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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향 Nov 20. 2023

할머니랑 등산가고 싶었는데

나도 우리 엄마랑 등산 가고 싶어

누군가를 하늘로 보내고 나면 꼬박 사계절은 지나야 한다는 얘기를 종종 들었다. 엄마를 땅에 묻던 날은 하늘이 쨍쨍한 여름이 시작되는 무렵이었다. 낙엽이 지는 짧은 계절이 지나갔고 어느새 겨울이 찾아왔다. 겨울이 지나고 다시 꽃이 피고, 열매가 익어가기 시작할 때쯤 일 년의 시간이 지나가 있을 것이다. 


최근 들어 새롭게 생긴 습관을 발견했다. 하늘을 오랫동안 보고 있지를 않았다. 시시때때로, 계절마다 달라지는 하늘빛을 보는 것을 좋아했는데 언제부터인지 하늘을 제대로 보지 않고 있었다. 엄마를 보내고 얼마간은 '엄마가 저기서 보고 있겠지'하며 하늘을 올려다봤는데 지금은 하늘을 보면 엄마 생각이 간절해져 금세 눈을 돌려버리곤 한다. 사실, 어떤 타이밍인지 잘 모르겠다. 파란 하늘을 보다가, 길가에 늘어선 낙엽진 나무들을 보다가, 마트를 갔다가 그냥 불쑥불쑥. 예상이 안 되는 그 순간들이 있다. 




오늘 아침엔 언니가 산책길에 전화를 했다. 내년이면 중학생이 되는 둘째 얘기를 한참 하다, 요즘에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사는지, 최근에 읽은 책이 어땠는지 이야기들을 나눴다. 그러다가 요즘의 마음은 어떤지 잘 지내고 있는 건지 서로의 마음의 안부를 물었다. 나의 새로운 습관을 얘기했고, 아빠와 시시콜콜 대화하는 시간들이 많아져 다행이라고 했다. 유독 일요일 저녁을 먹을 때 엄마 생각이 많이 나지만 그래도 이전보다는 조금 괜찮아진 거 같다고 얘기했다. 괜찮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괜찮지는 않은, 울컥울컥 거리는 마음을 애써 다독이면서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언니가 잠시 말이 없었다. 침묵의 순간이 눈물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그리곤 첫째가 이런 말을 했다며 하는 말이, 

 

"할머니랑 등산가고 싶었는데..."


6개월이 지나는 동안 처음으로 꺼낸 할머니 얘기가 등산을 같이 가고 싶었다는 말이었다. 16살의 손자가 하늘로 간 할머니를 생각하며 혼자서 삼킨 마음들이 어느 정도 일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계절이 변하는 시간들이 쉽게 지나 가지지 않았다. 엄마를 향한 그리움은 더 깊어졌고 마음이 버거운 날들이 2,3주 정도 이어졌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채로 물고 물린 생각들에 마음이 도미노처럼 쓰러지는 듯했다. 잠시 외출한 엄마가 보고 싶다며 세상 끝난 듯이 우는 6살짜리 꼬맹이처럼 나도 그러고 싶었다. 


요즘 들어 자주 울컥울컥 한다는 언니도 같은 마음인 듯했다. 언니는 산책길에 눈물바다가 되었고 나는 아침부터 띵띵 부은 눈으로 병원 진료를 봐야 했지만 이상스레 마음은 조금 후련해진 것 같다. 전화기 붙들고 같이 맘 편히 울 수 있으니 그것만으로 참 다행이다.  내일 아침은 띵띵 부은 눈으로 일어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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