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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로하 Oct 24. 2022

#여름이었다

혈액암 4기, 그 시작은 여름이었다.


33세, 미혼 직장인.

사회적으로 나를 가장 쉽게 소개할 수 있는 단어들이었다. 지금의 나에게도 적용되는 단어들이지만 이제는 그보단 아래의 단어들이 나의 상태를 더 잘 설명하고 있다.


림프종 4기 환자, 치료 중.

내 이름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이라고 생각했는데 살다 보니 별일이 다 있다. 저런 수식어가 내 이름에 붙어있다니 아직도 어색하고 낯설다.



본래 나의 일상은 단조롭고 평범했다. 부유하진 않았지만 부족한 것은 없었고, 하고 싶은 것과 원하는 것은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나의 부모님은 나에게 항상 최선의 것들을 주셨고 그 덕분에 언제나 순탄한 인생을 살며 ‘나는 참 운이 좋은 사람이다’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어려서는 해외에서 자랐고, 대학도 수월하게 갔으며 월급은 작아도 원하던 분야의 직장에서 워라밸을 만끽하며 근무했다. 나의 삶의 모든 것이 얼마나 평탄했냐면 출퇴근조차 고작 15분 거리였다.


그래서였을까. 너무 순탄한 인생을 살아서 변화가 필요했던 것일까.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은 시련을 겪게 된다면 그게 지금인 것일까.


2022년 8월, 나는 혈액암의 일종인 림프종을 진단받았다. 심지어 4기였다. 나도 모르는 새에 내 몸은 이런 무시무시한 병을 키우고 있었고 하루빨리 치료가 필요한 줄도 모른 채 나는 7월 초에 가족들과 제주도 여행도 다녀오고 소개팅을 하는 등, 누가 봐도 너무 잘 지내는 사람이었다. 나의 경우에는 림프절에 혹이 튀어나오거나 급격한 체중감소를 겪는다던지 하는 일반적인 림프종의 증상이 하나도 없었다. (림프종 자체가 원래 병변에 통증이 있지 않기 때문에 사실 육안으로 보이는 혹이 아니라면 발견이 쉽지 않기도 하다.)


내가 병을 발견하게 된 것은 이미 병이 너무 많이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난 올해 4월부터 우측 골반통이 무척 심했다. 통증의 원인이 처음엔 허리디스크인 줄 알았고, 그다음엔 골반염인 줄 알았지만 동네 디스크 병원, 산부인과, 정형외과에선 내 통증의 원인을 몰랐다. 3개월을 동네 병원을 돌다가 진통제 없이는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지경이 된 7월 중순, 나는 결국 대학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받았다.


7월 초 직장 건강검진에서 모든 것이 ‘정상’으로 나왔기 때문에 이때까지만 해도 골반통의 원인은 그저 염증 같은 게 조금 생긴 정도겠거니 생각했었다. 하지만 결과는 암이었다. 골반이 아프던 이유는 이미 뼈에까지 전이가 되었기 때문에 뼈에 통증이 발생을 한 것이었고, 한 달간 3번의 입퇴원을 반복하며 각종 검사들을 진행한 결과 내 몸에는 목, 폐, 뼈, 골수 등 참 여러 곳에도 암이 퍼져있었다.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조금의 의심조차 하지 못했을 정도로 나는 멀쩡했다.


병을 알게 되자마자 회사는 당연히 휴직을 하였고 생각을 정리할 틈도 없이 8월 29일, 첫 항암치료를 시작했다. 림프종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고는 그저 방송인 허지웅 씨가 겪었던 것이라는 것밖에 없을 정도로 나는 이 병에 대해 무지했다. 병원에서 ‘임파종’이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했을 때도 ‘그게 뭔가요?’ 되물을 정도로 아는 것이 없었다. 지금도 낯설기만 한 이 병에 대해서 아직 모르는 것 투성이지만 하나씩 알아가는 중이다.


이 나이 먹도록 항암치료가 뭔지도 제대로 몰랐던 나는 어느새 몸에 케모포트를 심고, 매주 병원에서 피검사를 하며, 격주로 항암제를 맞으러 다니는 국가에 등록된 암환자가 되었다.


물론  와중에도 ‘나는 운이 좋다라고 생각할  있는 일들도 있었다. 불행  다행인지 친구가 지금 내가 다니는 병원의 간호사였고 내가 원하는 교수님의 초진을 빠르게 잡아주었다. 그리고 60종이나 되는 림프종 중에서 기왕이면 완치율이 높은 호지킨 림프종이길 바랬는데 입이 바싹바싹 마르던 최종 조직검사 결과는 호지킨이었다.


7월부터 8월까지. 고작 한 달의 시간은 나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기 충분했고 그 새로운 삶에 나는 아직 적응 중이다.


멋진 소설 같은 느낌이 나려면 ‘여름이었다’라는 문장이 있으면 된다고 한다. 멋진 일도 아니고 소설도 아니지만 이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나에게는 현재이고 현실이다. 이것이 나의 2022년 #여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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