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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신 Jul 16. 2023

매번 나를 빡치게 만드는 그는 어쩜 천사가 아닐까?



 지금 일하고 있는 카페에서 근무한 지 1년 반 정도 됐다. 사계절 내내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주문하는 할아버지가 있다. 앞으로 이 할아버지를 천사라고 칭하겠다. 천사는 올겨울부터 나에게 대화를 시도하지만 대체로 잘 이어지지는 않는다.


1. 뭐 하는 사람인교?


 올해 2월, 내가 카페에서 일한 지 딱 1년이 되었다. 그날 저녁도 어김없이 천사는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나는 샷을 뽑고 있는데 천사가 “뭐 하는 사람인교?”라고 물었다. 카페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을 보고 뭐 하는 사람이라니. 천사는 나를 볼 때 카페 일 외에 다른 밥벌이를 하고 있을 거로 추측했던 것 같다. 커피가 천사에게 나가기까지 2분도 채 안 걸린다. 이 질문에 어떻게 답해야 유연하게 넘어갈 수 있을지 머리를 굴렸다. 결국, 내 사생활을 굳이 말할 의무는 없으니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안 하기로 했다. 대답하지 않으면 이 질문에 답하기 어려울 거란 내 비언어적 메시지가 전달될 줄 알았다.


 “커피 만드느라 안 들렸나 보네. 뭐 하는 사람인교?”


2. 학생 아니죠?


 다음 날 저녁에도 어김없이 천사가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사러 왔다. 어제 본인의 질문이 구체적이지 못하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오늘은 대뜸 “학생 아니죠?”라고 질문했다. 학생 아니라고 하면 펼쳐질 그의 고나리질이 싫어 답을 안 했다. 천사는 코어에 힘을 잔뜩 주고 쩌렁쩌렁하게 “학! 생! 아! 니! 죠?!!!!”

이제는 더 이상 물러날 길이 없다.


 “그럼, 제가 학생 아니면 뭐 하는 사람 같아요?”

 “아. 거기 까지는 생각 못해봤는데. 어쨌든 나이가 있어 보이는데 학생 아니죠? “

 “학생인데요. “

 “아, 늦게 대학 들어갔나 보네.”

 “아니요. 대학원생이에요.”

이렇게 답하면 조용히 이 대화가 종료될 줄 알았다.


 “아니! 대학원 다니면서 왜 이런 데서 일하고 있어? 공부 열심히 해야지!!!”


나는 궁금했다. 첫째, 그는 ‘이런 데서’라고 칭하는 곳에서 왜 매일 커피를 사 먹는지. 둘째, 그가 생각하는 대학원생의 모습은 무엇인지. 셋째, 내가 공부를 열심히 하는지 안 하는지 어떻게 아는지. 넷째, 나는 여기서 카페 시간제 근로자일 뿐인데 왜 연구에 힘 쏟지 않는 태도와 정신머리에 대해 훈계를 들어야 하는 건지.


“대학원 갈 차비랑 밥도 먹고 책도 사야 할 거 아닙니까.”

이 대화 이후로 한 달 정도 천사는 어떤 말도 하지 않고 커피만 사 갔다.


3. 이제 결혼까지 묻는 천사


 한동안 커피만 사 가던 천사가 목소리를 내었다. “결혼은 언제 하는교?”

 내가 공부와 연구에 힘 쏟지 않는다고 훈계를 한 사실은 잊어버린 걸까. 그리고 천사는 대체 왜 선 넘는 질문을 하는 걸까. 나는 느끼지 못하는 친밀감을 혼자서 느끼고 있는 걸까. 천사의 질문이 어처구니없어 대답하지 않았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결혼 언제 할 거냐 묻는 천사.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계속해서 그의 말에 답하지 않는 나에게 화를 낼 수도 있고 스스로 아, 이 질문이 무례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그 둘 다 생각하지 않았다. 어쩜 둘 다 생각했지만, 행동으로 옮기지 않을 것일 수도 있다. 어찌 되었든 천사는 내가 답할 때까지 성실히 물었다.


“결혼 안 해요.”

“왜 안 해?”

“능력 키워서 혼자 살려고요.”


”아니! 그럼, 결혼 한 사람들은 능력이 없어 결혼했나!!! “


 어떻게 하면 ‘능력 키워 혼자 살겠다.’라는 말을 이렇게 해석할 수 있는 걸까. 나는 천사의 사고 흐름을 절대 이해할 수 없을 거다. 그는 천사니까. 이번에도 역시나 전혀 예측하지 못한 대답이다. 천사는 이번에도 코어에 잔뜩 힘을 주며 내 발언이 얼마나 경솔한지에 대해 반박했다. 다행히 그 반박은 오래가지 못했다. “어르신, 주문 좀 합시다.”

 다음 날 천사는 커피를 주문하며 “어제는 내가 너무 했수다.” 했다. 본인의 행동이 너무 했다는 걸 알아서 다행이다.


4. 나에게 인내심이 대단하고 하는 천사

 

 영원할 것 같던 코로나도 팬데믹에서 엔데믹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6월 1일부터 마스크 해제가 되었다. 방역 조치가 완화된 것이지 코로나가 종식된 건 아니다. 카페에서 일하면 많은 사람을 만나니 마스크를 더욱 벗을 수 없다. 또, 반대로 내가 손님 입장이어도 커피를 만드는 사람이 마스크 착용하고 있는 게 위생적으로 보인다.

 날씨가 슬슬 더워지면서 천사도 마스크를 벗었다.


 “이제 마스크 해제인데 왜 마스크 안 벗어요?”

 뭐라고 해야지. 마스크는 착용 여부는 자유인데 이걸 설명해야 한다는 사실이 귀찮고 힘 빠졌다.

하려니 단전에서부터 빡침이 밀려왔다. 천사에게 무례한 대답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대답을 안 했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역시 천사에게 포기란 없다.

”다른 근무자들은 마스크 벗고 일하던데, 안 답답하요?“

”네. 마스크 쓰는 게 저나 손님들에게 위생적이니까요. “

”아이고~인내심 대단하십니다~“


 언제나 천사는 단전에서부터 빡침을 불러일으키는 질문과 대답을 한다. 하지만 이건 신의 명령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천사의 업무라 생각하기로 했다. 마음속으로 ‘저 사람은 사람이 아니다. 천사다. 천사다. 천사다. 천사의 말이다!!!!!’ 인간인 내가 천사를 이해하는 건 무리다.  또 한편으론 다른 뜻이 있을 거로 생각했다.


 올해부터 브런치에 매주 한 편씩 글을 게시하기로 다짐했다. 일요일을 마감일로 정했지만 잘 지켜지지 않는다. 당장 글을 쓰지 않는다 해서  불이익이 발생하는 게 아니니 글쓰기는 내 삶에서 언제나 뒷전이다. 바빠서, 피곤해서, 날씨가 안 좋아서, 배고파서, 배불러서, 글감이 없어서 등 글을 쓰지 않을 이유는 차고 넘쳤다. 글쓰기에 나태해진 나를 당장 뭐라도 쓰고 싶게 만드는 천사. 그는 어쩌면 이 글을 쓰게 만들기 위한 장기 계획이 아니었을까. 매일 조금씩 글을 쓸 테니 이제 더 이상 에피소드를 안 만들어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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