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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hee Kim Jul 21. 2021

역사의 흔적을 따라 걸어보는 루브르

12세기 중세시대 요새부터 20세기 유리 피라미드까지

루브르 박물관에는 리슐리외관, 쉴리관 그리고 드농관 이렇게 세 개의 건물이 있습니다. 이 세 건물은 안에서 모두 연결되지만 각각 입구가 달라서 방문하고 싶은 전시실이 있는 건물의 입구로 들어가야 박물관 내에서 길을 잃는 혼란스러움은 피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방문객들은 <모나리자>가 있는 드농관으로 입장을 하지만, 저는 오늘 쉴리관의 지하 공간을 먼저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곳은 루브르 박물관에서도 가장 신비로운 곳으로 알려져 있는 곳입니다.



중세의 루브르 Louvre médiéval

중세 루브르 전시실


화려한 외관과는 다른 모습이죠? 이곳은 12세기에 지어진 루브르 요새의 모습입니다. 앞서 연재했던 글에서 루브르 박물관의 역사에 관해 이야기를 잠깐 언급했었는데요. 루브르는 12세기 필립 오귀스트(Philippe Auguste 재위 1179-1223) 왕에 의해서 '요새'로서 지어집니다. 원래 파리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지어진 건축이었죠. 그래서인지 투박하게 다듬어진 돌들이 차곡차곡 올려져 있는 모습입니다. 방문객들이 걸어 다니는 곳은 원래 물이 가득 채워져 있던 해자였습니다.


이곳은 '그랑 루브르(Le Grand Louvre)'라는 루브르 박물관 리노베이션 사업 때 땅을 파다가 우연히 발견이 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이곳을 허물지 않고 전시장으로 개조하게 되면서 방문객들은 루브르 박물관의 800년 역사를 직접 확인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루브르 왕궁 Palais du Louvre

그렇다면 우리가 볼 수 있는 고풍스러운 루브르 박물관의 외관은 언제 만들어졌을까요? 루브르는 프랑스 왕들이 머물게 되면서 여러 왕들에 의해서 증축되고 변화됩니다. 특히 프랑스의 대표적인 르네상스 군주였던 프랑수아 1세(François I, 재위 1515-1547)가 이탈리아 원정에서 돌아온 후 기존의 루브르 요새의 성채를 허물고 그 위에 르네상스식 궁전을 짓고 이후에 여러 왕들이 루브르를 계속 개조합니다. 루이 14세 시대에는 루브르는 고전주의 양식으로 더 증축이 되며 여러 양식이 혼재하게 됩니다. 프랑스의 모든 왕들은 이 성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싶어 했고, 그렇게 루브르에는 오늘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처럼 여러 시대의 흔적들이 남겨지게 됩니다.



루브르 내 곳곳의 왕궁의 흔적들


카리야티드의 방 Salle des Caryatides

카리야티드의 방


우선 카리야티드의 방부터 보겠습니다. 프랑수아 1세의 아들이었던 앙리 2세(재위 1547-1559)에 의해 만들어진 곳입니다. 지금은 조각 전시실로 사용되고 있는 카리야티드의 방입니다. '카리야티드'는 여인상의 모양을 하고 있는 기둥을 뜻하는 말로 그리스 신전 건축에 쓰였던 건축의 양식인데, 이 공간은 르네상스 시대 때 피에르 레스코(Pierre Lescot)에 의해 지어진 공간으로 장 구종(Jean Goujon)이 만든 카리야티드 조각 기둥의 이름을 따서 방의 이름이 정해졌습니다. 앙리 2세가 연회장으로 쓰기 위해 만들어졌던 곳이고, 카리야티드 사이로 나오게 되면 앙리 2세의 계단(Escalier Henri II)으로 이어집니다.


그랑드 갤러리 Grande Galerie

그랑드 갤러리

부르봉 왕가 최초의 왕이자 낭트 칙령을 반포해 프랑스 내 종교 내전을 종식시킨 앙리 4세(재위 1589-1610)가 지은 곳으로 1870년 파리 코뮌 사건으로 지금은 볼 수 없는 튈르리 궁전(palais des Tuileries)과 루브르 궁을 이었던  회랑입니다. 길이는 약 500m로 루브르 박물관에서는 가장 긴 전시실이자 지금은 방문객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전시실로 이탈리아 르네상스 화가들의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습니다.


