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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상권 Apr 18. 2024

잘 살아야 하는 이유

얼마 전 새벽잠에서 번뜩 눈이 떠졌습니다. 깊은 잠이 들었던 나에게 갑자기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모습은 누군가의 죽음이었습니다. 평소 티격태격 다투지만 나름의 관계를 가깝게 이어 나가던 동료가 죽음 앞에 마주하는 내용의 꿈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나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 40살이 된 그 동료의 친 형제가 죽었다는 소식을 다른 직원에게서 전해 들었기 때문입니다. 때마침 그 동료는 출근하지 않았던 터라,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몰랐지만, 전해 들은 동료의 가족 부음을 듣고 죽음 그리고 사람과의 관계가 미묘하게 작용하는 게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책을 정말 좋아합니다. 그 이유로 첫 번째는 읽는 걸 좋아하고, 두 번째는 책이 책상 위에 쌓여 있는 모습을 바라보는 걸 좋아합니다. 종합해 보면 책이라는 모습에서 풍겨오는 다양한 냄새와 에너지를 사랑한다고 해야겠죠. 그런 제가 1년 전에 사 두었던 책을 집어 들었습니다. 눈에 잘 들어오는 책장에 쌓아 둔 이 책이 눈에 갑자기 들어왔습니다. 동료의 형제 장례식장을 다녀온 직후였습니다. 책 제목은 '스위스 안락사 현장에 다녀왔습니다' 신아연 작가가 지인의 죽음을 배웅하기 위해 스위스 안락사 현장에 다녀온 죽음과 삶의 사이를 묘하게 그려 넣은 이야기였습니다. 멍 한 눈으로 단숨에 읽어냈습니다.


정말 놀랄만한 일은 며칠 후 우리 수녀님을 만나고 나서입니다. 수녀님과 이야기를 나누는 데 수녀님께서 밑도 끝도 없이 최근에 기가 막힌 경험을 했다는 것입니다. 지인이 외출하고 집에 돌아갔더니 그렇게 건강했던 남편이 죽은 채 발견되었다는 겁니다. 물론 최근에 건강검진을 받은 후 대장에 끼었던 용종을 몇 개 떼어낸 적이 있었지만, 죽음으로 이어질 거라고는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던 것이었죠. 그러면서 수녀님은 사람이 잘 죽기 위해서는 잘 살아야 한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젊은 직장 동료 형제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오래전에 사두었던 죽음과 관련된 책을 우연히 다시 집어 들어 읽어 들었던 일, 그리고 수녀님의 잘 죽기 위한 조언이 모두 일주일도 안 되는 사이에 일어났습니다.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 둘을 키우며 행복을 느끼기에 더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 저에게, 이제 잘 죽는 방법을 고민하게 하는 일주일이었습니다. 과연 나는 후회 없는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까요. 예기치 못하는 사고로 생사를 넘나들 때 나는 죽음이 무섭지 않다고 생각하게 될까요. 이 모든 것들은 잘 살았을 때, 그리고 지금 떠나도 후회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가능한 일입니다. 잘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일주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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