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Felix Gonzalez-Torres, 1957~1996)는 그 누구보다 시인이다. 시에 흐르는 음운 하나하나에 존재의 이유가 있듯, 곤잘레스-토레스 작업에 등장하는 단출한 오브제들: 시계, 거울, 퍼즐, 더미, 인쇄물, 사탕, 전구, 비즈 커튼, 스냅사진, 빌보드 등은 극도의 절제미 속에서도 자유로이 변형 가능한 시어의 형태로서 존재한다. 그의 작업을 보고, 만지고, 나의 사적인 공간으로 데려가는 시간 속에서 나는 종종 작은 숨을 내뱉는다.
작가인, 로스 블레크너(Ross Bleckner)와 나눈 인터뷰를 읽으며, 작업에서 여실히 느낄 수 있었던 곤잘레스-토레스라는 사람에 대해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인다. 그가 아직 살아있다면, 나는 그와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며 내적인 연결감으로 완성된 속 깊은 친구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 상상해본다. 내성적인 외로움을 늘 가지고 있지만, 주변 사람들에게는 관대하고 너그러우며 실없는 농담도 잘 건네었을 것이다. 정작 자신에게는 무척이나 엄격해 작업에서 보이는 개념이 정확히 표현되기 위해 애쓰고 애쓰는 완벽주의자였겠지..
곤잘레스-토레스 작업 전반에 흐르는 사랑과 그리움, 떠남, 죽음과 같은 존재의 문제는 그가 38년이라는 짧은 삶을 살며 예술가로 살아간 10년 남짓한 1980년대와 90년대의 시대상에서, 그리고 그의 개인사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1957년 사회주의 혁명으로 요동치는 쿠바에서 태어난 곤잘레스-토레스는 1971년 스페인의 고아원으로 보내져 같은 해에 푸에토리코의 친척집에서 청소년기를 보낸다. 푸에토리코 대학에서 미술 공부를 시작하며 지역 예술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고, 1979년 뉴욕으로 이주한다. 프랫 인스티튜트와 뉴욕대, 위트니 미술관의 독립연구프로그램(Independent Study Program)에서 사진과, 후기 구조주의 이론을 공부하며 자신의 예술 이론을 정립시켜 나갔다. 그가 활동하던 1980년대와 90년대는 에이즈가 세계적 공포의 대상이었을 뿐 아니라 핵무기의 대량 학살 위협, 종교적 우파의 공격, 인권과 여권의 향상에 대한 반발, 이민자들의 권리와 평등권 보장 등이 중요한 사회 문제로 부각되며 다양한 정체성을 드러내는 행동주의 예술가들이 등장한다. 그중 하나가 예술가 그룹 머티리얼(Group Material)이었으며, 곤잘레스-토레스는 1987년 그룹 머티리얼의 일원으로 활동한다. 성소수자인 그는 사회적 편견에 맞서며 자신의 연인이 에이즈로 세상을 떠나는 과정을 지켜봐야 했다. 그리고 자신 또한 에이즈로 여생을 마감한다. 이민자였고, 유색인종이었으며, 성소수자였던 곤잘레스-토레스는 주류 사회의 변방 즉, 주변인이자 소수자였다.
