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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환초

귀향1

by 류재민

밀리환초를 출발한 군함은 힘차게 바닷물결을 가르며 망망대해를 향해 나아갔다. 배에는 파커 소령을 포함한 미군 스무 명과 조선인 강제 노역자 일흔 명이 탑승했다. 그들과 어색한 동행을 한 이가 있으니, 바로 사카이 대좌였다. 혼자 걸을 정도로 몸을 회복한 그는 조선으로 향하는 배에 탑승을 거부했다.

“여그 남겠다고? 아무도 읍는 섬에서 우째 혼자 살껀데? 굶어 디지겠다는 건가?”

“나는 조선에 갈 수 없다. 조선에 가서 죽으나, 여기서 굶어 죽으나 죽는 건 마찬가지다. 제국의 장교로 부끄럽지 않게 죽겠다.”

사카이는 동영이 내민 손을 한사코 뿌리치며 말했다. 그렇다고 물러설 동영도 아니었다. 엄 노인과 순팔이 사카이의 몸을 번쩍 들어 올려 강제로 배에 태우려 했다.

“놔라, 놓으라고. 난 여기 남을테다.”

사카이는 고함을 질렀지만, 허공의 메아리였다. 보다 못한 담양 댁이 사카이를 향해 일침을 가했다.

“새끼는? 니 새끼는 어쩔건데? 저 어린 게 태어나서 한 번도 못 본 조선 땅에서 어떻게 살라는겨? 부모도 읍시 어떻게 살지 생각은 안 혀? 순자를 생각혀서라도‥.”

사카이는 담양 댁 입에서 나온 ‘새끼’와 ‘순자’라는 말에 몸을 축 늘어뜨렸다. 그러곤 제 발로 순순히 배에 올랐다. 순자가 낳은 사카이의 아들 순칠은 담양 댁 등에 업혀 잠들어 있었다. 그렇게 배에는 구십하고도 한 명이 승선했다.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며 항해하는 배 안에서는 고국으로 돌아갈 마음에 들뜬 조선인들의 왁자지껄 수다로 만선을 이뤘다. 섬에서 가져온 식량과 미군함에 실려있는 군량으로 먹을 것은 걱정이 없었다. 조선인들 수다를 뒤로 한 채 선미로 나온 사카이는 멀어지는 환초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한쪽 시력을 잃은 그의 눈에서 왈칵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렇게 그는 동영과는 다른 작별을 고했다. 배는 거침없이 물살을 헤치고 항해했다.

그날 밤, 누군가 배에서 바다로 빠진 듯 첨벙, 하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누구도 그가 누군지 관심을 두지 않았다. 보초를 서던 미군도, 온종일 쉼 없이 떠드느라 고단했던 조선인들도 그가 누군지 알려고 들거나 구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미 바다에 빠진 자가 누군지 알고 있는 듯했다. 사카이는 그렇게 바다에 빠져 죽었다. 그의 말마따나 그것이 대일본제국 천황의 아들로서 명예롭게 전사하는 길이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남은 사람들도 그의 명예를 지켜주겠다는 암묵적인 방조에 가담했을지도 모른다. 보름달 뜬 밤은 대낮처럼 밝았고, 일렁이던 파도는 어느새 잠잠해졌다. 새벽이 올 때까진 서너 시간이 족히 남았고, 조선까지 바닷길은 여러 날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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