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터는 토크 박스이자 잘 살아왔다는 무늬
나와 G 둘 다 맹장 수술 흉터가 있다. 또, 맹장이 터지기 직전 수술을 한 공통점도 있다.
나는 초등학교 3학년 때 맹장 수술을 했다. 맹장인 줄 몰랐을 때는 체기인 줄 알았다. 나는 어릴 때부터 잘 체하는 체질이었다. 학교 수업하다 배가 아파 점심시간 전에 조퇴했다. 어릴 적 시골에서 할머니랑 살았다. 할머니가 밭에서 일하고 돌아왔다. 아직 학교에 있어야 할 애가 집에 있으니 할머니가 왜 벌써 집에 왔냐고 물었다. 배가 아파서 왔다고 했다. 배가 아플 때마다 할머니는 화풍당이라는 알약을 손바닥 가득 줬다. 한약 냄새가 나지만 그 냄새가 나쁘지 않았다. 알이 작아 나는 그 약을 물과 함께 꿀떡꿀떡 잘 먹었다. 화풍당을 먹고 할머니가 배와 등을 주물러주면 얼마 안 돼서 체기가 내려간다. 이날은 화풍당을 먹고 할머니가 배와 등을 아무리 쓸어줘도 체기가 안 내려갔다.
할머니랑 동네 보건소에 갔다. 보건소 소장님은 내가 변비 때문에 복통을 앓는 거라 해서 아랫배에 파스를 붙여줬다. 전문가가 변비라고 했으니 변비라 생각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밤이 되니 배는 더 아팠다. 화풍당, 보건소도 소용없어 할머니는 무속의 힘을 빌렸다. 마당에 키(곡식 따위를 까불러 쭉정이나 티끌을 골라내는 도구)를 쓰고 쭈그려 앉았다. 할머니는 작은 바가지 안에 밥과 반찬 그리고 물을 섞었다. 그리고 회 뜨는 칼을 밥에 푹푹 찌르며 내가 얼른 낫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기도라고 썼지만, 타령 같기도 했다.
다음 날 나는 학교에 갔다(개근상에 목숨 거는 어린이였다). 배가 너무 아파 조퇴하고 다시 집으로 왔다. 결국 나는 할머니랑 급하게 병원에 갔다. 의사는 왜 이제야 왔냐고 다급하게 말했다. 나는 수술실에 들어가 맹장 수술을 했다. 일주일 입원 후 퇴원하고 실밥을 풀었다. 그렇게 내 오른쪽 배 아래에는 지네 한 마리가 그려졌다. 지금은 시간이 많이 지나 흐릿하다.
G는 초등학교 6학년 때 맹장 수술을 했다. G는 친구들과 놀기를 좋아하는 어린이였다. 복통이 있었지만 참고 친구들과 축구했다. 하지만 하루, 이틀, 사흘쯤 되니 복통이 노는 욕구를 넘어섰다. G는 어머님께 배가 아프다고 말했다. 좀처럼 어디 아프다는 말을 잘 꺼내지 않은 G여서 황급히 병원에 갔다. 의사는 왜 이제야 왔냐고 말한 후 다급히 수술에 들어갔다고 했다. G의 맹장 수술 자국은 나보다 가로로 조금 더 길다.
그동안 흉터 하면 ‘흉하다’라는 형용사가 자연스레 뒤따라왔다. 흉하다는 표현은 징그러운 걸 볼 때 주로 사용한다. 흉터가 흉해 보일 수도 있지만 맹장 흉터는 더 이상 G와 나를 아프게 하지 않는다. 흉터를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는 이상 의식되지 않는다. 오히려 서로의 맹장 흉터를 보고 반가워했다. G와 나는 맹장 흉터 외에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흉터에 대해 소개했다. 어떤 흉터는 웃기고 또 흉터는 슬펐다. 하지만 아프지는 않다. 그저 상처가 잘 아물고 지나가 흉터로 남아 있을 뿐. 흉터는 흉하다 이야기보따리, 토크 박스, 내가 이렇게 잘 살아왔다 배틀 참여권이라 불러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