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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강산 Feb 13. 2023

개와 늑대의 시간 (4)

운명을 사랑하라


Amor Fati. 아모르 파티. 운명을 사랑하라. 유명한 라틴어다. 나는 운명을 사랑하는가. 운명은 무엇인가. 운명은 바꿀 수 있는가. 원초적 질문이 꼬리를 문다. 대답이 어렵다. 고향을 찾아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이 필요한 까닭이다.


운명은 뿌리와 맞닿아있다. 미국 드라마 Roots, 즉 뿌리를 인상 깊게 본 적이 있다. 아프리카 감비아에서 미국으로 납치된 쿤타 킨테와 후손들의 이야기다. 역경을 딛고 집안의 긍지를 이어가는 서사가 강렬했다. 차별과 혐오, 폭력에 맞서는 운명의 개척기, 생존기였다.


미국에서 흑인의 운명은 도전과 응전이었다. 쿤타 킨테에서 말콤 엑스, 마틴 루터 킹, 셜리 치솜, 제시 잭슨, 버락 오바마까지 생존과 투쟁의 역사였다. 인간 존엄을 위한 여정이었다. 척박한 토양에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뿌리가 동서남북으로 뻗어나갔다.


나의 뿌리는 호남이다. 1994년 전북 전주에서 나고 자랐다. 아버지는 전북 완주, 어머니는 전북 부안 출신이다. 본관은 전남 나주의 반남이다. 반남 박씨 선조 중에는 열하일기를 쓴 박지원, 개화파의 시조인 박규수가 있다. 선조들로부터 많은 영감을 얻고, 또 얻는다.


호남이라는 근원적, 공간적 뿌리의 영향이 크다. 1980년 광주항쟁을 책에서 만났지만, 매번 타는 목마름을 느낀다. 1990년 호남을 포위한 3당 합당에 선한 분노를 느낀다. 선배 세대의 피와 땀과 눈물이 없었다면, 나는 오늘날 출마이유서가 아닌 항소이유서를 써야 했다.


나의 운명은 이러한 역사적 뿌리와 맞닿아있다. 정치적 각성과 연결되어있다. 내가 조선의 우의정 박규수였다면, 근대의 여명 앞에 놓인 조국의 운명을 어떻게 바꿨을까. 내가 김대중과 동교동의 시대에 살았다면, 독재에 맞서 대업을 함께했을까. 선택을 잘 내렸을까.


운명의 갈림길이라고 볼 수 있을까. 짧은 생이지만 경계에 섰다. 개와 늑대의 시간이었다. 고교 자퇴를 할 것인가. 병원 입원을 할 것인가. 정당 입당을 할 것인가. 선택의 순간마다 주사위를 높게 던졌다. 깊은 강을 건넜다. 황혼에서 새벽까지, 후회 없는 화살표였다.


의원 당선. 네 번째로 만난 개와 늑대의 시간이었다. 원래는 광진구의원을 준비했다. 정치적 고향에서 기초의원을 목표했다. 당원을 모집하고, 조직을 확장했다. 기성정치의 문법을 착실히 따랐다. 하루하루 설렜다. 차근차근 준비했다. 착각이었다. 망했다. 제대로 망했다.


마키아벨리는 근대 정치학의 포문을 열었다. 군주론에서 4가지의 정치적 개념을 소개했다. 비르투, 포르투나, 네체시타, 프루덴차가 그것이다. 비르투는 역량이다. 포르투나는 운명이다. 네체시타는 불가피성이다. 프루덴차는 실천적 이성이다. 현실정치의 핵심 요소다.


군주론에 따르면, 나는 선거의 계절까지 비르투를 축적했다. 상당한 양이었다. 감히 자부한다. 다만 공천의 시간에 포르투나에 농락당했다. 아웃 상태였다. 운명의 파도에 휩쓸렸다. 네체시타의 상황이었다. 허우적거렸다. 프루덴차를 영혼까지 끌어모았다. 살아남았다.


숨 막히는 나날이었다. 죽느냐 사느냐, 햄릿의 시간이었다. 새벽에 이리저리 전화를 걸었다. 펑펑 울었다. 낮이고 밤이고 방안은 어두웠다. 홀로 누워 고통을 견뎠다. 마음을 달랬다. 준비한 명함과 운동복을 버렸다. 다시 일어섰다. 서울시의원 비례대표 출마를 결심했다.


가장 먼저 출마를 선언했다. SNS에 출마의 변을 올렸다.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 담았다. 형식적인 글이 아니라, 진심을 담고 싶었다. 고치고 또 고쳤다. 출마선언문 작성에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선거인단 조직과 홍보 활동은 나중의 문제였다. 옳은 판단이었다.


여의도발 카더라가 파도처럼 밀려왔다. 변호사 출신의 비서관이 청년 몫으로 내정되었다. 이미 비례대표 1번부터 10번까지 세팅이 끝났다. 누가 누구를 민다. 너는 안 된다. 포기해라. 등등. 어질어질했다.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었을까. 달리 선택지도 없었다.


선출방식부터 모든 것이 불투명했다. 불확실했다. 4년 전에는 서울시당 상무위원 투표였다. 문제가 많았다. 만날 기회가 부족했다. 나의 비전이 무엇인지, 왜 선출직이 되려는지, 말할 시간이 모자랐다. 어느 날 자정을 넘어 공고가 떴다. 시민배심원단 공개 오디션이었다.


남성 청년비례대표 경선은 10대 1의 경쟁률이었다. 1차 서류 면접 심사에 주력했다. 머릿속에서 수백 번의 리허설을 끝냈다. 발표 전날, 아무것도 손에 안 잡혔다. 오바마의 회고록, 약속의 땅을 꺼냈다. 하염없이 페이지만 넘겼다. 다행이었다. 4대 1의 본선에 진출했다.


본선 당일, 차분하게 연설을 마쳤다. 물 흐르듯이 질의응답을 거쳤다. 무대에서 청중을 보았다. 눈빛을 읽었다. 확신이 차올랐다. 가슴이 부풀었다. 발표되었다. 우승이었다. 핸드폰에 불이 났다. 2012년 고교생 시절에 출마의 꿈을 자기소개서에 끄적였다. 10년이 걸렸다.


내가 잘나서 된 것이 아니다. 시당 위원장부터 공천관리위원, 당직자까지 기회의 장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한 동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선거 과정에서 다양한 인간군상을 보았다. 막판에 숟가락을 올리는 기회주의자부터 호사가까지, 참 많았다.


정치적 근육을 키우는 과정이었다. 남은 날의 방향도 그럴 것이다. 직업으로서의 정치, 선출직의 도전은 계속될 것이다. 다만 언젠가 통과할 또 다른 개선문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사실을 명심할 것이다. 지금의 내 위치에서, 묵묵히 공적 사명을 다할 뿐이다.


개와 늑대의 시간. L'heure entre chien et loup. 프랑스어 관용구다. 황혼을 뜻한다. 석양이 보이는 언덕 너머에서 다가오는 그림자가 내가 키우던 개인지, 나를 해치려는 늑대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시간이다. 선악의 경계가 희미해지는 시간이다. 전복의 시간이다.


기다릴 것이다. 또 다른 개와 늑대의 시간을. 뚜벅뚜벅. 황혼의 언덕을 오를 것이다. 석양을 향해 주사위를 던질 것이다. 죽음을 기억할 것이다. 천천히 서두를 것이다. 운명을 사랑할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할 것이다. 남은 날의 페이지를 색칠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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