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를 잘하시나요?
식사 준비와 가사 그리고 육아에 대한 생각
아이가 생기기 전에는
요리를 잘하시나요? tv, 인터넷, 유튜브 등에는 온갖 종류의 요리 관련 방송과 먹방, 특색 있는 지방의 음식, 신기한 세계 여러 나라 음식, 음식과 여행이 합쳐진 맛 기행 등 하루에도 쏟아지는 음식, 요리 정보가 엄청납니다. 냄새만 나지 않았지 내 앞에 가져다 놓은 것처럼 음식의 디테일과 맛 표현이 살아있는 방송을 보고 있으면 우리 집 어린이도 "아~나도 먹고 싶다."라고 자주 얘기하곤 했습니다. 어린애의 없던 입맛도 살려내는 재주가 좋은 능력자들입니다. 그러나 꿀팁, 황금 레시피, 맛집, 밥도둑, 침샘폭발, 겉바속촉 등의 음식계 신조어들이 아무리 귓가를 맴돌고 눈앞에 음식이 아른거려도 매번 맛있는 음식점들을 찾아 나서거나 사 먹는 외식으로 다 채울 수는 없습니다. 정말 돈이 많고 그럴 필요가 없는 몇몇 예외적인 사람들을 빼고는 기본적으로 살아가려면 스스로 요리를 할 줄 알아야 뭐라도 해 먹고 가끔은 지친 마음의 허기를 채울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일상적인 매일의 삶에 기쁨과 행복감을 더해주고 지친 일상엔 파이팅 기운을 채워주는 아주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자기에게 요리를 해주는 것입니다. cook for myself. 한국사람은 밥심으로 산다는 말이 있고 밥이 보약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정말 진리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매우 안타깝게도 저는 이 깨달음을 40대에 알았습니다. 부모님과 함께할 때에는 부모님의 음식을 가져다 먹었고 떨어져 지낼 때에는 쌀을 씻어 밥통에 밥을 지어먹는 정도와 초간단 카레 짜장 스파게티의 수준 즉 기본 생존만 연명할 수 있는 수준까지 밖에 가지 못했습니다. 내가 밥의 위대함과 요리의 중요성을 10년만 일찍 알았어도 입이 즐겁고 영혼이 살찌고 삶이 풍요로워지고 다채로워지고 기타 등등 얼마나 좋았을까? 나 개인적인 때늦은 후회는 땅을 몇 번 쳐서 달랜다고 치더라도 요리가 준비되지 않은 채 맞이한 새 식구 oo이와의 동거는 험난함이 기다리고 있음이 분명했습니다.
아이가 생긴 후에는
식구라는 단어에서도 말해주듯이 가족 구성원은 곧 입 하나를 의미하였다. 내 입은 기본 연명식만으로 채워졌을지 몰라도 남의 입 즉 가족의 입은 그런 방식으로 절대 채워지지 않았다. 더군다나 새로 태어난 아이는 모유와 분유로 살아가다 적절한 시기에 이유식으로 갈아타고 점차 점차 밥의 형태로 넘어가기 때문에 엄마의 요리실력과 음식 다양성은 아이의 식생활에도 꽤 많은 영향을 미쳤다. 아무리 식생활이 편리해지고 대형마트에 완조리, 반조리, 밀 키트, 반찬까지 신선한 육해공 음식재료들이 꽉꽉 들어차 있어도 그것들을 선택하여 구매하고 보관하고 조리하고 식탁에 올리는 과정을 총괄하는 엄마 또는 부모의 역할은 아직까지도 필수불가결이다. 듣기로는 식성이 좋아서 신선한 재료와 엄마의 정성 한 스푼으로 조리된 음식을 맛있게 잘 먹는 효자 효녀형이 있었고 잘 먹을 때가 있고 잘 안 먹을 시기가 나뉘는 엄마 애태움형도 있었다.
만드는 것은 네 자유지만 먹는건 내가 알아서 해
우리 집 어린이는 아기였을 때부터 이유식 숟가락에 입을 잘 벌리지 않는 편이었고 조금씩 먹다가도 맛과 기호에 이상을 느끼면 바로 입을 다물고 빗장을 채워버리는 아이였다. 그나마 좋아했던 것은 맛이 균일하고 일정한 멸균우유였다. 멸균우유는 아이의 생애 첫 밥 모유와 동일한 액상 형태면서 이유식처럼 굳이 어렵게 잘게 부수고 분해해 침과 섞어 입안 미뢰에 은근하게 퍼지는 맛을 음미하지 않아도 되는 유아계의 부정행위와도 같은 것이었다. 바로 빨대를 꽂아 쪽쪽 빨아 혀와 식도를 고속도로 타듯 넘기면 바로 욕구를 채울 수 있는 쉬운 길을 알아버린 아기는 영악하게 액체를 선호했다. 이유식을 맛있게 만들어 보려는 노력도 초보 엄마는 서툴렀고 아기의 완강한 식사 거부반응도 지켜보니 웬만한 설득 노력 갖고는 이도 안 들어가겠다는 표현이 적절하여 멸균우유는 유아기 oo이의 주요 간식으로 자리매김하여 갔다.
