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어떤 해외배송 회사를 이용할지, 이삿짐을 항공과 해상 중에 어떤 것으로 보낼지 정해야 했는데, 짐을 빨리 받아 생활하는 게 우선이었기 때문에 주저 없이 항공으로 정했다. 한인마트에서도 해외배송을 해주긴 했지만 10박스가 넘을 걸로 예상되던 짐을 다 마트까지 가져가야했기 때문에 선택지에 넣을 수 없었고, 픽업이 필수조건이었다. 한 업체의 홈페이지에 안내된 무료 픽업 지도에서 우리집이 무료 픽업 대상인지 확인하고 그 업체에서 하기로 결정했다. 지금은 코로나 상황이라 물류의 비용과 조건들이 들쑥날쑥한 것 같지만, 100킬로가 넘는 짐은 킬로당 2.5파운드였다. 업체에 전화해서 몇 가지 확인을 하고 예약 글을 홈페이지에 남기니 예약 확인 메일에 첨부된 신청서 및 물품 확인서들을 쓰면 접수가 완료되었다.
예상치도 못하게 이삿짐 박스를 구하는 것도 고민거리가 되었다. 한 박스는 중량 23kg, 3면 길이의 합이 150cm를 넘기면 안 되기에 그 규격을 확인해서 주문해야 했고, 몇 겹 종이 박스를 해야 해외 이삿짐에 적합할지도 고민해야 했다. 가격도 상당해서 고민 끝에 3ply로 15박스를 이베이에서 주문했다. 10박스면 되리라 생각했던 짐은 하나씩 하나씩 늘어 13개가 되었다.
이삿짐을 싸는 일은 약간의 머리와 몸을 많이 쓰면 되는 일이지, 마음을 써야 하는 일은 아니어서 귀국 정리 중엔 상대적으로 나은 미션이었다. 23킬로를 넘으면 한 박스당 40파운드나 매길 수 있다고 쓰여 있었기 때문에 손저울로 그 무게를 재보느라 20킬로짜리 수없이 들었다 놨다. 박싱을 하지 않은 채로 쟀을 때보다 테이핑을 하고 재면 왜 무게가 더 나가는지, 덕분에 얼마나 쌌다 풀었다 들었다 놨다를 반복했는지, 13개 박스를 10번씩 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집을 떠나는 날 아침, ‘정말 짐을 가지러 오는 거겠지?’ 노파심이 생겼다. 걱정도 참 많은 타입이다. 안되면 복도에 내놓고 대처하면 되겠지라며 불행한 망상을 펼쳐가며 아이의 마지막 따끈한 식사를 차리던 새벽, 이삿짐을 가지러 온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한 시름 놓고 벨 소리에 문을 열어보니 호리호리한 체격의 서글한 남자 한 명이 서 있었다. 이 무거운 13개의 짐을 맞기기 미안했는데, 척척 짐을 잘도 날르는 걸 보니 마음이 놓였다. 순식간에 짐은 사라지고 청소업체가 온 것을 확인한 후 아는 언니의 차를 타고 숙소로 이동했다.
짐을 가져간 날 석양이 지던 오후, 리치몬드 템즈강가의 피터쉠 호텔 침대에 누워 석양을 바라보는 중 짐 수거 확인 메일을 받았다. 13개로 끝나는 줄 알았던 짐이 하나의 박스가 무게를 초과했다며 작은 박스 하나로 분리 포장되어 배송된다는 내용과 함께 초과 운임과 함께 총운임을 최종 통보받았다.
정말 무게를 초과한 박스가 있었다고?
내가 100번이나 들어서 확인했는데?
의심이 밀려왔지만, 40파운드의 페널티 비용까지는 나오지 않고 귀여운 수준이니까 팁이라 생각하고 퉁치기로 했다. 마지막 찰나까지, 처리로 점철된 귀국이라니, 영국에서의 분에 넘는 마지막 호사를 누리려던 순간 낭만을 쨍하니 깨뜨리기 충분했지만, "이게 마지막이니까"라며 넘겼다.
이만하면 남편도 없이 혼자인 것보다 더 힘들게 아이와 함께 잘 해냈다고.
짐을 살 때 유의해야 할 점이 있는데, 충전식 배터리는 항공수화물에 넣을 수 없기 때문에 기내에 가지고 타야 한다. 충전식 무선청소기 본채 같은 건 기내 가방에 넣어야만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파손 보험이 들어가긴 하지만, 그릇과 같은 건 보험대상에서 빠진다고 고지되었고, 항공 이사가 파손이 많이 된다더니, 다시 살 수도 없는 그릇 20만 원어치가 정.말.로. 깨져서 왔다. 좀 더 잘 쌀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