 있다’고 했는데요. 용산 집무실 이전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들리는데, 새 정부의 출입기자단 운영 계획이나 정해진 로드맵이 있습니까”
배 대변인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그 점은 저희가 계속 논의하고 있고, 기자 여러분이 새로운 공간에서 일을 편하게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머리를 짜내고 있습니다. 염려하지 마시고, 조만간에 집무실 이전에 관한 보고가 있을 때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비판 언론에 얼마나 화를 잘 참고, 국민의 마음을 사는 일에 얼마나 최선을 다하는지 눈 부릅뜨고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