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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재민 Jun 09. 2024

잃어버린 꿈을 찾아주는 정다운 흥신소

할머니의 꿈찾기

‘어르신 문해교실’은 두 개 반으로 운영됐다. 1반은 폐지를 줍는 노파처럼 한글을 전혀 쓸 줄도, 읽을 줄도 모르는 ‘까막눈’ 반이었고, 2반은 겨우 한글만 아는 어르신들이 모였다. 각 반에 15명씩 들어갔다. 상철의 어머니도 2반에 포함됐다. 

“이 나이에 무슨 공부를 할까 싶었는데, 나랑 비슷한 처지에 계신 분들이 많더구나.”

상철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첫 수업을 다녀온 소감을 전했다. 상철은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잔뜩 새겨진 어머니를 보면서 덩달아 신났다. 

“아마도 우리 엄마가 반에서 제일 예쁠걸? 젊었을 땐 미스코리아 뺨칠 정도로 한 미모하셨으니까.”

상철의 능글맞은 농담에 어머니는 눈을 흘기며 쏘아붙였다. 

“할망구한테 못 하는 소리가 없네, 무람없이. 젊었을 때 안 이뻤던 사람이 어딨겠냐. 넌 안 늙을 줄 아냐. 얼마 안 있으면 너도 쭈그렁바가지가 될 거야.”

“에이, 내가 뭐라고 했어요. 우리 어머니 학교 다니는 게 너무 행복해 보여서 기운 넣어드리려고 한 소리지.”

상철은 평소에 하지 않던 애교를 다 부렸다. 하루하루 시간만 축내며 노년을 보내던 어머니가 측은해 보일 때가 여러 날이었다. 그런 어머니가 비슷한 연배의 어르신들과 만나 공부도 하고, 친구도 맺으면 좋겠다는 꿈을 상철은 아득히 퍼지는 어머니의 눈가 주름을 보며 소망했다. 아빠와 할머니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달래는 길게 하품하며 이불을 끌어 덮었다. 

“우리 강아지 졸린가 보네. 애비야, 달래 자게 불 좀 끄거라.”

상철은 일어나 전등 스위치를 끄고 방문을 닫고 나왔다. 어머니도 첫날 수업이 피곤했는지, 새로운 환경이 낯설었는지 금방 곯아떨어졌다. 폐지 줍는 노파나 쾌한뿐만 아니라, 상철과 그의 어머니에게도 평생 잊지 못할 의미 있는 날이었다. 베란다로 나온 상철이 살며시 방충망 창문을 열었다. 가을 냄새 잔뜩 묻은 솔바람이 밀려 들어왔다. 후속작을 준비하던 상철은 뭔가 떠올랐다는 듯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뿔테 안경 밑으로 해맑은 미소가 희부옇게 번졌다. 밤하늘에 별이 하나둘씩 박히며 반짝거렸다. 상철은 다시 문을 닫고 서재로 들어갔다. 오늘밤은 꽤 긴 밤이 될 것 같은 예감을 안고서. 그날 상철의 서재에서는 밤새도록 노트북 타자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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