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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진 Oct 07. 2022

업사이클링 한복 제작기 -1

[한복 실]의 시작










원피스를 해체해서 만든 마고자.










얼떨떨하게 쫓기듯 일어나서 아무 자료 없이 사업계획서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해보고 싶은 창업공모전 소식을 마감 전 날에서야 알게 된 탓이었다.


6시간 남짓 남은 마감시간이 오히려 마음을 후련하게 만들었다. 내 머릿속에 있던 관심사들을 성글게 엮어 써 내려간 사업계획서는 파일이 아닌 종이라면 파쇄기에 넣고 싶을 만큼 바보같았다.


아찔하게도 서류가 패스되었다. 서류를 제출한 순간부터 훗날을 기약하던 나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만 했다. 포기할 수는 없고, 이미 첫 단추가 어쨌건 남은 단추를 잘 추스러야 알몸을 피할 수 있다.
급하게 찾아본 사업 계획서들은 너무 어려웠고, 바느질하는데만 쓰던 머리와 손은 새로운 일을 잘 받아들여주지 않았다.










내 프로젝트의 주제는 업사이클링 한복이다.
기존의  의류들을 해체해서 한복으로 만드는 것이다.



왜 업사이클링이었을까?



거슬러 거슬러 올라가 보니 언니가 생각났다.


내가 초등학생, 언니가 중학생 시절 언니는 청바지를 죄 잘라다 청치마를 만들어 입었다.
조금 허술하긴 해도 간단한 방법이라 나도 만들 수 있다.


열일곱이 된 언니는 엄마가 아끼던 코랄색 꽃무늬 커튼을 자르고, 금색 단추를 어디선가 떼어다가 가방을 만들어 매고 다니기도 했다.
참 겁도 없고, 특이한 발상을 많이 하던 언니였다.
나는 그 언니를 따라 어릴때부터 갑 티슈 덮개로 미미의 드레스를 몇 벌이나 만들어주었다.



우리는 새 학기에 새 필통을 사는 대신 하드보드지를 사 오거나 안쓰는 파일을  필통 모양으로 만들고, 유행하던 잡지일본 잡지를 오려 붙여 코팅해 쓰고 다녔다. 

언니도, 나도 풍족하게 멋 부릴 수 없던 시절이었다.





가진 게 별로 없는 상태는 쓸 수 없는 재료도 새로운 쓰임새를 발견하게 만든다.



이것이 업사이클링이 흥미롭던 이유 같다.



물건을 잘 못 버리는 내 옷장에는 20년 넘게 입는 옷들이 꽤 많고, 10년 넘게 즐겨 입는 옷들도 많다.


신발도 구멍날 때까지 신고, 가방이 헤져도 개의치 않고 매고 다닌다. 제일 좋아하는 셔츠는 깃과 소매가 다 헤져 하얘졌지만 여전히 간절기에 가장 자주 입는다.


버리기에는 내가 너무 좋아하던 것들이니까 그냥 입는 수밖에.

언젠가 버려야지 생각했었는데 색깔과 패턴이 참 예쁜 그 옷을 언젠가 어딘가에 주머니로 만들어 달까? 하는 생각이 들어 못 버리고 두다가 그냥 다시 입어버린다.





처음에는 단순히 내가 좋아하는 옷을 그냥 버리기 아까우니 살릴 수 있는 부분만 최대한 살리고 싶다는 생각으로 업사이클링을 택했다.


그런데 자료조사 과정에서 의류로 인한 환경오염이 정말 심각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게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연 섬유들도 재배하고 실을 잣고, 표백, 정련, 염색 등의 과정을 거친다면 탄소 발생이 결코 적지 않을 것이다.
업사이클링 원단 또한 재활용의 순환을 끊어버리게 될테고 그 과정에서 역시 오염을 야기한다. 그리고 또다시 새로 섬유를 만들고, 염색을 하고, 옷으로 지어지기까지의 오염과 탄소발생 또한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사실 과잉 생산과 소비를 줄여야 한다.





나는 환경운동가도 아니고, 환경에 지대한 관심을 쏟던 사람이 아니다. 지극히 게으르고 의지가 약하고 귀가 얇은 사람이다.
내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중 하나는 버려져서 오랫동안 썩지 않을 옷들을 모아 한복을 짓는 것이다.


언제 썩을지 모르는 저 어여쁜 옷들을 해체하고, 다시 다르게 이어 붙여 한복으로 만들어 땅으로 돌아가기까지의 유예기간을 좀 더 두는 것.


튼튼하게 지어두고 오랫동안 자주 꺼내 입었으면 좋겠다.
오랫동안 내 옷장을 지키고 있는 2-30년 된 옷들처럼.








새활용 플라자의 보물창고같은 원단 코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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