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용근 Jan 21. 2022

남원 대곡리 암각화 이야기

암각화 우주관

아주 멀고 먼 청동기 시대 지리산 아래에 한 부족이 나타났다

그들은 큰 골짜기에 자리를 잡고 남원 부족촌을 세웠다


남원 부족 마을 뒷산 토굴에는 다리에 장애를 갖고 태어난 남돌이가 홀로 살고 있었다

힘을 써서 수렵과 사냥으로 살아가는 부족에게서 장애인의 존재는 공동체와 가족의 생계 부담이었고 늘 멸시와 왕따의 대상이었다

가족은 남돌이를 마을 뒷산 동굴에 숨기고 남 모르게 밥을 가져다주며 살게 하고 있었다

남돌이가 동굴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가족이 남몰래 가져다주는 밥으로 연명하는 나날을 보낼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대낮인데도 태양이 점차 작아지더니 이내 사라졌다 두려움은 부족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여름 어느 날은 먹구름이 갑자기 몰려오더니 비바람이 몇 날을 몰아치고 큰 홍수가 났다

어떤 때는 제비가 보이기 시작하면 열매를 가질 나무에서 꽃봉오리가 피어나기 시작했다 날마다 이러저러하게 변하는 환경은 기억되었고 다음 해도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족들이 밥을 동굴로 가져올 때면 자신이 기억했던 일들을 알려주었다

동굴 아래에 살던 쥐들이 높은 곳으로 올라온 것을 보고는 열흘 후쯤에는 큰 홍수가 날 것이니 피하라고 하면 그대로 이루어져 목숨을 구할 수 있었고 어느 때는 할미꽃이 고개를 숙이지 않고 하늘만 쳐다보고 있는 것을 보아  반드시 가뭄이 들어  굶어 죽을 것이니 산에서 칡뿌리 같은 것은 미리 준비해 두라고 하면 그 재앙을 넘길 수 있었다


남돌이가 들려주는 예언은 어느 사이에 부족원들이 따르는 구세주의 능력이 되어 가고 있었다

힘으로 다스리던 부족장의 권위는 남돌이의 예언적 능력에 부딪혀 추락해 가고 있었으니 부족장은 남돌이와 협상을 벌여 부족을 공동통치하기에 이르렀고 남돌이는 제사장이 되었다


남돌이가 제사장이 되어 부족을 통치하기 시작한 지 십 년이 지났다 평온하기만 할 줄 알았던 남원 부족에 위기가 닥쳐오고 있었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역병이 들이닥친 것이다


부족장은 제사장에게 대책을 물었다

제사장은 그동안 우리 부족이 조상숭배를 소홀히 하여 조상님들의 분노가 역병을 일으킨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 어찌하면 좋겠소?"


"먼저 조상님들에게 제를 올릴 제단을 찾아야 하오!"


부족장은  제단을 찾을 선발대를 뽑아 보내기로 했다

5명의 제단 선발대는 제사장에게 구체적인 제단의 모습을 교육받았다


"조상님들은 어디에 계십니까요?"


"조상님들은 모두 하늘나라 북극성에 계신다 북극성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영생의 땅이라서 사람이 죽으면 누구나 할 것 없이 영혼이 가는 곳이 북극성이다"


"조상님들의 영혼은 처음에 누구랑 그곳으로 가게 되었습니까요?"


"그것은 집에서 함께 살던 돼지였다

사람들은 먼 옛날  최초의 조상님이 죽자 장례를 치르기 위해 집에서 키우던 돼지를 잡아 고사 제물과 손님 접대에 사용했지 그러니까  조상님의 영혼과 돼지의 영혼이 함께 만나게 되었단 말이다 장례가 끝나자 조상님의 영혼은 돼지의 영혼을 데리고 함께 길을 떠났고 마침내 북극성에 도착하여 살게 되었다 그 뒤로 돼지는 사람이 죽으면 영혼을 북극성으로 모셔가고  또 후손들이 조상을 부르는 제사나 고사에 북극성에서 조상을 후손에게로 모셔오는 길 안내자 일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러면 조상님들의 영혼이 후손에게 나타날 때는 어떤 모습을 합니까요?"


"그것은 호랑이나 곰의 모습을 하고 나타나신다 그래서 그 두 동물을 영물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러면 제단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습니까요?"


"먼저 호랑이와 곰이 사는 큰 골짜기에 들어가야 한다 대곡으로 말이다 그런 다음 돼지가 바위로 변해 있는 돼지 바위를 찾아라 그러고 나서 벼락이 쳐서 생겨난  북두칠성의 성혈이 돼지 바위 지척에 있는지를 살펴라 북두 성혈이 있다면 돼지바위에 북극성과 오성 별의 성혈이 생겨났을 것이다

북극 성혈은 북극성에 계신 조상님의 영혼이 드나드는 문이  될 것이고 별 다섯 개 오성혈은 우리 후손들 다섯 집이 한 무리 한통이 되어 이웃사촌 공동체로 잘 살아갈 수 있는 기운을 주는 곳이 될 것이다"


"그러면 북두칠성 성혈은 무슨 뜻이 있는 것입니까요?"


"그것은 사람 사는데 반드시 있어야 하는 길지를 말함이다 즉 물,  불, 나무, 곡식,  소금,  남자,  여자 말이다 그것에 해당되는 구멍이 골고루 비슷한 크기로 파져 있으면 그곳이 우리 남원 부족의 제단이 될 수 있는 곳이다"


"자 이제 그 제단을 찾으러 출발합시다"


선발대가 떠난 지 백일만에 돌아왔다


"제단을 찾았느냐!"


"예 제사장님께서 알려주신 것과 똑같은 곳을 찾아냈습니다요"


"부족장과 제사장은 선발대를 따라 그곳으로 갔다"


우리들의 제단을 제대로 찾았구나 모든 것이 다 갖추어져 있도다 다만 하나 아쉬운 것은 북두칠성 성혈 중에  소금 구멍이 작은 것을 보니 소금이 귀한 곳이구나 그러나 저 밑에 소금 바위가 있으니 이보다 더한 제단이 또 어디 있겠느냐 우선 조상님들의 영혼이 우리의 제단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호랑이와 곰을 돼지바위에 새겨라 그리고 그 옆에 부족장과 제사장의 얼굴도 새기도록 하라


"분부대로 모두 새겼습니다요"


"그러면 제사를 지낼 제단을 만들자 저 바위 덩이를 이리로 옮겨와 돼지머리로 다듬어 놓아라 그리고 돼지 콧구멍도 두 개 파고 밑에는 주먹만 한 돌구멍도 만들어서 두드리면 북 같은 소리가 나도록 하라 그래야 고사 지낼 때 그 소리를 듣고 조상님들이 우리의 소원이 무엇인지 궁금해서 살펴 주시느니라"


남원 부족 사람들은 가정마다 그 제단 칠성혈 아래의 물을 토기에 담아 집안에 들이고 조상께 아침저녁으로 가족의 무사 안위를 빌었다 북극성에 계신 조상의 영혼이 북두칠성에 기운을 주어 칠성혈에 들게 했으니 조왕신이 되어 집집마다 들어살 게 된 것이다

대곡리 암각화 우주관

선사시대 남원 사람들의 우주관은 대곡 암각화를 새긴 그곳에 들었고 가장 신성한 소도가 되어 후손을 내며 수천 년을 이어온 남원 문화의 씨앗이 되었다

작가의 이전글 가을에는 내 춤을 추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