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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하 Jun 06. 2022

일그러진 초상

인간 실격

여태껏 체념에 제법 내성이 생긴 줄로만 알았다. 포기하는 삶, 자아가 지워진 삶.


그러다 우연한 계기로 일생일대의 기적을 만났고, 자존감의 고조로 이어진 자기 효능감과 성취는 이를 테면 덤으로 주어졌다. 실로 오랜만에 경험하는 환희, 선물 같은 나날의 연속이었다... 이'었'다.


낙원은 나락과 한 끗 차이임을 미처 간과했다. 내성이 무력해진 틈을 타 손바닥을 뒤집듯 휙휙 뒤바뀌는 변죽의 지속은 이전보다 더한 혼란을 초래했다.


얼키설키 뒤엉킨 감정의 실타래를 직격탄으로 맞으니, 혼란이 휩쓸고 간 자리엔 어김없이 내상이 남아 지독한 통증에 시달린다. 마음살에는 부산물처럼 몸살이 자연히 뒤따른다. 자욱한 안갯속에서 어른어른 거리는 흐리멍덩한 형체 인양, 정체가 모호한 열병이 시작된지 거진 2년이 다 되어간다. 이에 죄의식이 더해지니 종종 숨이 막힐 지경이다.


 가로막힌 벽을 기어이 넘어보겠다고 온 몸이 부서지도록 불살라봤지만 결국 한 줌 재조차 사치인듯 바람결에 흩어지고 없다.


소박하다면 소박할 일생의 숙원은 역시 나와는 동떨어진 것이었다. 어차피 오랫동안 체념에 길들여진 삶이었건만. 체념에서도 멀어지자 이도저도 아니게 되버렸다.


이럴 거면 영원히 희망을 갖게나 하지 말던가. 달리 희망고문일까. 철저한 확인 사살이다 못해 희롱과 진배없다. 같잖은 희망에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들뜨다가 순식간에 곤두박질치며 절망에 찬 몸부림까지, 얼마나 우스운가. 이렇듯 나의 비극은 곧 누군가의 희극이니, 마찬가지로 나의 자조는 한낱 웃음거리가 고작일 테지.


자신의 하찮은 일생을 무심하게 관망하는 양 초점 하나 없는 눈 속에는 간신히 인두겁을 쓴 일그러진 초상이 담겼다. 허상이자 실상, 그야말로 적나라한 나의 진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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