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와 줘, 로즈 베이커리
6호선 한강진에서 이태원 방면으로 나오면 플래그쉽 스토어가 길 양 옆에 들어서 있다. 다양한 연령대의 의류 브랜드, 향수 판매점과 스트릿 편집샵이 있는데, 이 중에 가장 눈에 띄는 건물은 꼼데 가르송 건물이다. 전면부가 유리 통창인 이 큰 건물은 건물 전체를 꼼데가르송 컬렉션으로 구성했다. 그리고 약 3년 전에는 건물 1층에 '로즈베이커리'라는 카페 겸 샐러드와 샌드위치를 파는 음식점이 있었다. 나는 한강진을 올 일이 있으면 꼭 이곳을 약속 장소로 잡았다.
로즈베이커리는 꼼데의 개성 넘치는 모습과 반대로 차분하고 조용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연한 나무색의 테이블 위에 얇은 흰 종이를 깔아놓고 손님을 마주한다. 직원도 조용하고, 이곳에서 음식이나 음료를 마시던 사람들도 모두 조심조심, 조용히 이 공간에서 시간을 보냈다.
음식 맛 또한 자극적이거나, 다양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떤 메뉴를 시켜도 식재료의 맛을 잘 느낄 수 있었고, 샌드위치 빵으로 쓰인 크루아상은 부드러웠으며, 바게트는 너무 질기지도 딱딱하지 않고 딱 알맞았다. 이곳에서 크루아상을 재료로 한 게살 샌드위치를 주로 먹었다.
목소리가 저음이고 조용조용히 말하는 나는 역시나 나처럼 저음이고 조용히 말하는 친구들과 이곳에서 많은 대화를 나눴다. 천고가 높고, 테이블 간격이 널찍해 옆 테이블을 신경 쓰지 않고 오랫동안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갈 때마다 행복한 기억을 쌓았다. 그런데 몇 해 전 로즈베이커리가 없어졌다.
1층의 3분의 2의 공간을 차지하던 곳은 의류로 지금은 의류로 채워져 있다. 나는 옆 테이블을 신경 쓰지 않고, 조용히 오래도록 이야기하며, 특별하진 않지만 덤덤한 맛의 샌드위치를 더이상 만날 수 없는 게 못내 아쉽다. 강한 향신료나 조미료로 맛을 낸 음식보다 간이 세진 않지만 좋은 재료로 맛을 낸 것들을 찾기 이곳 서울에서 사라졌다.
그래서 아직도 이곳을 지날 때면 로즈베이커리가 그립다. 그리고 로즈베이커리가 있는 해외 여행지를 갈 때마다 나는 옛 친구와 오랜만에 만나는 것처럼 로즈베이커리를 꼭 들르려 한다. 파리에서도, 일본에서도 덤덤하고 조용한 친구를 만나러. 강렬한 인상은 주진 않지만, 덤덤하고 소박한 음식 안에서 나의 마음은 어느 때보다 편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