어린 시절부터 주변부로 살아온 그가 현대미술계의 주류사회로 들어가기 위한 발버둥은 CV나 도록에서 조차 설명되기 어렵다. 이해받을 수 없었던 정체성에서 오는 '혼자'라는 지독한 감정과 그를 둘러싼 불온전한 환경을 생각해본다면, 그의 연인이었던 로스 레이콕(Ross Laycock)은 곤잘레스-토레스에게 연인 그 이상이지 않았을까. 유일하게 이해받을 수 있는 존재이며, 너와 내가 하나일 수 있는 완벽한 짝꿍. 그래서 그의 작업에는 유독 쌍으로 이루어진 오브제가 많이 등장한다. 더블(double), 페어(pair), 커플(couple)로 상징되는 시계, 거울, 커튼 등은 전시장에 늘 나란히 병치되어 있다. 로버트 스토어(Robert Storr)와의 인터뷰에서, "내 작품의 관객은 (에이즈로 사망한) 연인 로스"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그의 작업은 자전적 경험으로부터 시작한다. 하지만 곤잘레스-토레스의 작업이 사적인 멜랑콜리한 감정으로만 읽히는 게 아닌 공적 목소리의 힘을 가지는 건, 당시 주류사회에서 동성애를 배재하려 했던 시대상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무제>(완벽한 연인들)라는 제목을 가진 두 개의 동일한 시계 작업은 나란히 벽에 걸려 전시됨으로써, 동성애자인 곤잘레스-토레스와 그의 연인, 로스를 상징한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배터리의 수명이 다해 시계 한쪽이 멈추며, 죽음과 소멸을 맞이하는데, 자신의 사적인 영역을 공론화시키는 작업을 통해 사회적 편견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를 작품에 담을 수 있었다. 또 다른 작업, <무제>(항암 화학요법)에서는 비즈로 이루어진 커튼이 전시장에 드리워져 관람객은 커튼을 스쳐 지나가거나 직접 만지는 행위를 하게 된다. 여기서 비즈가 가지고 있는 매체의 속성(쉽게 변화하고 깨지는)은 삶의 나약함과 유한성을 표현하기도 하지만, 에이즈가 접촉만으로도 죽음에 이를 수 있다는 당시의 사회적 금기를 은유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형식과 내용적인 관점에서 보면 곤잘레스-토레스의 작업은 미니멀리즘과 개념미술의 정신을 잇는다. 하지만 다른 개념미술가들과 차별화되는 점이 있는데, 그건 관객들과의 소통과 반응으로 작업이 완성된다는 점이다. '사탕작업'(Candy Works)과 '인쇄더미'(Paper Stacks)가 그 예로, '사탕작업'은 로스가 에이즈로 죽은 해인 1991년에 <무제>(LA에서 로스의 초상)(1991)란 제목으로 처음 발표되었다. 로스의 몸무게인 175파운드의 사탕을 미술관에 쌓아두고, 관람객들에게 사탕을 집어가도록 요청한 이 작업은 사탕 더미가 소진되는 과정에서 죽음으로 향해가는 로스의 육체를 은유한다. 형식적인 면에서는 미니멀 조각의 에지적 특성이 관람객의 행위로 무정형화되며 사라지는 동시에 채워지는 순환구조를 띄고 있다. 인쇄더미 작업 중 하나인, <무제>(총에 의학 죽음)(1990) 또한 같은 선상에 그려진다. 타임지의 미국 총기 폭력에 관한 기사를 차용한 이 작업은 일주일 동안 총기로 사망한 464명의 이름과 나이, 거주지의 내용이 인쇄된 종이를 쌓아 올렸다. 관람객은 자유로이 종이를 가져갈 수 있으며, 인쇄된 종이가 고갈되면 보충되도록 만들어졌다. 인쇄된 종이(오브제)가 사라지면 사라질수록 곤잘레스-토레스가 말하고자 하는 개념과 메시지는 관객에 의해 확산되고 퍼진다. 뿐만 아니라, 미술사에서 행해지는 '미술감정'의 행위, 원작(Original)과 복제(Reproduction)를 정면으로 파괴함으로써 자본과 권력의 굴레 안에 존속되어 있는 제도권 미술에 대한 날 선 비판 의식이 반영되어 있다.
부모를 잃고, 사랑하는 연인을 먼저 떠나보내며, 자신 또한 시한부의 삶을 살았던 곤잘레스-토레스에게 죽음은 무엇이었을까. 안드레아 로젠 갤러리에서 열린 1990년 개인전 보도자료를 읽어보면, "나의 작업은 떠나는 행위(act of leaving)와 연관되며, 한 장소 이후의 도 다른 장소(one place for another)이다"라고 쓰여있다. 언제 흩어져 떠날지 모르는 삶의 한가운데서, 그는 관객들에게 작품을 변형하고, 의미를 원하는 대로 재구성하며, 작품 일부를 전시장 밖으로 가져가도록 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작품을 영원히 살아 숨 쉬게 만들었다. 그의 작업은 원본이나 복제품으로 규정지을 수 없기에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사탕을 먹거나, 크리스마스의 트리의 반짝이는 전구를 보거나, 시계를 보거나, 하늘을 날아가는 새를 볼 때마다 그를 기억하고, 그의 작업을 되새기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