살롱 캬레 Salon Carré

주세페 카스틸리오네, 살롱 캬레, 1861, 루브르 박물관

'네모난 방'이라는 뜻으로, 그랑드 갤러리 입구에 위치한 살롱 카레에서는 아카데미가 주관하는 살롱전이 펼쳐졌습니다. 1678년 루이 14세가 파리 외곽에 베르사유 궁전을 짓고 거처를 옮기는 바람에 루브르는 파리에 덩그러니 남겨지게 되었지만, 그때부터 루브르에는 아카데미 프랑세즈(Académie française)가 정착하게 되었고 그 이후로 문학 아카데미, 회화와 조각 아카데미가 루브르에 거점을 두기 시작하며 루브르는 파리의 지성과 예술의 중심지가 되어갔습니다. 1725년부터는 이 살롱 캬레라는 공간에서 전시회의 전신인 '살롱(Salon)'이 개최되기 시작되며 더욱더 활발하게 프랑스 예술이 루브르를 거점으로 발전합니다.


루이 14세의 아폴론 갤러리 Galerie d'Apollon

아폴론 갤러리

그렇게 왕이 파리를 떠나는 바람에 절대 왕정의 꽃은 파리가 아닌 베르사유에서 피게 되었지만 루이 14세는 프랑스 절대왕정의 상징이자 태양왕이라는 별명을 가진 왕답게 그의 권력과 예술의 취향을 보여주고 있는 곳들을 루브르 곳곳에 남겨놓고 있습니다. 이곳은 아폴론 갤러리라고 불리는 곳으로 천장화와 건축 장식의 화려함에 눈이 부실 정도입니다. 루이 14세는 자신을 태양신 아폴론으로 비유했다고 하죠. 현재 아폴론 갤러리에는 프랑스 왕가의 유물들이 전시가 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루브르 박물관 내 곳곳에는 이런 프랑스 왕들의 흔적들을 발견할 수 있는데요. 루브르 궁전의 아름다움과 화려함은 프랑스 왕들이 떨쳤던 치세와 예술적 취향을 알 수 있게 합니다.



혁명 이후의 루브르 Louvre après la Révolution

루브르 박물관의 탄생은 프랑스혁명 이후였다고 이야기드렸는데요. 프랑스 왕정 시대에 박물관이 될 기반이 마련되다 정확하게는 일반인들에게 문을 연 것은 4년 후인 1793년(그때 당시 루브르 박물관의 공식 명칭은 국립 중앙 박물관 Musée central des arts)이었습니다. 혁명으로 인해 모든 것들이 변해갔고 '박물관'이라는 개념이 생겨났지만, 1789년 한 번의 대혁명으로 모든 상황들이 종식되지 않습니다. 이런 배경 속에서 혁명의 광기와 혼란은 나폴레옹 같은 새로운 영웅을 만들어냅니다.

프랑수아 제라르, 나폴레옹 1세의 초상화, 1805, 베르사유 궁전

나폴레옹 1세(재위 1804-1815) 시절에는 루브르 박물관은 '나폴레옹 박물관(Musée Napoléon)'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불리게 됩니다. 나폴레옹은 도미니크 비방 드농(Dominique-Vivant Denon)을 관리자로 고용해 박물관을 더 확충하고 박물관을 더 체계적으로 가꿉니다. 박물관 내 곳곳에는 이런 나폴레옹의 흔적과 나폴레옹이 약탈로 가져온 유물과 미술 작품들을 볼 수 있는데요. 그 또한 선대 프랑스 왕들처럼 예술 작품에 대한 관심이 엄청났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참고로 드농은 루브르 박물관의 초대 관장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로,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 당시에 군인이 아닌 학술 조사 임무를 부여받고 나폴레옹과 함께하며 찬란한 고대 이집트의 문명을 직접 눈으로 보고 돌아왔었는데요. 그는 돌아와서 이런 고대 이집트에 대한 책을 내게 되는데 이 책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프랑스 내 고대 이집트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아집니다. 이렇게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던 드농과 나폴레옹이 손을 잡게 되며 프랑스혁명의 산물이었던 루브르는 나폴레옹 박물관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온갖 약탈품으로 가득 채워지게 됩니다. 파리를 '제2의 로마'로 만들 야망에 가득 찼던 나폴레옹에게는 루브르는 자신의 힘을 과시하기 위한 최적의 장소였습니다.


