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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닥 Sep 11. 2020

왜 내가 먼저 왔는데, 저 환자가
먼저 진료를 받나요?

대학병원 외래진료 시스템의 비밀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는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일이다. 하물며 동네 의원도 아니고, 대학병원 진료를 받는 것은 더더욱 그렇다. 병원은 너무나 넓고, 어디로 가야 할지도 잘 모르겠다. 여기저기 물어물어 외래 진료를 받으러 왔는데, 접수창구 앞에서 발걸음을 돌려야 하는 경우도 있다. 접수대를 지나 외래 진료를 기다리고 있는데, 분명히 나보다 한참 후에 온 것 같은 사람들이 하나, 둘, 계속해서 나보다 먼저 진료실로 들어간다. 대기자 명단에 1번으로 나와 있던 내 이름이 자꾸 2번, 3번으로 밀리고 또 밀리고... 참다못해 외래에서 목소리를 높이게 된다. "아니, 왜 내가 먼저 왔는데, 저 환자가 먼저 진료를 받나요?"




사실 이런 상황은 대학병원 외래에서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 일입니다. 저희 입장에서도 여기까지 힘들게 오신 환자분을 돌려보내기도, 두어 시간씩 진료가 지연되는 것도 죄송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이런 환자분들 중 상당수의 경우, '대학병원 외래 진료 시스템의 비밀(이라고 까지는 좀 거창합니다만)'을 이해하고 미리 잘 준비해 오셨다면 좀 더 쾌적하게 진료를 받으실 수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대학병원 외래를 대기 조금만 하고 제때 진료 잘 받기 위한 Tip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다만 병원별로 시스템에 약간씩 차이가 있을 수는 있으니 참고해 주세요)




1. 반드시 '예약'을 한다.


대단한 비밀이 있는 것처럼 말씀드렸는데, 1번이 왠지 '너무 당연한' 이야기인 것 같아 맥이 빠집니다. 하지만 이 평범한 이야기가, 사실은 가장 중요한 Tip입니다. 왜 그런지에 대해서 잠시 대학병원 외래 예약 시스템을 설명드리겠습니다.


저희 병원의 경우, 오전 혹은 오후 외래 한 타임이 3시간 30분입니다. (오전은 8시 30분부터 12시, 오후는 1시부터 4시 30분까지) 오늘 제가 오후 외래를 보는 총 210분의 시간 동안, 35개의 슬롯(slot, 예약 자리)을 가지고 예약을 받게 됩니다. 그러니까 한 환자당 6분의 시간을 할애할 수 있는 것이지요. 우리가 흔히 '3분 진료'라고 이야기들을 많이 하는데 '무려' 6분이라니 넉넉한 시간 동안 진료를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대학병원까지 오셨을 경우에는 개인의원에서 해결이 되지 않아서,  수술이 필요해서, 각종 검사를 받기 위해서 오시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따라서 진료실에 한번 들어오셔서 진료를 받고, 각종 검사 처방을 내린 이후에 당일 검사를 받고 다시 진료실에 들어오시게 됩니다. 따라서 진료실에 두 번은 들어오셔야 되니 각각 3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오래 기다려야 하는가" 하고 말씀하시는 분들은 대부분, 외래 예약이 아닌 '당일 진료'이신 경우가 많습니다. 당일 진료란, 예약된 진료 이외에 당일에 진료가 필요하여, 예약 이외에 추가로 접수를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미 예약이 되어 있는 35명의 환자 이외에, 추가 접수를 받는 것이지요. 이런 경우 쉽게 말해서 이미 예약이 되어서 본인의 진료 시각이 정해져 있는 예약 환자가 '1순위', 당일 진료 접수를 하신 환자가 '2순위'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따라서 1순위 진료를 우선적으로 하고 나서 중간에 비는 시간이 생기면, 그때 2순위 환자를 진료하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1시 정각에 A 씨, 1시 6분에 B 씨, 그리고 1시 12분에 C 씨가 예약이 되어 있다고 합시다. 그런데 갑자기 당일 접수로 D 씨가 들어와 1시부터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 경우 외래에서는, 우선 1시 정각 예약인 A 씨 진료를 시작합니다. A 씨의 진료가 빨리 끝나고 아직 B 씨가 오지 않으신 경우, D 씨는 그 사이에 빨리 들어가 진료를 받으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A 씨의 진료가 길어져 1시 6분이 되면, 기다리고 있는 D 씨와는 무관하게 B 씨가 먼저 진료실에 들어가게 되죠. 운이 없게도 B 씨 역시 진료가 길어지면, D 씨는 계속 기다려야 하고 늦게 온 C 씨가 또 진료실에 들어갑니다.


실제로 이런 당일 접수 환자분들의 경우, 이런 상황이 계속 이어져 한 시간, 혹은 두 시간까지도 대기해야 하는 상황이 종종 발생합니다. 하지만 병원 입장에서도 미리 예약을 하여 시각이 정해져 있는 환자분들 역시 진료가 늦으면 불만을 제기하시므로, 예약자 위주로 먼저 진료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아주 급한 경우가 아니라면 반드시 예약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의외로 당일에 전화를 해도 예약 자리가 있는 경우가 많으니, 오늘 진료를 보아야 한다고 해서 무작정 오지 마시고 먼저 전화를 걸어 보세요.




