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낀 빨간 날, 집에 머물며
흡족함의 시간을 보낸다
숱한 생각으로 과거와 미래를 가져와도
숱한 기억으로 찬란함을 안고 살았던 사람들을 떠올려도
지금 이 순간
모두가 사라져버리는 내 눈을 본다
아무것 가지지 않아도 좋다
아무것 얻지 않아도 괜찮다
초연에 안개비까지 섞여 날려도
바람이 지붕을 가져갈 듯해도
내 심연의 깊은 곳에선
수용과 인정의 노래가 흘러나오고
난 이런 걸음이 좋다
오늘은 별일을 하지 않는다
먹고 자고 읽고 듣는다
타인들에게 내 시간을 저당 잡히지도 않는다
빨간 날, 마음에 햇살이 드는 날
넉넉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역사가 다가오고 종교가 말을 걸어와도
아쉬움과 미련을 만들지 않는
내 노래는 하얀 빛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