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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꽃 Mar 06. 2021

사랑이 감정이기보단 행동일 수 있도록

장석남의 시 '배를 매며'


아무 소리도 없이 말도 없이
등 뒤로 털썩
밧줄이 날아와 나는
뛰어가 밧줄을 잡아다 배를 맨다
아주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배는 멀리서부터 닿는다

사랑은,
호젓한 부둣가에 우연히,
별 그럴 일도 없으면서 넋 놓고 앉았다가
배가 들어와
던져지는 밧줄을 받는 것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배를 매게 되는 것


장석남 '배를 매며' 중



학생들과 하루를 공유하면서 쌓여가는 시간만큼이나 쌓이는 고민의 양도 많아진다. 돌아서면 후회할 걸 알면서도 실수를 할 때도 더러 있다. 실수를 반복하면서, 글로 쓰기에도 낯간지러운 사랑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진득하고 집요하리만큼 고민하게 된다.


흔히 사랑이라고 하면 연인 간의 로맨틱한 감정이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이 감정을 품고 사계절을 지나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두근거리는 설렘과 긴장감이 사랑의 한 단면뿐이란 걸 안다. 오히려 장석남 시인의 표현처럼 사랑은 "배가 들어와 던져지는 밧줄을 받고 배를 매게 되는 것"이다. 항해 길에 오르지 않고 부둣가에 배를 매야하는 사공에게 필요한 것은 인내과 끈기다. 아이러니하게도 사랑은 이 과정에서 싹튼다. 상대와 내가 자연스레 깎여나가며 맞춰지면서 자연스레 쌓여간다. 시간이 흐르고 흐르면서 서로를 존재로서 존중하고 기뻐한다. 인내와 희생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배를 매는 것은 그 존재로 기쁘고 감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꽃이 꽃이기 때문에 그저 돌보는 것처럼 존재 자체로 즐거워할 수 있는 것도 놀라운 사랑의 힘 때문이라고 믿는다.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저자 빅터 프랭클은 이렇게 말한다.


사랑은 다른 사람의 인간성을 가장 깊은 곳까지 파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사랑하지 않고서는 어느 누구도 그 사람의 본질을 완전히 파악할 수 없다. 사랑으로써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이 지니고 있는 본질적인 특성과 개성을 볼 수 있으며, 더 나아가 그 사람이 잠재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 아직 실현되지 않았지만 앞으로 실현돼야 할 것이 무엇인지도 볼 수 있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사랑의 의미 중-


저자는 단호하리만큼 사랑에 대해 말하길, 사랑이 없이는 상대의 진가를 알 수 없으며 앞으로 더 나아질 상대의 모습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학생에 대한 기대를 매일 걸어야 하는 직업인으로서 "사랑"은 좀처럼 풀리지 않는 과제와도 같다. 단순히 길만 알려주는 사람이 아니라 방향을 제시하고 함께 걷는 사람이 절실하게 필요한 요즈음은 특히 더 그렇다.





희생과 배려가 존재에 대한 기대와 함께 하지 않는다면 이 과정이 얼마나 억울하고 지루할까. 지금 내 눈앞에 있는 그 존재의 지금을 바라보면서 더 나아가 앞으로 더 나아질 모습을 기뻐할 줄 알게 되면, 보다 즐겁게 내 것을 내어놓게 되는 것 같다.




 이런 사랑의 본질에 관해 엿볼 수 있는 일화 중 하나가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에 관한 이야기이다. 감탄한 한 사람이 미켈란젤로에게 어떻게 이렇게 완벽한 조각상을 조각했는지 물었다. 그러자 미켈란젤로는 "대리석에서 조각상답지 않은 부분만 떼어냈을 뿐이라"라고 답했다고 한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가치를 그 사람 안에서 찾고 그걸 위해 함께 희생해가는 과정. 이런 과정 속에서라야 서로가 더 나은 사람으로 완성되는 것 같다.



나도 그 어느 때엔 받고 싶고 더 많은걸 원하기도 했었다. 설렘의 그 감정에 기대해보기도 하고 열망하기도 해 보았다. 물론 그런 기억들이 헛되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사랑의 형태만 원했을 뿐 사랑에 참 서툴렀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를 떠올리면 매사 공허하고 고독했다는 게 그 증거가 되지 않을까. 세포도 건강하면 다른 세포를 위해 일한다는 데 나도 어느 한 부분에선 조금의 도움을 주며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반추해보며 어느 때보다 사랑을 즐겁게 실천해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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