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순옥 충남도의원이 주최한 의정토론회에 다녀왔습니다. 제목은 ‘디지털 성범죄 예방과 청소년 성평등 교육에 관한 의정토론회’입니다. 신순옥 의원은 자신의 첫 조례(‘충남교육청 디지털 성범죄 예방 및 교육에 관한 조례’)를 이 분야에서 찾아 의회 통과를 이끌 정도로 각별한 관심을 쏟고 있습니다.
신 의원은 특히 주요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가 10대인 아동·청소년이라는 점에서 많은 이들이 우려하고 있는 부분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충청남도 디지털 성범죄 안심지원센터’를 건립해 아동·청소년 대상 예방 교육과 함께 지원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디지털 성범죄 예방과 청소년 성평등 교육에 관한 의정토론회’ 모습입니다. 충남도의회 제공.
저는 토론에서 ‘디지털 성폭력에 대처하는 언론의 자세’로 말씀을 드렸습니다.대다수 언론은 디지털 성폭력과 관련한 기사를 쓸 때 제목부터 자극적인 표현을 씁니다. 사건의 본질을 훼손하고 있습니다. 사건의 본질보다 조회 수 늘리기에 급급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각종 성범죄 기사에 ‘속옷·더듬더듬·몹쓸 짓·나쁜 손’ 등 선정적이고, 자극적 표현이 수두룩합니다. 잘못된 보도는 피해자에게 상처를 주는 2차 가해이자 인권침해 요소가 됩니다.
마치 연재소설 쓰듯 가해자의 세세한 개인사를 늘어놓으며 흥미 위주의 가십성으로 기사를 다루는 언론도 있습니다. 가해자 개인에게 눈을 돌리면, 사건의 핵심인 성폭력·성 착취에 대한 심각성은 뒷전으로 밀리고 맙니다.
분명한 건, 독자는 사건 가해자들이 어떤 인물인지 하나도 궁금하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의 불우했던 과거사도 알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서 범행을 저지를 수밖에 없었다는 식의 ‘변호(辯護)’는 변호사를 통해 법정에서 하면 됩니다.
인터넷과 핸드폰 보급으로 진화하는 성범죄를 어떻게 예방할 것인지, 범죄를 저지른 이들이 무슨 처벌을 받았고, 그 처벌은 합당했는지, 관련법에 허점이 있다면 어떤 방식으로 채울지가 더 궁금합니다.
사건을 충분히 고민한 통찰력 있는 기사를 보고 싶은 것이 독자뿐만 아니라 청소년 자녀를 둔 부모들의 심정 아닐까요? 또 그것이야말로 언론이 주창하는 ‘독자의 알 권리’라고 생각합니다.
성희롱성폭력 사건 보도 참고 수첩(왼쪽)과 경향신문이 최근 심층 보도한 디지털 성범죄 관련 기사입니다.
언론은 사회적 인식과 대중적 논의의 공론화를 이루는 환경과 분위기를 조성할 필요가 있다. 사람들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갖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단순히 클릭 수를 높이거나 성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기제로 언론이 수단화돼선 곤란합니다. 차라리 기사를 쓰지 않는 것이 오히려 도움을 주는 것일 수 있습니다.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아 죽을 수도 있으니까요.
전문성이 결여된 기사와 비 양식적이고, 비양심적인 기자의 펜대에 무고한 피해자를 양산하거나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어지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피해자의 권리를 우선하고, 성범죄를 명확하게 기술하는 보도가 필요합니다.
한국기자협회와 여성가족부는 지난 4월 ‘성희롱·성폭력 사건 보도 참고 수첩’을 개정했습니다. 이 수첩은 지난 2014년 처음 만들어져 그간 3번의 개정을 거쳤습니다.
이 수첩에는 ▲성희롱·성폭력 사건 취재 보도 시 유의점 ▲성희롱·성폭력, 알아야 할 표현과 상식 ▲성희롱·성폭력 사건 보도 점검표 등을 담고 있는데요.
부끄럽게도 저는 이 수첩이 있는 줄은 토론회를 준비하며 처음 알았습니다. 그래서 여성가족부에 요청해 우편으로 수첩을 받았습니다. 몰랐던 사실이 많아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였습니다. 이 수첩은 여성가족부 홈페이지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법조나 사회, 교육청 출입 기자뿐만 아니라 정치·행정·경제·체육 등 이 나라에서 활동하는 모든 기자가 숙지해야 할 ‘보도지침’이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성희롱·성폭력은 사회 전 분야에서 발생할 수 있는 ‘범죄’인 까닭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내 이야기’도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022년 9월 19일, 경향신문, <‘시험 낙방’‘전도유망 ’…‘디지털 성범죄자’ 형량 깎은 사법부의 ‘넓은 아량’> 중
디지털 성범죄는 취재부터 보도까지 물리적 시간을 대거 투입해야 한다는 단점 탓에 기자들이 기피하는 소재입니다. 그렇지만, 언론의 역할과 사명감이라는 차원에서 볼 때는 취재와 보도가 불가피해 보입니다. 사회적 문제가 너무 심각하니까요.
언론의 관심과 여론 형성이 알 권리 충족과 동시에 피해 예방과 재발 방지 효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최근 <경향신문> 사건팀이 3차례에 걸쳐 심층 보도한 디지털 성범죄 관련 뉴스는 여타 언론의 귀감이 될 만합니다.
언론 역시 이 문제에 책임감을 느끼고 범죄 예방을 위한 노력에 나서야 합니다. 사건의 객관적 보도로 2차 피해 발생을 막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전문가 인터뷰 등을 통해 범죄의 심각성을 알리고, 해결방안 등 범죄 피해 예방에 앞장서는 것이야말로 지역 사회가 지역 언론에 부여한 책무일 것입니다.
‘디지털 성범죄 안심지원센터’가 충남뿐만 아니라 전국에 건립되기를 소망합니다. 실천과 행동은 관심에서부터 출발합니다. 충남도의회 제공.
혹시 우리 과거 역사에서 가장 심각했던 성범죄 사건이 무엇인지 아세요? 바로 일본군 위안부 사건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120여 개의 평화의 소녀상이 설치돼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소녀상이 설치된 나라입니다.
그런 나라가 디지털 성범죄 1위라는 오명을 쓰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국민 모두 디지털 성범죄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 청소년들이 성착취로 인해 피해 입고 고통을 겪어선 안 되기 때문입니다. 신 의원께서 추진하고 있는 ‘디지털 성범죄 안심지원센터’가 충남뿐만 아니라 전국에 건립되기를 소망합니다. 실천과 행동은 관심에서부터 출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