나폴레옹 3세 아파트 Appartements Napoléon III

아폴론 갤러리만큼이나 화려함을 자랑하고 있는 곳이 있는데 바로 나폴레옹 3세의 아파트입니다. 참고로 앞서 등장했던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나폴레옹은 나폴레옹 1세이고, 여기서 나폴레옹은 나폴레옹 3세로 나폴레옹 1세의 조카입니다. 가족관계가 좀 복잡한 집안인데요. 나폴레옹 3세는 1848년 2월 혁명 이후 제2 공화국에서 투표로 대통령에 당선되었지만, 자신의 삼촌처럼 쿠데타를 일으켜 황제에 등극합니다. 한국에서는 나폴레옹 1세만큼은 알려진 분은 아니지만 프랑스에서는 나폴레옹 1세만큼이나 큰 존재감을 자랑하는 분이십니다.

나폴레옹 3세 아파트
나폴레옹 3세 아파트

역시나 그도 그의 흔적들을 이곳에 남겨 놓는데 바로 나폴레옹 3세 아파트라 불리는 곳입니다. 하지만 이곳은 나폴레옹 3세가 직접 지냈던 곳은 아니었고, 장관들을 맞이하기 위해 만들었던 곳이라 하네요. 이곳에서는 제2 제국이 새로 출범되며 다시 '루이 14세의 절대 왕정기'가 절로 회상이 되는 화려한 내부의 장식들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의 루브르 Louvre d’aujourd’hui

루브르 곳곳에는 이런 과거의 흔적들 뿐만 아니라 현대사의 흔적들도 만날 수가 있는데요. 대표적으로는 유리 피라미드가 있습니다. 이 피라미드는 앞서 설명드렸던 '그랑드 루브르' 프로젝트 당시에 지어졌던 현대식 건축물로 현재 루브르 박물관의 주요 입구로 사용되고 있는 곳입니다. 이 프로젝트로 루브르는 현대적인 모습도 겸비한 박물관이 되었습니다.

루브르 유리 피라미드

루브르 박물관 안뜰에 해당하는 나폴레옹 광장(Cour Napoléon)에 위치한 거대한 건축물로 유리와 금속 기둥으로 만들어졌으며, 중국계 미국인 건축가 I.M. 페이에 의해 설계되었습니다

사실 이 유리 피라미드는 건설 당시에 큰 논쟁이 되었는데, 프랑스의 최고의 자랑인 루브르 박물관 입구에 고대 이집트 왕의 무덤인 피라미드를 현대식으로 지어 넣는다는 것은 프랑스인들의 비난을 불러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비난이 무색할 만큼 이 피라미드는 완공되자마자 프랑스인들과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으며 파리의 또 다른 랜드마크가 되어버립니다.


중세 시대부터 르네상스를 거쳐 20세기에 이르기까지 무려 800년이라는 시간 동안 지속적으로 변화되며 프랑스 절대왕정과 공화주의의 이념이 어우러져 완성된 '오늘날의 루브르'는 우리에게 새로운 시선을 선사합니다.






이미지 출처

중세 루브르 전시실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Louvre_m%C3%A9di%C3%A9val,_Paris_6_March_2015_003.jpg

카리아티드 방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Paris_Palais_du_Louve_Salle_des_Caryatides_01a.jpg

그랑드 갤러리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Grande_Galerie,_Louvre,_Paris,_France_-_panoramio_(25).jpg

살롱 캬레 https://fr.wikipedia.org/wiki/Fichier:Giuseppe_Castiglione_-_View_of_the_Grand_Salon_Carr%C3%A9_in_the_Louvre_-_WGA4552.jpg

그 외 이미지는 https://unsplas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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