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선행을 하려고 노력한다. 봉사활동을 한달지, 기부를 한달지 대단한 건 아니고 누군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을 마주했을 때 주저하지 않고 손을 먼저 내미는 정도다. 호의를 베푼다는 게 적당한 표현이려나. 모태 천주교이지만 냉담 중인 내가 천국을 가기 위해서는 아니고, 문득 내가 그동안 받아온 친절에 답할 차례라는 생각이 들었다.프랑스에서 지내며 느꼈던 소소한 친절을 한국에서는 찾을 수 없었기에 그런 것 같기도하다.건물에 들어갈 때 문을 잡아주면 고맙다고 하는 사람을 한국에서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좁은 길을 지나가다 어깨를 부딪쳐도 미안하다고 한마디 하는 법이 없다.남에게 없는 친절을 바라기보다는 내가 먼저 친절해져 볼까? 하는 마음을 먹어봤다.
가장 최근에는 요가를 가던 중에 상대는 모를 착한 일을 하나 했다.토요일 아침 8시였나, 비교적 이른 시간이었는데 젊은 남자가 밤새 술을 마시며 놀았는지, 아니면 마약을 했는지 지하철 의자에 앉아 기절해 있었다. 핸드폰(아이폰)과 지갑(루이비통)을 바닥에 떨어뜨렸는데도 정신없이 자더군. 내리는 길에 핸드폰과 지갑을 주워서 그 남자를 깨웠다. 저기요! 저기요! 몸이 절반으로 접혀있던 이 남자를 아무리 흔들어도 반응이 없었다. 요가원에 가야하는지라 핸드폰과 지갑을 그 남자의 상반신과 하반신 사이에 끼워놓았다. 그리고 손을 뺐는데, 새끼손가락에 걸쭉한 그의 침이 묻어 나왔다. 오 마이갓. 순간 그 남자 옷에 침을 닦으려다가 한숨을 쉬고 일단 내렸다. 역에서 요가원까지 한 500m는 걸었으려나. 으 찝찝해서 죽을 뻔했다.
와인바에서 만난 아리스티드 브뤼앙 par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
가장 기억에 남는선행은 올해 초 하와이로 출장을 갔을 때였다. 출국 심사를 받으려고 음악을 들으면서 책을 보고 있었다. 줄이 꽤 길었고, 내 앞에는 신혼부부로 추정되는 한국인 커플이 있었다. 갑자기 여자가 남자한테 기대더니 바닥에 주저앉아 정신을 잃었다. 깜짝 놀라서 큰소리로 도와달라고 외쳤더니 3명이 우르르 달려왔다. 의료진으로 보이는 사람이 청진기, 랜턴 등을 갖다 대며 쓰러진 여자 옆에 있는 남자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하는데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다. 혹시 영어를 하시냐고 물었더니 거의 우는 표정으로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도와드리겠다고 하고 통역을 해드렸다. 정말 다행히 여자가 금방 정신을 차렸다. 일단 패스포트 컨트롤 구역을 나가자고 했다. 직원이 나를 보면서 너도 일행이니? 묻길래 아니라고 하니까 너도 따라와! 해서 그 긴 줄을 뚫고 아주 빨리 입국 심사를 마칠 수 있었다. 이득!
당황해하는 외국인을 마주칠 때면더 적극적으로 도와주려고 한다. 한 번은 요가가 끝나고 집에 가던 길에 외국인 커플이 구글 맵을 보면서 씨름을 하고 있는 광경을 목격했다. 호텔을 찾고 있는데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마침 역 근처에 있는 호텔이라 내가 안내할 테니 함께 가자고 했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구글맵보다는 네이버 지도를사용하는 게 나을 거라고 해줬다. 두 사람은 네덜란드에서 온 커플이었고, 가는 동안 이런저런 담소를 나눴다. 헤어질 때는 고맙다며 여자친구가 나에게 가볍게 포옹을 했다. 그 포옹에 마음이 따뜻해져 기분이 좋았다. 내가 선행을 한다고 나에게 바로 보상이 주어지지는 않지만, 덕을 본 상대가 앞으로 누군가에게 선행을 베풀고, 또 그 사람이 선행을 베풀고 하다 보면 선순환의 반경이 점차 넓어져언젠가는 나에게까지 와닿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