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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재민 May 19. 2024

잃어버린 꿈을 찾아주는 정다운 흥신소

꿈바꼭질 재단

식당 안에는 꿈바꼭질 재단 사람들만 있었다. 상철은 새해 첫날 딸 달래와 하루 쉴 생각이었지만, 흥신소 주임 진달래의 전화에 식당 문을 열었다. 손님 6명에 상철과 영철까지 8명이 한가운데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불판 위에서는 먹음직한 고기가 하얀 연기를 피워올리며 지글지글 익어갔다. 꿈바꼭질 재단 이사장인 다운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청중들의 시선이 다운에게 쏠렸다. 

“자, 여러분. 다사다난했던 한 해가 지나고 새해가 밝았습니다. 지난해 힘들고 어려웠던 기억은 모두 잊고 새롭게 출발하는 새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특히 올해는 정다운 흥신소뿐만 아니라 꿈바꼭질 재단이 큰 역할을 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잃어버린 소중한 꿈을 찾는 데 우리가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겠습니다. 고단하고 쉽지 않은 길일 겁니다. 그래도 우리는 모두 ‘원팀’으로 힘을 모아 헤쳐갑시다. 다들 자신 있으시죠?”

“네~~~”

“그런 의미에서 건배하겠습니다. 다들 앞에 놓인 잔에 술을 채워 주시지요.”

잔이 모두 채워진 걸 확인한 다운은 다시 말을 이었다. 

“인사말은 제가 했으니 건배 제안은 이 자리의 최연장자인 소문난 사무국장께서 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갑작스러운 제안에 소문난 사무국장은 순간 당혹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참석자들 모두가 박수를 치자 용기를 얻은 듯 슬며시 잔을 들고 일어섰다.

“준비도 못 했는데 갑자기 건배사를 하라고 하니 무슨 말을 해야 하나 모르겠습니다. 여하튼 현역에서 은퇴한 저에게 뜻깊은 일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준 정다운 소장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함께 일할 여러분들께도 잘 부탁드린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사장님께서도 말씀하셨다시피 저희는 꿈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힘을 내서 희망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돕는다는 사명감을 가져야 할 거라고 봅니다. 사무국장이라는 직을 떠나 그간 살아온 인생 여정과 교직 경험을 살려 재단이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소 국장의 일장 연설이 길어지자 쾌한이 손사래를 쳤다. 

“아유 국장님! 누가 교장선생님 출신 아니랄까 봐 훈시가 길어요. 술잔 들고 있는 저희는 팔 떨어지겠어요.”

좌중이 까르르 웃는 소리에 소 국장은 머리를 긁적이며 알았다는 제스처를 지었다. 

“죄송합니다. 습관을 고치는게 쉽진 않네요. 흐흐흐. 자, 건배하겠습니다. 정다운 흥신소와 꿈바꼭질 재단의 성공적인 운영과 모두의 꿈과 바람이 이루어지는 날을 위하여!”

“위하여!”

그렇게 시작한 재단 상견례는 밤늦도록 이어졌다. 밤 열 시가 넘었을 때, 참석자들은 하나둘씩 일어나 집으로 돌아갔다. 마지막까지 남은 사람은 흥신소 직원 다운과 달래, 쾌한, 그리고 상철과 영철이었다. 달래는 카운터에서 장부를 정리하고 있는 상철을 흘끔 바라봤다. 

“상철 선배. 대충 정리하고 와서 한잔 하세요.”

“응? 아, 그래. 잠깐만.”

상철은 달래의 부름에 쓰던 장부를 덮고 일어나 냉장고에서 소주 한 병을 꺼내 들고 달래 옆자리로 와 앉았다. 다운이 상철에게 잔을 내밀며 말했다.  

“미안해요. 새해 첫날 쉬지도 못하고 가게 문 열게 해서.”

“아유, 아닙니다. 놀면 뭐합니까, 한 푼이라도 벌어야죠.”

상철의 말에 살짝 취기가 올라 볼이 발개진 달래가 뾰로통하게 말했다.

