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가장 바쁜 12월과 1월이 지났다. 생활기록부의 마지막 확인을 위한 2월 출근 기간도 모두 지난 마지막 날. 누가 봐도 퇴사자인 것처럼 박스를 안고 나서고 싶지 않아 짐을 미리 빼 두었더니 더없이 자리가 휑 하다.
아이들에게 인사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밤잠을 설치며 고민했다. 지역 만기로 이동하시는 선생님들과 4,5년의 근무 기간을 꽉 채워 전출 가시는 선생님들께서는 2학기 학기말부터 아이들과 인사를 하며 마무리를 지으셨지만, 몇 년을 더 남게 될지, 발령이나 복직의 이슈로 계약이 만료될지 모르는 나는, 늘 아이들의 '내년'질문을 구렁이 담 넘어가듯 넘어가다 오늘에 이르렀다. 다행(?) 히 다음 학교가 일찍 결정되어 조금 덜 멋쩍게 인사드릴 수는 있게 되었지만, 문제는 정이 많이 든 아이들에게 어떻게 설명할지 고민하다 시간이 흘렀다. 마지막 날에 만나는 아이들에게라도 인사를 해야 할지, 각자 서로의 길을 쿨하게 갈지 고민하는 밤은 시간이 흘러도 익숙해지지 않는 나의 숙제다. 올해 담임이었다면 종례 시간에 자연스럽게 인사를 할 텐데..
하루에도 수백번 오갔던 복도, 안녕. '찐 으른처럼 쿨하고 멋지게 혼자 교문을 나오자!' 결론을 내리고 출근을 했지만, 막상 아이들을 보니 또다시 마음이 흔들린다. 여느 때처럼 별것 아닌 일로 미주알고주알 수다를 떨러 온 아이들에게 조심스레 인사를 건넸다.
"사실, 선생님도 오늘이 마지막이야. 다른 학교로 옮겨 가게 됐어. 미리 인사 못해서 미안해. 건강하게 잘 지내! 한 해 동안 고마웠어!"
늘 그렇듯 장난인 줄 알며 또 휴직 얘기냐고, 또 도망간다는 얘기냐고 안 믿는다고 칭얼거리던 아이들 눈에 눈물이 차오른다. 동아리는 그러면 어떻게 되는 거냐고. 내년에 세계사랑 한국사는 누가 하냐고. 올해 오셨다면서 왜 벌써 가는 거냐고..
한 시간 뒤에는 소문을 듣고 여기저기서 아이들의 습격이 시작되었고, 어떻게 교문 밖을 나갔다 왔는지 급하게 사 왔다며 귀여운 쿠키통을 손에 들고 오는 아이들도 보인다. 자기가 먹으려 했지만, 떠나는 길에 먹으라며 쪼꼬바를 가져오기도 한다. 영란언니법이 걸리긴 하지만, 난 여기서 계약 만료이므로 아이가 버렸다 치고 내가 주웠다 치기로 한다.
참 예쁜 아이들이었다. 고마운 내 새끼들.
축제도 체육대회도 수학여행도 이젠 추억이다:-) 헤어짐은 언제나 쉽지 않다. 어떻게 얘기해야 할까, 어떤 반응일까. 그럼 나는 어떻게 대응하면 좋을까, 번호를 달라고 하는데 오픈하면 좋을까, sns도 보일 텐데.. 선생님들께 마음을 담은 선물은 해야 할까, 어느 분까지 하면 좋을까, 교장선생님이 학교에 나오지 않으시면 전화로 인사드려도 괜찮을까..
울면서 끌어안는 아이들을 다독이는 마음은, 같이 저며오지만..구남친들과의 이별이 친구들과의 웃긴 에피소드로 남았듯, 곧 사그라들 것을 안다. 새 학기가 시작되면 새로운 각자의 자리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이 과정을 반복하겠지. 이 아이들이 장성해서 어른이 되어도 나와 나누었던 역사 이야기들이 재미있게 기억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치열하게 했던 역사 게임들이 신나는 기억으로 남고, '아, 맞다 그런 선생님이 계셨지' 마음 한켠이 따뜻한 학창 시절 한 자락으로 남길 기도한다.
잘 크거라 아가들아, 우린 또 예상치 못한 곳에서 예상치 않게 만날 날을 기대하며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자. 나에게도 좋은 추억을 만들어주어 고마워. 종알종알 TMI 얘기하러 내려와 줘서 고마워. 아직도 이런 걸 먹냐며 놀렸지만 마이쮸랑 트윅스 나도 좋아해. 덕분에 많은 사랑을 받고 당 수치도 올라가고 살은 또 쪘구나. 그것도 고맙다. 건강해야해. 고마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