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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트랄 Aug 09. 2023

발리에 두 번 살다 (1)

2008년 그리고 15년 후, AJ 커피점

2008년부터 1년 간 나는 발리에 살았다.


Rainforest Alliance란 환경 NGO에서 일했는데, 아시아(주로 인도네시아)와 오세아니아에 있는 산림들과 목재 기업들을 인증하는 일을 했었다. Rainforest Alliance는 멕시코에 본사를 두고 미국인들이 시작한 기관으로 그 때에는 한국에 크게 알려지지 않았으나, 지금은 커피 컵에 찍힌 개구리 마크로 유명해졌다. 믿거나 말거나, 15년 전에 내가 이 기관에서 유일한 한국인으로 일하기 시작하면서 발자국을 찍은 보람이 났다고 말하고 싶다. 


나는 지난 토요일 밤에 인생 두 번째로 발리에 살러 왔다. 이번에도 일을 하러 왔는데, 이번에는 CIFOR라는 국제임업연구소에서 일하러 왔다. 원래는 2년 전부터 자바 섬으로 가야 맞았으나, 코로나 사태로 서울에서 근무를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발리에 양묘장을 조성하고 프로젝트를 유치하게 되면서 근무지가 바뀌었다. 인도네시아 정부에서 발리만큼은 외국인에게 빠르게 개방했던 덕을 보았다. 


사람에게는 운명의 땅이 있다. 내가 어딜 가도 나를 기다려주는 그런 땅.

내게 발리가 그러하다.

나는 15년 전에 이 곳을 떠나며 멈춰 두었던 나만의 시계를 다시 재깍재깍 돌리기 시작했다.

앞으로 1년 간 나의 시계는 또 어떤 삶을 기록하게 될까.


정말로 다시 오게 될 줄 몰랐다. 

그러나 인도네시아는 다시 나를 불렀고, 그 중에서도 발리 섬이 나를 품어 주었다.

전에는 남편과 둘이 왔으나, 이제는 아들도 함께 왔다. 

아들은 발리 생활을 마치고 시애틀을 거친 후 서울에서 태어났다. 

아침에 아들을 학교에 바래다주고 근처 커피숍에 와서 미팅을 하고 컴퓨터로 작업을 하고 이렇게 글을 쓴다.



AJ커피점은 3호점으로, 1호점은 자카르타에, 2호점은 발리의 다른 곳에 있다. (아재 커피숍인가? ㅎㅎㅎ)

킨타마니 화산 지역에서 기른 커피콩으로 커피를 내리는데, 그 맛이 몹시 신선하여 화들짝 놀랐다.

프랜차이즈 점에서 맛볼 수 없는 놀라운 커피가 2만 루피아 밖에 하질 않는다. 

우리나라 돈으로 1700 원 정도인데 (2000원 커피라고 부를만 하다) 그나마도 반값 할인 행사 중이라, 900원도 안되는 돈으로 한 잔을 근사하게 마실 수 있다. (반값이라 좋아서 나는 어제도 오늘도 두 잔을 마셨다.)


8월 발리는 별로 덥지 않다.

발리는 적도보다 아래에 있어서 한국과 계절이 반대이다. 

기후 변화 때문에 한국보다 스콜도 적게 내리는 것 같다. 

전에 살 땐 비가 정말 자주 왔었는데, 이번 달은 아주 온화하다. 

왜 이렇게 유럽인들이 악착같이 오는지 좀 알 것 같다.


8월의 발리는 유럽 남부의 도시인 양 유럽인들이 많이 온다. 

물가는 싸고 영어는 통하고 날씨도 온화하니 그들에게 최적의 도시이다.

휴가를 즐기러 온 사람들에게 발리는 그야말로 신의 섬이다. 

일하러 온 사람들에게는 그냥 사람의 섬이라고 해 두자. :)


시간이 날 때마다 조금씩 브런치에 써 보려 한다.

15년 전에 너무 바쁘게 일만 하며 살다가 글을 적게 남긴 것이 아쉬웠었다. 

이번에는 후회 없게 최선을 다해 글을 남겨 보는 것으로.


아직까지 이 커피숍이 한가해서 오전 8시부터 11시 지금까지 손님이 나 뿐이었다.

커피숍이 아주 유명해질 때까진 여기서 편하게 일하는 것이 가능할 것 같다.

매일 아침 여기로 출근하면 한 달에 2만원 내며 커피를 마시는 오피스가 생긴 셈이므로.


바리스타들과 짧은 바하사로 대화를 나눠 보았는데, 그들은 내게 감사합니다라고 말해야 하나 아리가또라고 말해야 하나 망설였다. :) 나는 줌으로 1년 정도 바하사를 배웠는데도 현지인들과 소통하는 것이 아주 원활하진 않다. 역시나 한국 사람은 학원을 다녀야 뭔가 느는 것인지 ㅎㅎㅎ


오늘은 여기까지. 내일은 아들 학교에서 몇 가지 학부모를 위한 세션이 열린다. 

이만 집으로 가서 빨래를 해서 따사로운 햇볕 아래 말려야 겠다. 아까운 이 햇살, 서둘러 붙잡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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