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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심한 째까니 Oct 22. 2024

삼켜야 하는 말

상처

수화기 너머로 끊임없이 우는 소리가 들립니다. 오늘도 그녀가 웁니다. 탁자에 내려앉은 먼지를 검지로 쓸어 모으며 소리가 잦아들기를 기다립니다. 그녀가 코를 훌쩍이며 미안하다고 합니다. 손가락을 따라 먼지 길이 난 탁자를 바라보며 "괜찮아."라고 합니다. 제발 그만 좀 울라는 말은 삼킵니다. 지금 그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니까요.     


그녀는 눈물이 많았습니다. 어린 시절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늘 코끝에 붉은 울음을 달고 다녔습니다. 고무줄놀이나 사방치기를 하다가도 울었습니다. 눈과 코가 빨개져서 집으로 온 그녀를 대신해 그녀의 친구들을 혼내러 뛰쳐나가곤 했습니다. 나보다 세 살 위인 그녀의 친구들에게 악다구니를 써 댔습니다. 치켜 올라간 눈으로 힘껏 째려보는 것도 잊지 않았죠. 조그만 게 오지게 사납다고 동네에 소문이 자자했습니다. 수십 년이 지나서도 그녀의 친구들이 "니 동생 아직도 사납냐?"라고 묻는다고 했습니다. 이제 아니라고 결혼하고 아주 순해졌다고 하니 믿지 않더라고 했습니다. 눈물이 많은 그녀 덕분에 사납게 살았습니다. 물론 잘 울지도 않았습니다.     

 

어른들은 그녀가 눈물이 많은 게 눈 밑에 난 까만 점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눈물을 받아먹는 점이라 슬픈 일이 자꾸 생긴다고 했습니다. 점을 뺐습니다. 그러나 눈물은 마르지 않았습니다. 상처의 크기만큼 눈물의 양만 조금씩 변할 뿐 그녀의 코끝은 자주 붉어졌습니다. 생채기를 꿰매야 아무는 사람이었습니다. 나는 그녀의 눈가가 빨개지려 하면 소리를 질렀습니다. 약한 게 싫었습니다. 울기부터 하는 그녀가 버거울 때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화도 많이 냈습니다.   

  

이제는 그녀가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어도 화를 낼 수 없습니다. 몇 달 동안 그녀는 울고 있습니다. 가끔 짜증이 나려 하면 나를 용서할 수 없어 상처를 냅니다. 그녀의 이번 상처는 영원히 아물지 못할 거란 걸 아니까요. 수의(壽衣)를 입은 아이를 본 엄마의 상처가 어떻게 아물 수 있을까요?      


우리 자매는 더 이상 불행하면 안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충분히 불행했으니까요. 하지만 세상에 충분한 건 없다는 걸, 한여름에 그녀의 차가운 발을 주무르며 알았습니다. 그녀의 흐느낌이 멈춥니다. "밥 잘 챙겨 먹어." "응." 이제는 이런 일상적인 말을 건넬 수 있어 그나마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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