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지인 Oct 16. 2021

불혹을 두 달여 앞둔 엄마의 마흔 앓이 프리뷰

정신력만이 무기인 엄마의 몸속에서 일어나는 일


차라리 배가 아팠으면 했다.

두통이라면 더 견딜만할 것 같았다.


올 해는 유난히 처음 겪는 증상들로 병원을 자주 찾았다.

다양한 병증으로 치과, 피부과, 안과 등을 들락거렸는데, 병원마다 '스트레스로 인한 급성 질환'이라는 짠 듯이 똑같은 결론들을 내렸다.

만병이 퉁치는 근원 1순위, '스트레스'.


평소 같았으면 ‘내년에 나이 앞자리 숫자 바뀐다고 예고편이 좀 센데?’하고 웃으며 넘겼겠지만 이번은 달랐다.

화장실을 갈 때마다 공포를 느낄 만큼 극심한 통증을 병원에서 처방해준 약으로 견디다 기어이 혈뇨를 보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열이 39도까지 오르락내리락하였고 누운 자리의 시트는 땀으로 젖었다.


사진출처 : 망고보드(www.mangoboard.net)



가시지 않은 마지막 배뇨통으로 배를 움켜쥐고도 곧장 응급실로 출발하지 못한 채 나는 남편과 대책을 세워야 했다.


‘애들은 어떡하지?’


아이들의 등교와 등원부터 그다음 날을 위한 모든 준비를 마치는 저녁 일과까지의 시간표가 머릿속에서 헤쳐 모여를 반복했다.


입원을 하게 될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려는 사고 회로가 바삐 돌아갔다.

그 만일의 하루를 위한 일정은 내가 없이 남편이 감당해야 할, 그리고 시부모님께 부탁드려야 할 염치불구의 스케줄로 재편성되고 있었다.


고맙게도 남편은 빨리 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아이들은 걱정 말라며.

다만 운전은 내가 직접 해서 혼자 가야 했다.

여전히 아이들은 내일을 위해 정해진 시간에 잠자리에 들어야 하니까.


차를 달려 인근 병원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 입구에서 발열체크를 하던 이는 다른 응급환자들은 그냥 보내주면서 나에게만 ‘어떻게 오셨냐’고 물었다.


“응급실 진료받으러…(아니 아프니까 왔지요)”


제 손으로 운전해와 심야 주차 자리를 물어보곤 보호자도 없이 응급실로 걸어 들어오는, 심지어 등에는 백팩까지 멘 사람이 응급 환자 같아 보이진 않았겠지만.


그날 오전에 진료받은 기록이 있어 다행히 꾀병환자로 의심받지 않고 곧바로 채혈과 심전도 검사 후 링거로 진통제부터 투여받았다.


혈액검사 결과가 나온 뒤에 코로나 검사를 받고 밤늦게 입원을 하게 되었다.

이번에도 역시나 성미 급하게 찾아오셨다는 '급성'신우신염이라고 했다.

염증 수치가 정상의 열두 배가량 높다며 곧바로 병실로 들여보냈다.

(신우신염 : 요로감염의 일종으로 신장에 세균 감염이 발생한 것을 말한다.) 


사진출처 : 망고보드(www.mangoboard.net)



내가 입원을 해본 적이 있던가.


초등학교 때 교통사고로 며칠 입원했던 기억은 있지만 입원할 만큼 아팠던 적은 없었다.


몇 년 전 동하가 폐렴으로 입원해서 동하를 돌보느라 며칠 이 병원에서 밤을 보낸 적이 있지만 링거를 꼽고 누워있는 잠자리는 영 불편했다.


나까지 꽉 찬 6인실은 그 여름밤에도 에어컨을 틀지 않은 채 모두가 깊이 잠들어 있었다.

간혹 들리는 각기 다른 헛기침 소리를 들어보아 모두 어르신들인 듯했다.

(시원한 바람은 포기)


가방에 있던 치약 칫솔로 양치를 하고 보조배터리로 핸드폰 충전을 한 뒤, 남편에게 입원 사실을 알리고 누워 그대로 밤을 새우고 말았다.


더위, 불편한 침상에 더불어 두어 시간마다 들어와 열체크 및 주사약을 교체하는 간호사 선생님들의 헌신적인 방문은 마치 새벽에 몇 번이나 우유를 달라며 깨던 아이들의 울음처럼 잠을 허락해주지 않았다.


이 침대에서 잠을 자는 것이 괴로워서라도 건강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부터 전화는 불이 났다.

걱정하는 남편과 양가 부모님들의 전화, 입원한 줄 모르고 걸려오는 업무 전화, 알지만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업무 전화.


다른 환자들에게 방해가 될 것 같아 1인실을 신청해서 병실을 옮겼다.


몸도 마음도 불편했지만 마냥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고될 만큼 성실하게 하루하루를 보내왔다는 것을 의학적으로 증명해냈다는 다소 철부지 같은 생각이랄까?

기왕 아픈 거 입원 정도는 해야 곳곳에서의 나의 부재를 완전히 양해받을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기분이... 씁쓸하지만 들었다.


운동을 못하니 몸의 긴장감도 떨어지고 살도 약간씩 붙으면서 늘 최상에서 조금은 먼 컨디션을 표준으로 삼은 지가 꽤 되었다.


거기에 더해 가끔씩 두통이나 식체, 약한 몸살이 오는 것 정도로는 일상을 멈출 수 없었다.

아이들은 여전히 부모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매일 해내야 하는 내 몫의 일들이 가족의 생활을 영위하는 데에 꼭 필요한 것들이라 그 쳇바퀴에서 분리되면 도리어 불안했다.

엄마로서 내가 성실하게 해내 온 자잘한 책무들은 너무나 작고도 소중한 그런 것들이다.


스트레스라는 자극은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살아있음의 징표 같은 것인데 어느샌가 힘듦을 표현한다는 것이 철없는 엄살처럼 느껴지는 나이가 되었다.


해저 지진의 조짐이 드러나지 않는 평온한 해수면처럼 다들 그렇게 사는 거겠지.

그러다 때로는 나처럼 5일 만에 치료가 되는 질환으로, 불행하게는 큰 병으로.......

강한 의지와 정신력이 메워온 밑 빠진 독에서 빠져나간 것들을 끝내는 갚아야 한다는 사실을 이제 나는 기억하면서 살아야 할 때가 되었다.



사진출처 : 망고보드(www.mangoboard.net)


작가의 이전글 엄마들이 운동을 안 하는 데는 다아 이유가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