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방을 열자마자 역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어둑한 가방 안에 손을 넣어보니 기분 나쁘게 물컹한 무언가가 잡힌다. '설마'를 외치는 동시에 무엇인지 직감했다. 일주일 전 사생대회에 가져갔던 도시락이었다. 먹지 않고 들고 온 도시락을 꺼내 놓는 걸 깜박했다. 하필이면 도시락 뚜껑이 열려 있었고 흘러나온 음식은 더운 날씨에 한껏 부패되어 있었다. 곰팡이가 가득했다. 가방 속에 있던 몇몇 학용품과 섞여 사태가 심각해졌다. 휴지로 열심히 닦아내도 좀체 냄새가 빠지지 않았다. 물로 가방을 빨았다. 엄마한테 들키지 않게.
숨겨야 했다. 엄마는 당연히 도시락을 먹고 왔다고 생각했으리라. 혼날 생각보다는 엄마한테 미안한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도시락을 안 먹고 온 이유가 있었다. 김밥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엄마가 싸준 도시락은 버섯이 들어간 볶음밥이었다. 대부분의 친구들은 김밥을 싸왔는데 혼자만 볶음밥을 꺼내기가 싫었다. 기름 먹은 버섯 때문인지 유독 검게 보이는 볶음밥의 색깔이 나를 더욱 망설이게 했다. 결국 도시락을 먹지 않았다. 삼삼오오 모여있는 친구들을 멀리하고 혼자 창경궁 한켠에서 그림을 그려나갔다. 배고픔을 참아가며.
초등학교 4학년 즈음의 일로 기억한다. 열 살 무렵의 일이니 벌써 34년 전의 일이다. 당시 엄마의 나이 45세. 지금의 내 나이다. 어른이 되어서도 종종 그때의 일을 떠올린다. 아침 일찍 딸들의 도시락을 준비해야 할 때면 더더욱 생각난다. 왜 그날 엄마가 김밥을 싸주지 못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시장 옷가게 일로 바빴거나 아니면 내가 깜박하고 늦게 말을 꺼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날 아침 엄마는, 내가 자고 있는 동안, 당신의 출근 준비를 하며, 일찍부터 바지런히 버섯 볶음밥 도시락을 준비하고 있었을 것이다. 철없던 그 시절 모습이 부끄럽고 또 우습다.
언제 마지막으로 먹어봤는지 기억도 안 나는 엄마가 만든 김밥. 그 맛이 또렸이 기억난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김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