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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의 위성 Jan 21. 2021

네? 국경을 다시 넘으라고요? (1)

왜죠





 그러니까 너무 순탄했다. 홀로 한 달가량의 여행을 마칠 즈음, 나는 포르투갈의 포르투에 있었다. 포르투에서 리스본으로 넘어가서 리스본을 여행한 후 영국으로 들어가는 계획만이 남겨져 있었다. 영국으로 넘어간 후엔 한 학기 동안의 교환학생 생활이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포르투에서 은행 ATM가 내 돈을 먹어버린 사건이 있었지만, 여행 오기 전에 했던 수많은 걱정에 비하면 그럭저럭 넘어갈 만한 일이었다. 포르투 숙소 침대에 앉아서 접한 소식은 영국으로 먼저 입국한 같은 학교 학생의 전언이었다. 그녀는 나랑 같은 한국 대학교에서 또 같은 영국 대학으로 교환학생 생활을 하러 가는 동지였다. 출국하기 전에 같이 한 번 밥을 먹고, 꾸준히 연락을 했다. 그녀는 먼저 영국으로 들어가면서 어리둥절한 일을 겪었다고 전했다.



 영국으로 교환학생(한 학기)를 가는 학생들은 비자가 필요하지만, 한국에서 미리 받을 필요는 없다. 영국 공항 입국심사대에서 심사관에게 학생비자 도장을 받으면 된다. 이는 STSV 6 비자라고 한다. 그런데 알다시피 한국인들은 영국에 입국을 할 때, 출입국 자동심사를 받을 수 있다. 그녀는 공항에 떨어지자마자, 직원의 능숙한 인솔에 저도 모르게 e-gate로 향해버렸단 것이다. 공항직원은 그녀에게 국적을 물었고, 그녀는 당연히 한국이라고 했으며 물살에 휩쓸리듯 이상하다 생각은 하면서도 e-gate로 입국을 해버렸다. 그녀는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며, 학교에 문의 메일을 보내 놓았다면서 나에게는 그런 실수를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그래서 나는 조심에 또 조심을 기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랬다. 그랬는데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 채 리스본에서 맛있게 먹은 아침.


 무사히 착륙 후, 긴 입국심사대 줄 앞까지 잘 왔다. E-gate 쪽으로 몰려가는 사람들에 휩쓸리지 않고 말이다. 긴긴 긴장의 시간을 보내고 입국심사관 앞에 서서 말했다. STSV 6  비자 도장이 필요하다고. 그리고 나는 곧바로 필요한 서류들을 그에게 넘겼다. 학교 오퍼 레터, 보험증서 등 나의 체류와 일정 기간 이후 영국을 떠난다는 것을 증명할 서류들. 그는 그것을 훑어보았고, 도장을 찾는 듯 분주했다. 그리고 또 찾았다. 그러다 또 찾았다. 나는 바짝 얼은 상태였지만, 뭔가 이상하다는 것은 알아차렸다. 도장이 없나? 그는 옆 심사관을 넘겨보기도 하고 다시금 도장 박스에서 또 도장을 찾았다. 그러더니 내게 물었다.


"출국 비행기표 있니?"

"아 여기 있어."


 나는 혹시 몰라 준비해두었던 추가 서류 더미 중에서 출국 비행기 예약증을 보여줬다. 그는 그걸 살피더니, 도장을 찾던 아까와는 다르게 아주 쿨하게 어느 도장 하나를 내 여권에 찍고, 펜으로 나의 출국 날짜를 적었다. 그리고 나에게 돌려줬다.


 곧장 여권을 보니 묘한 도장 하나가 찍혀있었다. 그러니까, 원래 받아야 하는 도장 모양과 아주 다르지는 않은데, 그렇다고 똑같은 도장은 아니었다.


"이거 STSV 6 비자 도장 맞지?"

"그럼."


 그가 한참 도장을 찾다가 또 그걸 반복하던 것이 마음에 걸려 그에게 재차 물었는데 그는 너무나도 흔쾌히 맞다고 했다. 도장을 찍은 당사자가 맞다는 데 어쩌겠는가. 게다가 입국심사에서는 심사관이 갑이기에 더 의심하기에도 곤란했다. 그런데 아무리 보아도, 학교에서 보내준 자료 속 비자 도장 모양과는 달랐다. 것도 되게 애매하게. 이미 그는 다른 입국자를 심사하고 있어서 그에게 다시 돌아갈 수는 없었다. 그런데 입국 심사 박스 곁에서 서 있는 몇몇의 심사관들이 보였다. 교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인지, 교대를 한 뒤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들도 입국심사관처럼 보이기에 캐리어를 끌고 그들에게 다가갔다. 나는 먼저 혼자 있던 심사관에게 물었다.


"뭐 하나만 물어봐도 되니? 이거 방금 받은 도장인데, STSV 6 도장 맞지?"

"이거? 흠, 맞는 거 같은데. 잠깐만."


 그녀는 내 여권을 들고 세 발자국 정도 떨어져 있던 두 명의 심사관에게도 보여줬다. 그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STSV 6 비자야~"

"고마워!"


 먼저 보여준 심사관은 STSV 6 비자 모양을 몰랐던 걸까? 왜 그들에게 물어보지, 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들도, 나에게 도장을 찍어줬던 그도 모두 맞다고 했다. 이상했지만, 그들이 모두 맞다고 했는데 더 이상 물어볼 이유가 없었다.



정신없이 마주한 영국에서의 첫 피시앤칩스




 그리고 결론은 국경을 다시 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이후로도 혼돈과 엉망진창과 짜증과 욕설과 아무튼 그런 것들과 함께 한 수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결론은 그렇다. 아무리 생각해도 의아해서 학교에 문의를 했고 학교는 내무성에 문의를 했고, 돌고 돌아 내게 돌아온 대답은 국경을 다시 넘어야  한다는 것이다. 입국을 다시 해야, 입국심사를 다시 받고 비자 도장을 다시 찍을 수 있다는 것. 그것도 빠른 시일 내에 해야 영국 학교에서 무사히 학기를 등록할 수 있다고 전해왔다.


욕설이 절로 나왔다. 장난치나,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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