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사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 끝도 없이 트인 하늘이고, 그 아래로 날아다니는 푸른 새들이지.
지난 학기에는 매 순간 불안을 느끼다 보니 자주 하늘을 쳐다보게 되었어. 그때마다 하늘에는 어김없이 어딘가로 향하는 비행기가 떠있더라구. 괜히 공항 근처로 대학을 정했나 싶을 정도로 떠다니는 비행기를 괴로운 마음으로 쳐다보곤 했어.
한 없는 하늘을 기약 없이 쳐다본다 해서 그리운 마음이 줄어드는 것도 아닌데, 자꾸만 하늘을 쳐다보게 되더라구. 바라볼수록 푸르러지는 하늘을 보며 내년에 볼 하늘은 조금 더 다른 느낌일 거라고 열심히 되뇌어 보기도 했어. 그러다 보면 하늘빛조차 회색인 한국이 그리워지고, 꿈결에 그린 마음은 더욱 파랗고 깊게 물들어가는 거지. 이렇게 마음으로 그린 풍경이 눈으로 본 풍경보다 더욱 실감 나고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을 향수라 하나 봐.
이제 귀국 날이 두 달도 채 남지 않았어. 그러니 이제야 이곳의 아름다움이 눈에 들어와. 동기들이 그러는데, 텍사스는 자연이 아름다운 곳이라고 할 순 없대. 너무 크고, 너무 거칠고, 모든 게 다 허공에 지은 집처럼 드문 드문 서 있으니 말이야. 하지만 나는 이곳의 푸른 하늘이 너무 좋아. 이곳은 마치 땅 위에 떠 있는 섬 같아서, 어딜 가도 온통 푸른빛이야. 이따금 날아다니는 독수리는 참새 만해 보이고, 날아가는 비행기가 독수리만 해 보이는 다채로운 하늘이지.
그런데 나는 땅보다는 숲이, 숲보다는 하늘이 더 아름다운 것 같아. 땅에 사는 것들은 언제나 그림자를 드리우는데 하늘에 사는 것들은 그림자조차 지지 않잖아? 어둠이 많은 삶일수록 음영이 적은 하늘을 사랑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인가 봐. 그래서 품은 마음을 기도로 올려 보낼 때에, 하느님 보시기에 가장 아름다운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기도를 올리곤 해. 하느님 보시기에 이런 그리움도 사랑의 일부였으면 좋겠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만남은 허다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가장 귀한 일이야. 자기 자신으로 사는 것은 편안하지만 그만큼 지겨운 일이기도 하니까. 우리의 자아는 너무나 좁고, 우리가 허락한 일상은 너무도 규칙적이야. 작은 상자 속에 들어가 조금씩 샇여 가는 재화를 뿌듯하게 여기며 아무리 내가 머무는 상자 안을 밝힌다 해도, 좁은 창틈 새로 들어오는 햇볕에 서둘러 바깥을 나가고 싶어 져. 십원 한 장 들지 않는 햇살이 십억으로도 살 수 없는 우리의 집보다 더 값진 건 왜일까.
나만을 사랑하는 것으로 성에 차지 않아서 남을 사랑하게 되는 건 아닐 거야. 내 마음을 밝히다 보니 사랑하는 사람을 들이지 않고는 버틸 수가 없는 것 같아. 좋은 일엔 많은 사람이, 그리고 그만큼 많은 축하와 감사가 있어야 하니까 말이야. 내 삶을 넘치게 사랑하다 보니 사랑하게 된 오빠의 인생으로 인하여, 또다시 나는 내 삶을 넘치게 채우고 있어. 이렇게 넘치는 사랑만으로도 우리의 만남은 지속될 수 있는 것 같아.
그래도 언젠가 서로를 아끼는 마음에 그림자가 지는 순간이 오면, 나는 가만히 하늘을 바라볼 거 같아. 이 부족한 마음은 저곳으로 올라가 그림자를 떼어놓고 올것으로 믿으면서 말이지. 그러면 저 하늘에 계신 분들이, 일평생 사랑만 하며 산 그 누군가가, 우리가 올려 보낸 어려운 마음을 말끔히 씻어 우리에게 돌려줄거야. 심바가 물어보잖아. 저 별은 다 무엇이냐고. 오빠와 내가 현실의 어려움조차도 사랑을 키우기 위한 별빛으로 여길 때 그제사 나는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통해서 흔들리는 다른 존재들을 떠올리는 게 아니겠어? 삐삐가 그랬고 묭어가 그랬듯이 사랑이 다른 사랑을 낳을 수 있도록 그림자 지는 그리움을 영예롭게 여기고 있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