2. 개인의원에서 '진료의뢰서'를 가지고 온다. 


진료의뢰서란 무엇일까요? 말 그대로 1차, 2차 의료기관(개인의원, 중소병원 등)에서, '이 환자는 이런저런 증상으로 대학병원 진료가 필요합니다'라고 3차 의료기관에 의뢰하는 서류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서류는 왜 필요한 것일까요? 바로 경증 질환, 즉 불편하기는 하지만 질환의 중증도가 낮고 복잡한 치료가 덜 필요한 질환의 경우에는 1차, 2차 의료기관에서 적절히 치료하고, 중증도가 높고 수술 등이 필요한 중증 질환은 3차 의료기관이 진료하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막상 내 가족이 아프면 유명한 교수님이 계신 큰 병원에 가서 제대로 진료받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경증질환 환자가 1차, 2차 의료기관을 거치지 않고 3차 의료기관에 바로 갈 수 없도록 '진료의뢰서'가 있어야만 대학병원에 올 수 있도록 제도화되어 있습니다. 요즘은 많이들 알고 계셔서 진료의뢰서를 잘 지참해 오시지만, 가끔은 의뢰서를 가져오시지 않는 분이 계십니다.


어제 진료실에서도 있었던 일입니다만, 환자분은 일단 진료의뢰서 없이 진료를 받겠다고 진료실에 들어오셨습니다. 진찰을 해보니 추가적인 검사를 해야 하는데, 코골이 환자의 진단을 위한 '수면다원검사'는 가격이 70만 원으로 정해져 있습니다. 그런데 보험 급여를 받으면 환자 본인부담금이 14만 원으로 확 내려갑니다. 그런데 이 분은 진료의뢰서가 없으므로, 그러한 보험 혜택을 받으실 수가 없는 난감한 상황이 벌어지는 거죠. 그래서 이 분의 경우는 제가 이미 진료를 보았지만 오늘 진료를 접수 취소해 드리고, 오늘 중으로 빨리 개인 의원에서 다시 진료의뢰서를 발급받아 내일이나 모레, 다시 오셔서 검사를 보험 급여로 예약해 드리기로 하였습니다.




3. 너무 빨리 오지 않는다(제시간에 온다)


저 역시도 뭔가 약속이 있으면 약속 장소에 먼저 나가 기다리는 성격입니다. 하지만 외래, 특히 대학병원 외래에서는 상황이 약간 다릅니다. 앞에서 환자 한분당 외래 진료 시간이 6분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만, 대학병원에서는 그 6분 안에 환자를 해결할 수 없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다양한 검사들을 진행했기 때문에 검사 결과에 대한 설명이 길어지는 경우, 환자분에게 뭔가 처치(procedure)를 해 드려야 하는 경우, 검사 결과가 아주 안 좋은 경우(예를 들어 악성 종양) 등등 생각보다 진료가 길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갑자기 병동에 입원해 있던 환자의 상태가 안 좋아지거나, 응급실에서 갑자기 올라온 환자 때문에 잠시 그 환자를 보아야 할 때도 있습니다. 따라서 의사가 화장실도 안 가고 열심히 진료를 하여도, 예약시간보다 진료가 늦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환자분은 예약에 늦지 않기 위해 30분 전부터 와서 기다리고 계시면, 10분만 진료가 지연되어도 환자분 입장에서는 40분을 기다리시게 되는 거죠. 



 

4.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자가 너무 많으면... 어쩔 수 없다


가장 죄송스러운 부분이기도 합니다. 오전, 오후 환자 각각 35명이면 하루 정규 외래 동안 70명의 환자를 보는 것이 정상적인(?) 상황입니다. 그런데 당일 접수, 다른 진료과로부터의 협의진료 등이 물밀듯이 밀려 들어오는 날에는 하루에 90명, 100명 가까이도 환자분이 오십니다. 이런 날은 12시에 끝나야 하는 오전 진료가 1시까지 계속 밀려서 점심식사를 하지 못하고 오후 외래를 계속 진행하거나, 4시 30분에 종료되어야 할 오후 외래가 6시까지 밀리는 경우도 종종 발생합니다. 이런 날은 정말... 어쩔 수 없습니다. 화장실 한번 가려고 해도 밖에서 진료만 기다리고 계시는 환자분들의 수많은 눈을 마주칠 자신이 없어 참고 계속 진료만 해도 진료가 계속 밀리고 밀립니다. 한 번은 예약이 90분 이상 지체된 환자분이 화를 내시면서 '민원을 제기하겠다'라고 하셨던 적도 있는데, 속으로 '제발 민원 좀 넣으셔서, 이 어려운 상황을 경영진이 좀 알아주셨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던 날도 있답니다.




지금까지 대학병원 외래 시스템의 '비밀 아닌 비밀'에 대해 알려드렸습니다. 반드시 먼저 예약하기, 진료의뢰서 가지고 오기, 제시간에 오기 등 사실은 기본적인 것만 잘 챙기셔도, 그냥 무작정 오시는 것보다 훨씬 대기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는 점을 꼭 기억해 주세요. 그래도 진료가 많이 밀리는 경우, '저 안에서 의사 선생님은 고생을 많이 하고 계시겠구나'라고 생각하시면서 조금만 여유 있게 기다려 주실 수 있다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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