“선배! 너무 돈, 돈 하지 마세요. 그렇게 돈타령만 하다가 정작 본인의 꿈은 언제 이룰 건데요?”

“꿈? 사장님 꿈이 뭔데?”

쾌한이 상철을 바라보며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꿈이랄 게 뭐 있나요. 그저 저희 식구들 건강하게 잘 지내면 되는 거죠.”

달래는 어이가 없다는 듯 혀를 찼다. 그리곤 앞에 놓인 소주를 단숨에 비우며 상철을 쏘아 봤다. 

“작가의 꿈은 어떻게 하려고요? 그건 포기한 거예요? 선배 꿈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는 게 꿈이었잖아!”

“야, 베스트셀러 작가는 아무나 하냐. 나 정도 실력으로는 어림도 없어.”

다운은 한숨을 쉬며 말을 뱉는 상철이 안쓰럽게 보였다. 그러다 문득 무슨 생각이 났는지 무릎을 탁, 치며 말했다. 

“그래, 그거야!”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모두의 시선이 한데 모였다.

“꿈바꼭질 재단 첫 수혜자는 정상철 씨로 하는 거 어때요? 잃어버린 작가의 꿈을 이루어 주는 겁니다. 어때요?”

다운의 제안에 달래와 쾌한은 “그거 괜찮네요”라고 화답했고, 상철과 옆에 있던 영철의 눈은 동시에 커졌다.

“아니, 아니에요. 제가 뭐라고요. 저보다 다른 분들 꿈부터 찾아주세요. 저는, 아직은, 괜찮습니다.”

상철은 떨리는 목소리로 더듬거렸다. 

“괜찮긴 뭘 괜찮아요. 언제까지 꿈을 미루면서 살 거예요? 선배만 바라보고 사는 어머니랑 달래 생각도 좀 해요?” 

달래가 화를 내며 몰아붙였다. 쾌한이 흥분한 달래를 달래듯 가볍게 등을 두드렸고, 다운은 상철의 표정을 살폈다. 

“정 사장님! 사장님께서 저희와 아는 사이라고 해서 특혜를 주려는 게 아닙니다. 무슨 일이든 첫 시작이 중요하잖아요. 사장님의 지나온 상황을 잘 알고 있는 진 주임이나 또 사장님의 인품을 아는 저희로서는 첫 대상자고 적임자라고 생각해서 한 얘기예요. 물론 내일 재단 회의 때 모두의 의견이 일치해야 가능하지만, 다른 분들도 큰 이견을 없을 듯합니다. 그러니 사양하지 마세요. 작가라는 꿈, 저희가 도와드릴 테니 도전해 보시죠.”

상철은 다운의 따듯한 말에 눈가가 뜨거워졌다. 금세라도 눈물이 뚝 떨어질 것 같았다. 그 모습을 옆에서 보던 달래가 놀리기 시작했다. 

“어? 선배. 지금 울어? 설마 감동 받은 거야?”

“야, 울긴 누가 운다고 그래. 아냐 임마.”

“아니긴 뭐가 아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고만. 얼레리꼴레리~”

달래의 농담에 상철은 연신 손사래를 쳤고, 그 광경을 바라보던 다운과 쾌한, 영철이 깔깔대며 웃었다. 삼천리 연탄구이는 자정이 넘어서 셔터를 내렸다. 모두가 돌아간 뒤 상철은 텅 빈 테이블에 앉아 소주를 따라 마셨다. 그리고 조용히 중얼거렸다. 

‘언제까지 내 꿈을 미룰 순 없지. 그래, 한 번 해보는 거야. 정상철, 넌 할 수 있어!’ 

상철은 새벽녘 집에 들어갔다. 불 꺼진 안방 문을 슬며시 열었다. 딸 달래가 할머니 품에 폭 안겨 잠들어 있었다. 달래는 무슨 좋은 꿈을 꾸고 있는지 연신 키득키득 웃고 있었다. 상철은 비스듬하게 기운 딸의 베개를 똑바로 잡아주고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굿 나잇, 마이 프리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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