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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니 Sep 24. 2023

나와 만나는 시간, I형의 루틴

미술 에세이 #3  에곤 실레 자화상

너는 어떤 사람이야?라고 물었을 때 바로 명확하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몇 명이나 있을까?

막연한 대답이 아닌 뚜렷하고 분명하게 본인 스스로를 잘 알고 있고 이를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면 참 부럽다. 어릴 때부터 J는 스스로에 대해 어떤 사람인지 많이 생각해 왔지만, 서른 중반이 넘은 지금까지도 아직까지 명쾌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습관처럼 운세 어플을 킨다. 어차피 올해 운세는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한 달에 적어도 한 번씩은 습관처럼 확인하게 된다. J는 금이 많은 사주이다. 금이 많아서 그런지 몰라도 웬만한 남자보다 생활력이 강해 일복은 타고났다고 한다. 생활력이 좋은 것은 인정한다. J의 천성이 그러한 건지, 생활력을 강하게 만들도록 한 주변환경의 탓이 큰 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타지에서 혼자 지금까지 그럭저럭 잘 버텨온 것을 보면 생활력이 강하긴 한 것 같다.


작년까지만 해도 연애운과 결혼운을 자주 들여다봤는데 올해부터는 직업운과 재물운을 유심히 살펴본다. 얼마 전 생일이 지나, 이제 빼박 서른다섯이다. 서른다섯이란 나이는 참 오묘하다. 이제 연애에는 신물이 난 건지 연애의 해피앤딩이 반드시 결혼일 필요는 없다는 것을 서서히 깨닫기 시작해서인지 서른다섯을 기점으로 인생에 대한 가치관이 꽤 많이 변했다.


최근 들어 변화된 J의 모습 중 하나는 밖으로 집중했던 시선들이 점점 자기 자신, 안으로 향하고 연습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외향형과 내향형의 차이가 사교성과는 다르다는 설명을 언젠가 유튜브에서 본 적이 있다. 본인의 에너지가 밖 (타인)을 향하는가 자신에 집중해 있는가를 구분할 때 외향형인지 내향형인지 표현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했다.


그 설명이 맞다면, J는 내향형으로 변해가고 있다. 혼자 있는 시간, 나 자신과 친해지는 시간을 억지로라도 갖고 있다. 올해 들어 시작한 하루 루틴이 6개월 이상 지속되면서 몸에 밴 습관처럼, 전혀 어색하지 않게 오늘도 나와 만나고 있다.



아침 여섯 시 반에 일어나, 간단히 씻고 자리에 앉아 조용한 힐링 음악을 들으며 핸드폰에 스크랩해 둔 책 글귀를 필사하며 마음을 정돈하는 시간을 갖는다. 길게는 30분 짧게는 5분 만에 끝나는 필사시간이지만 의미 있게 봐 두었던 좋은 글귀들을 한번 더 마음에 새기면서 하루의 시작을 번잡스럽지 않고 차분하게 열 수 있다는 점에서 나름 소중한 시간이다. 중간중간 못할 때도 있지만 올해 들어 계속 이 모닝 루틴을 지키고 있다.


출근하는 길에는 항상 편안한 재즈음악을 들으며, 전자도서관으로 미리 다운로드한 책을 읽는다. 책을 선정하는 기준은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 다른데 주로 가벼운 자기 계발서나 심리 관련 책을 읽는데  최근에는 소설종류도 자주 읽는다. 말랑말랑한 기분을 느끼고 싶을 때는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 딱이다. 그러다가도 이상하게 가끔은 경영서적이나 좀 읽기 어려운 고전류가 땡길 때도 있다. 음식이 땡기는 것 처럼 특정 분야의 책이 땡기는 느낌을 가끔 받는데, 마음이 보내는 신호인 건가? 싶다. (책은 마음의 양식이라는 말이 맞다.)


회사에서는 당연한 얘기지만 일에 집중한다. 일도 계획적으로 하는 J 인지라, 평소 애지중지하는 스케쥴러에 시간대별로 오늘 해야 할 일을 기록한다. 아침은 간단히 편의점에서 산 조각 사과로 때우지만 톨사이즈 커피에 사과 몇 조각이면 충분하다. 건강을 위해 카페인 섭취량을 아침 톨사이즈 커피 한 잔으로 줄였다. 커피를 덜 마시는 대신 그만큼 물로 보충하고 있다. 텀블러 가득 시원한 물을 마시다 보면 자연스레 정신도 맑아진다. 덕분에 피부 트러블도 눈에 띄게 좋아진 기분이다.


저녁 루틴은 요일 별로 다르게 세팅하였다. 월요일은 집 근처 책방에서 따뜻한 우유와 책을 읽는 시간인데 주로 업무와 관련된 책을 읽기로 J 나름대로 룰을 정했다. (요즘엔 마케팅 관련 책에 심취해 있다.)

화요일과 목요일은 요가 데이이다.  작년부터 꾸준히 요가를 하고 있는데 호흡에 집중하면서 내면과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이라 J는 이 시간이 제일 좋다. 수요일과 금요일은 경우에 따라 다른데 약속을 잡거나 아니면 골프 연습을 하러 간다. 최근에 다시 골프를 시작했는데, 재미는 아직 잘 모르겠다.


그리고 주말엔, 종종 미술관을 간다. 올해 들어서 벌써 20곳이 넘는 전시를 다녀왔다. 벚꽃이 질 무렵 다녀온 에곤 실레전이 기억에 남는다. 그도 J처럼 끊임없이 자신에 대해 물음표를 던졌던 인물인데, 그래서 그런가 유독 자화상이 많다. 


28살이라는 짧은 생애에도 불구하고 200여 점의 대작들을 남긴 에곤 실레. 정통 미술을 거부하며 자신만의 특이하고 독특한 회화기법을 발전시키며 다양한 자화상, 누드화, 풍경화를 탄생시킨 그는 미술사의 이단아라는 수식어 참 어울리는 인물이다. 본인의 정체성, 아이덴티티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과 탐구의 결과물이 그의 자화상이었는데, 다른 화가들의 자화상과는 다르게 에곤 실레의 작품은 어딘지 모르게 기괴하다. 전체적으로 신체의 일부가 기형적으로 뒤틀려 있어 보는 사람마저 불편하게 만드는 형태의 작품이 대부분이지만 자화상 속 인물의 시선만큼은 늘 관객을 직시하고 있다. 그가 관객을 바라보는 시선은 어딘지 모르게 긴장되어 보이고, 불안함과 불편함이 가득해 보이기도 하지만, 강렬하다. 본인이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끊임없이 표현하며 자신이 누구인지 반드시 결론을 내고 말 것이라는 그의 의지가 느껴진다.  


에곤쉴레 자화상 


 에곤 실레는 인간의 불안, 절망, 희열 등의 감정을 회화로 나타내는 것을 중요시 여긴 표현주의 회화의 대가이기도 하다. 아마 그러한 요소들 역시 그의 자화상이 좀 더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일반적인 초상화에서 볼 수 있는 멋있고 아름다운 모습이 아니라, 조화롭지 않은 색감과 형체 때문에 그로테스크한 느낌이 강함에도 불구하고, 그의 자화상이 잊히지 않는 이유는 본인이 누구인지 끊임없이 갈구하고 있는 에곤 실레의 의지와 열망, 고뇌와 갈망 등이 고스란히 느껴졌기 때문이 아닐까.  



J 자신의 자화상은 어떤 모습으로 표현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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