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아홉: 고착화된 사고에 부어지는 윤활유
삶 자체가 이미 주옥같은데도 굳이 감정을 극대화해 카타르시스를 느끼는지가 항상 의문이었는데. 최근에야 그 궁금증이 다소 해소된 듯하다. 카타르시스란 어쩌면 외부로부터 강렬한 정서를 간접 경험함으로써, 내면 깊숙이 잠식된 시선을 분산시키고자 함이다. 무미건조한 일상의 반복으로 고착화된 사고에 윤활유를 부어준달까.
극대화된 감정의 말미에서 파도처럼 밀려오는 동질감 내지는 연민으로 살아갈 힘을 얻으며 또한 앞으로의 모진 풍파를 미리 대비한다. 그러니 현실을 잊고자 몰입하는 비현실은, 결국 현실에 대한 상기로 귀결된다. 비단 나만 주옥같은 게 아니구나. 또는, 나 정도면 비교적 덜 주옥같구나.
그야말로 위로 아닌 위로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주옥같은 현실을 도저히 버틸 수가 없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