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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향 Apr 22. 2024

너 덕분에 따듯했어

나는 괜찮았어

이른 새벽, 거실에서 들리는 부산스러운 소리에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잠이 깼다. 엄마가 병원에 가는 날이면 하루가 늘 일찍 시작되었다. 서울 병원에서 오전 진료가 잡혀 있는 날이면 첫 기차를 타고 가는 날이 흔하다. 그것도 바로 가는 기차가 없어서 다른 도시에서 환승을 해야 병원 가까이에 있는 역에 도착할 수 있다.


교회에 특별새벽기도회 있는 날이었다. 새벽녘에 일어나 소변팩이며 병원에 갈 준비를 하고서 기도회를 참석했다. 교회 식당에서 아침을 판매하기에 예배를 드리다 조금 일찍 나와서 아침밥을 먹고 기차역으로 향한다.  내가 동행할 수 없어 엄마 혼자 병원을 가야 하는 날이다. 엄마와 나, 둘만 앉아 있는 교회 식당. 엄마는 그날도 얼굴엔 씩씩함이 묻어 있었다. 한창 봄이 지나가고 있던 무렵이었을 것이다. 기억 속 엄마의 옷이 그리 두텁지는 않았던 것 같다. 엄마를 하늘로 보내고 두 번의 특별새벽기도회가 지나갔다. 특별새벽기도회가 되면 둘만 있던 식당의 그 풍경만 유달리 크게 보인다. 새벽시간이어서 일까, 공기의 어딘가가 서글프고 애잔하다.


내 삶의 1/5이 되는 기간 동안 엄마가 아팠다. 아팠던 시간의 4배가 되는 시간을 보통의 사람처럼 지냈음에도 기억 속의 엄마는 아픈 모습으로만 남아있다. 이따금씩 꿈에서 보이는 모습마저 여전히 육체의 아픔을 지닌 채로 엄마는 나타난다. 슬펐다. 아픔도 없는 천국에서 행복하게 계실 거라 확신하지만. 이 세상의 삶이 왜 그리 고단했을까 하는 생각에 신에 대한 원망의 마음도 수차례 올라왔다. 전능하신 신께서 왜 엄마의 병은 고쳐주지 못하셨는지, 살기 위해 건강해지기 위해서 숱한 노력을 했는데 왜 살려주지 않으셨는지 의문과 원망의 마음이 가득했다.


마음엔 여전히 엄마를 향한 아련함과 불쌍함이 앞섰고, 사진 속에서 슬픈 웃음을 짓고 있는 엄마의 모습은 늘 마음을 울렁거리게 했다. 눈을 감고 신에 대한 원망의 마음을 가만히 읊조리며 엄마를 떠올렸다. 엄마는 어땠을까? 아팠던 수년의 시간 동안, 병원 길을 수없이 오가면서 엄마의 마음은 어땠을까? 그런 내게 엄마가 마음으로 말해 주는 듯했다.


"나는 괜찮았어. 덕분에 춥지 않았어. 네가 옆에 있어서 나는 늘 따듯했어. 그러니깐 괜찮아."


맞아 그랬지. 엄마는 자식들이 엄마를 위해 들이는 시간과 마음을 당연하게 여긴 적이 없었다. 어찌 보면 부모로서 자식에게 당연하게 요구할 수 있는 희생과 섬김이지만 엄마는 한 번도 당연하게 받았던 적이 없었다. 엄마 옆에 있는 나를 향해 네가 옆에 있어서 다행이라고, 네가 없었으면 어쩔 뻔했냐며 늘 얘기해 주었던 엄마이다. 그러니 너무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고 엄마를 너무 불쌍하게 애처롭게 생각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듯했다.


엄마의 첫 번째 기일이 45일 남짓 남았다. 마지막으로 서울 병원을 다녀오고 엄마를 보내기까지 폭풍 같았던 40여 일의 시간, 그 시간들이 자꾸만 상기된다. 모든 것이 마지막이었던 그 순간들을 나는 어떻게 기억하고, 내 감정은 어디로 어떻게 흘러가도록 둬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사실은 조금 무섭기도 하다. 엄마는 괜찮았다고 말하지만 아팠던 엄마의 모습을 조금 덜 기억하는 것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도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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