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이원록과 시인 이육사

이육사 시인은 신문사 기자였다

by 류재민

이육사 시인이 기자로 활동했다는 사실 아시나요? 저도 기사를 보고서야 알았습니다. 이육사 시인 본명은 ‘이원록’인데요. 과거 조선일보에서 활동한 기자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를 기리는 ‘이육사 기자상’이 곧 제정된다는 소식입니다. 이육사의 고향이자 기자로 활동했던 대구·경북 출신 언론인들이 주축으로 이육사 기자상 제정위원회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김시묘 제정위원장은 최근 보도자료에서 “일제 강점기 17번이나 투옥된 항일시인 이육사는 1930년대 조선총독부 언론 암흑기에 조선일보와 중외일보 대구 기자 등 언론 활동을 하면서 드높은 기개와 저널리즘으로 명성이 자자했다”며 “이육사 선생의 투혼적인 기자정신이 오늘날에도 바른 언론의 향도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어 그 뜻을 길이 이어 가고자 이육사기자상을 제정한다”고 밝혔다. 2022년 10월 16일, 기자협회보, <기자 출신 항일시인 이육사 기리는 기자상 제정된다> 중


선생의 ‘드높은 기개와 저널리즘‘ ‘투혼적인 기자정신’이라는 소개 글이 인상 깊게 들립니다. 그는 기자 시절 ‘육사생(肉瀉生)’이라는 필명을 썼습니다. 그가 기자로서 처음 쓴 기사는 ‘대구의 자랑 약령시의 유래’인데요. 인터넷 검색을 하면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는 신문사를 그만두고서도 1940년 일제가 조선일보를 폐간할 때까지 꾸준히 지면에 글을 실었다고 합니다.


자신의 첫 시 <말 馬>도 조선일보에 발표했습니다. 당시 조선일보에는 ‘참 기자’가 있었군요. (지금은 왜 저렇게 변했는지 모르겠지만) 대구에는 가수 김광석과 사과만 유명한 줄 알았더니, 시인이자 기자였던 이육사도 있었네요.


기자 이원록이 '육사생'이라는 필명으로 쓴 기사. 이육사 문학관 홈페이지.
대구의 자랑이 무엇이냐? 고 묻는 사람이 있으면 지금 사람들은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능금(평과, 苹果)을 말할 것이다. 그러나 대구 능금은 최근의 한 명산물로서 완전한 자랑의 지위를 점령할 수는 없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중학교 지리 교과서에도 있는 대구의 유명한 약령시(藥令市)를 자랑으로 들어놓고 그에 대한 역사적 유래를 먼저 알아보자. -1932년 1월 14일, 조선일보, <대구의 자랑 약령시의 유래> 중


선생은 20대 초반 형과 동생과 의열단에 가입해 무장 독립운동을 했습니다. 조선의 독립을 위해 총과 펜을 들고 싸웠습니다. 시인이자 투사였고, 독립운동가이자, 기자로서 불꽃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저도 그런 불꽃같은 삶을 사는 기자가 될 수 있을까요?


선생은 1944년 1월 수감 중이던 북경의 감옥에서 옥사했습니다. 광야에서, 백마 타고 올 초인을 기다리던 그의 바람은 그가 세상을 떠난 1년 뒤 ‘조선의 광복’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서대문 형무소 수감 당시 1934년 6월 20일 신원카드. 이육사 문학관 홈페이지.

최근 집권 여당의 대표가 페이스북에 ‘조선이 썩어서 망했다’는 글을 올려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조선은 안에서 썩어 문드러졌고, 그래서 망했다. 일본은 조선왕조와 전쟁을 한 적이 없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총과 펜을 들고 일본과 싸운 이육사와 조선의 의병들이 지하에서 곡할 노릇입니다. 그러고도 아직 사과조차 하지 않고 있습니다. 사과할 줄 모르는 정치 지도자들이 나라의 국정을 이끌고 있으니. 국민은 오죽 답답하겠습니까.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기자 이원록이 역사에 남기고 싶었던 기사가 얼마나 많았을까요.


제가 이육사 기자상을 받을 일은 1도 없겠지만, 적어도 그의 ‘드높은 기개’와 ‘투혼적인 기자정신’은 본받으려 노력하겠습니다. 그래서 사과하면 ‘개 사과’밖에 모르는 국가 지도자와 정치인들을 신랄하게 조지도록 비판하겠습니다. 보이지 않는 이들을 보이게 하고, 들리지 않는 목소리를 들리게 할 수 있는 기사를 쓰겠습니다.


이육사는 서른아홉 짧은 생애 동안 17번이나 옥살이를 했습니다. 쇠약해진 몸을 추스르려 포항 청림동 사촌 형 집에 머물던 중에 ‘청포도’라는 시를 만들어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선생의 시 ‘청포도’ 띄워 올립니다. (‘샤인 머스캣’ 아닙니다.)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절이주절이 열리고/ 먼데 하늘이 꿈꾸려 알알이 들어와 박혀/하늘 밑 푸른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 단 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청포(靑袍)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 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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