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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느리 Mar 28. 2022

작은 낭만

남편과 주말 산책을 하는 길, 아파트 담장에 피어난 장미 덩굴을 보고는 그대로 멈추어 섰다. 한 겹 한 겹 풍성하게도 피어난 빠알간 장미꽃.

"와! 너무 예쁘다!"


그렇게 가던 길을 멈춰 선 채 나는 한참 꽃을 들여다보았다. 분명 작년에도 이 길을 지나며 봤던 꽃인데 올해는 또 다르게 예쁜 기분이다. 남편은 내게 충분한 감상의 시간을 내어 주고는 "다 봤어?" 하고서 다시 길을 걸었다.


나 "그거 알아? 강아지 키우는 사람들이 강아지 산책을 많이 시키잖아. 그냥 걷기만 하는 게 아니라 밖을 거닐면서 일부러 많은 냄새를 맡게 하는 거래. 스트레스도 풀고 그게 건강에 되게 좋대."

남편 "그래? 난 처음 들어봤어."

나 "응. 그걸 보고 '노즈 워크(nose work)'라고 부른대. 나 왠지 지금 그거 하는 기분이야."

남편 "그럼 난 '로즈 워크(rose work)'시키는 중이야?"

나 "응? 로즈 워크? 푸하하 뭔가 너무 예쁜 말인데?"


목련, 개나리, 벚꽃, 장미, 동백. 지나는 길목마다 매 계절 다른 꽃들이 피어 있다. 꽃은 그 자체로 그냥 꽃일 뿐인데... 내게는 이 계절에만 누릴 수 있는 작은 낭만 같은 것이기도 하다.




/

오래전 기억에 엄마 아빠와 길을 걸을 때였나. 그날따라 날씨가 너무 청명하고 화창해 엄마 아빠에게 "오늘 햇살이랑 바람이 너무 좋지 않아? 이런 날엔 그냥 가만히 누워서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면서 쉬고 싶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함께 걷던 아빠는 "그런 말은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나 하는 소리야."라며 나의 말을 싹둑- 잘라 버리곤 가던 길을 걸으셨다. 여태 기억하는 걸 보면 이 말이 상당히 충격이었나 보다. '쳇. 그런 걸 느껴볼 여유조차 없다면 인생이 너무 쓸쓸하잖아!'




/

나는 이러한 것들을 참 좋아한다. 노오란 빛의 따뜻한 햇살. 보정이라도 해놓은 듯한 새파란 하늘. 아무렇게나 뭉쳐진 뭉게구름. 새카만 밤하늘과 그 속의 손톱 달. 흩뿌려진 옅은 작은 별. 시멘트 바닥 사이에서도 곧이 자라난 어여쁜 풀꽃.


아무 짝에도 쓸모없고 남들보다 조금 감성적이면 어때. 당연하게 있는 것들을 당연하지 않게 누리는 것. 반복되는 일상에서 나만의 사소한 낭만을 찾는 것. 나는 그렇게 작은 낭만들로 내 삶을 채우고 싶다.


그것이야말로 낭만적인 삶 아닌가?


"난 원체 무용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좋아하오. 달, 별, 꽃, 바람, 웃음, 농담, 그런 것들."

-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에서 좋아하는 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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