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 루팡의 고백
사장님껜 비밀이지만 사실 나는 입사와 동시에 퇴사를 생각했다. 취업의 기쁨은 출근 직전 까지였다. 아침 드라마에서만 보던 훤칠하고 잘생긴 실장님, 본부장님은 가까이서 보니 배 불뚝 나온 아저씨였고 당차보이던 커리어우먼은 눈 밑에 그늘이 짙게 깔린 바쁜 워킹맘들이었다. 드라마 밖, 현실 속 선배들은 나의 롤모델이 되기엔 한참 부족해 보였다. 입사 직후부터 담당 업무가 생겨 하루에도 수 천만 원, 수 억을 거래했지만 태어나 만져본 적 없는 큰 금액이라 그런지 회사일은 내 일이 아닌 네 일로 느껴지기만 했다.
월급을 받으니 밥값은 했지만, 그 이상의 힘은 쏟지 않았다. 개학 직전에 몰아서 방학숙제를 하던 초등학생은 어른이 되어서도 마감일 직전에 보고서를 쓰곤 했다. 더 나아지길 기대하지도 않고 상사에게 보내면 내가 할 일은 다했다고 여겼다. 아껴둔 힘은 가족에겐 화의 모습으로, 스스로에게 불안이라는 모습으로 돌아왔다. 이렇게 살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회사 다 거기서 거기지'라며 이직할 생각은 꿈조차 꾸지 않았다. 깨어있는 시간 대부분을 회사에 주고, 그 대가로 따박따박 월급을 받았다. 시간을 팔아 번 돈으로는 술을 마셨다. 퇴근하고 홍대, 이태원, 여의도를 부지런히 다니며 날이 좋으면 돗자리 피고 맥주를 마시고, 날이 안 좋으면 전집에서 막걸리를 마셨다. 친구들이 회사 생활의 어려움을 이야기하면 회사 밖에서도 일생각하 다니,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남자친구가 일 때문에 약속에 늦으면 자기 일도 아니면서 뭘 저렇게까지 열심히 하나 서운해했다. 그때는 몰랐고, 몰라서 무시했다. 네 일을 내 일로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노력을.
내 미래라 생각하면 암울하기만 했던 옆자리 대리는 과장이 되고, 나는 대리가 되었다. 연차가 쌓일수록 복도에서 창 가까이로 한 칸 한 칸 자리만 바뀔 뿐 변함없는 일상이 계속되었다. 더운 날 시원한 곳에서, 추운 날 따뜻한 곳에서 일할 수 있었고, 회삿돈이지만 큰 손이었기에 어딜 가도 나쁘지 않은 대우를 받았다. 명함 속 회사 로고는 엄마아빠의 자랑이었고, 할아버지 장례식땐 상조회사보다 먼저 회사에서 보낸 장례용품이 도착해 있었다. 도망칠 이유는 고작해야 하나 두 개였는데, 머물 이유는 수십 가지였다. 그래서 버텼다. 팀장의 성희롱과 성추행이 통제 불능이 되는 회식날만 잘 피하기를 바라며. 바란 건 그 하나였지만 지독히도 들어주지 않아 그만두었다. 어차피 내 일도 아닌 네 일이었기에 가능했다.
일을 잃은 김에 내 일을 찾고 싶었다. 평소 관심 있었던 책방을 차리려고 부동산 여기저기를 기웃대보았지만 계약하려니 덜컥 겁이 났다. 나에게 자신이 없었다. '회사에 힘들일일이 뭐 있어, 힘쓸수록 손해야'라고 생각했던 내가 내 일이라고 갑자기 힘쓸 수 있을까?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다시 채용 사이트를 기웃거렸다. 마침 성희롱 팀장은 나갔고, 돈도 떨어졌고, 다른 사업부에 공고가 났길래 다시 면접 보고 들어갔다. 아는 사람 마주치면 창피해서 어쩌나, 어차피 같은 일 하는데 또 지겨워지면 어쩌나 걱정도 많았지만 그때 가서 또 퇴사하면 된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돌아왔다.
네 일도 내 일도 못하는 사이 일에 대한 갈증이 생겼던지 다시 돌아온 회사에서는 좀 잘해보고 싶어졌다. 여전히 임원이 되고 싶다거나 정년까지 다니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들지만. 있는 동안은 재미와 의미를 찾고 싶다. 내 이름 달고 나가는 보고서, 메일 하나하나가 내 일이라는 마음이 생겼다. 마감 직전에 후루룩 쓰지 않고 숙제를 받자마자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길을 걷다가도, 책을 읽다가도 좋은 생각이 떠오르면 신나서 메모해 회사에 적용했다. 이 회사에서 잘하면 내 회사에서도 잘할 테니 기왕이면 돈 받으면서 배워보자는 마음이 생겼다. 감히 롤모델이 되기엔 부족해 보였던 배불뚝이 팀장님도, 얼굴이 핼쑥한 과장님도 다르게 보인다. 그저 하루하루 묵묵하게 자기의 돌을 굴려 올리는 우리 팀의 시시포스들. 그들에게 배우고, 가끔은 그들처럼 일 하고 싶어 하는 요즘. 내 일을 하며 내일을 준비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