멸균우유에 1패
초보 엄마는 멸균우유에 시원한 1패를 당했다. 이런 아이는 '초짜 엄마가 이렇게 시간과 공을 들여 맛있게 만들었는데 왜 안 먹냐?'라는 뻔한 수로는 절대 이길 수 없는 아이다. 산전수전 공중전을 다 겪고 엄아만 모르는 '의문의 무승전패'를 당할 바에야 마음을 비우고 아이의 비위와 기호를 맞춰가면서 장기전에 돌입하는 것이 훨씬 낫다. 그러나 초보 엄마가 이걸 처음부터 알 리가 있겠는가? 수많은 이유식 상물림을 겪고 시행착오와 끓어오르는 분노와 어쩔 수 없는 체념을 겪은 후에야 알았다. 이렇게 1라운드 아기승! 엄마 패! 화내는 사람이 무조건 지는 것이다. 앞으로 즐겁고도 험난한? 육아의 과정을 알리는 서막과도 같은 것이었다.
2022년 아이가 5살이 된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래도 유동식에서 고형식으로의 전환이 극적 타결은 아니었어도 성공적으로 이끌어낸 나의 인내와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식판에 놓인 다양한 반찬들을 싹싹 긇어 풍요로운 맛 세계를 탐방하는 아이는 아니지만 뭐가 맛있다는 말도 가끔씩 하고 지 좋아하는 반찬을 위주로 소량 밥을 아주 느린 속도로 한 눈 잘 팔아가며 먹는 쾌거를 엄마는 이룩했다. 올림픽 시즌에나 자주 듣는 쾌거라는 말이 나의 경험에 잘 어울리는 것을 보면 잠시 잠깐 보람을 느낄까 하다가도 엄마라면 누구나 아이를 낳아 육아를 하면 올림픽을 몇 번을 치르는 건지.. 말해 뭐함ㅠ
그리고 지금 oo이의 밥의 기호를 파악해 본 결과는 섞인 음식이나 질감을 싫어하는 순수파, 물에 빠진 국물형 보다 국과 밥은 따로파, 한 번 맛있게 먹었어도 그다음엔 아니올시다 진보, 삶아진 수육의 부드러운 비계 부분도 넘기기는 곤란하다는 고기뱉어파, 케이크, 과자, 아이스크림 등에 넘어가면 밥 따위는 바로 잊는 변심파였다. 고춧가루 한 점도 용납 못하는 매워질색파에다 생선살도 웬만하면 보들 하여 육고기보다 먹기 좋을 텐데 맛있게 먹을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냉동실에 자주 안 먹어 꽁꽁 딱딱한 초콜릿은 위치를 정확히 파악해 먹고 싶을 때 먹겠다고 의사표현이 확실한데 반해 밥때가 되어 밥을 차려 놓으면 데면데면하여 주황색은 토끼가 좋아하는 살짝 단맛이 나는 당근이고 국에 들어간 갈색 보드라운 조각은 짱우가 좋아하는 표고버섯이라고 음식 정보를 읊어줘서 관심을 유도한다.
아직도 음식에 대한 이해와 요리에 대한 폭넓은 감각과 저변이 넓지 못한 주방 총괄 엄마는 인터넷 블로그와 지역 맘 카페 등에 올라온 일주일 반찬 휘리릭! 뚝딱 만들기!라는 주제의 글에는 눈이 동그래져 감탄은 보낸다. 그러나 많이 해 봤자 먹지도 않는 우리 집에는 해당이 안 된다며 감탄과 부러움을 뒤로한다.
하늘을 두 어깨로 메고 있는 아틀라스 엄마와 아빠
'아침 줘 점심 줘 저녁 줘'에 대한 생각을 해 보았다. 아이가 생기기 전에는 황혼에 남편이 어디 가지도 않고 집에 머무르며 부인한테 삼식이를 하면 절대 안 된다는 농담을 절실히 깨닫지는 못 하는 '그냥 그런 거구나.'수준의 이해도였다. 그러나 아이가 조금씩 커나가면서 가족생활에 있어서 장보기와 식재료 적정보관 그리고 아침, 점심, 저녁 식사 준비와 정리로 대표되는 식생활의 중압감은 실로 만만치 않다는 것을 매일 깨닫는다. 특히 나를 기준으로 요리계를 자의 반 타의 반 육아와 동시에 필요에 의해 입문하게 된 경우는 식생활 즉 '밥해먹고 밥해주고 살기'는 더욱 절실하지 않을 수 없다. 외식도 많고 발달된 유통과 배송 그리고 내 손안에 마켓 앱까지 도구가 참 많아졌고 아이의 음식과 건강을 책임지는 주양육자들의 손을 거들어 주는 도움의 손길이 많아졌다. 그러나ᆢ그럼에도 불구하고 발등에 떨어진 불 끄듯 가정식에 입문한 요린이는 하늘을 두 어깨에 메고 있는 아틀라스를 동병상련하며 그 끝이 없는 반복의 중압감이 무겁다.
요린이가 엄마가 된 경우가 아니더라도 요리의 달인이라도 가족들의 먹고자 하는 욕구를 때 맞춰 365일 채워주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다만 예부터 우리 전통 엄니들은 자식 입으로 들어가는 일이라면 열일 마다하지 않고 기꺼이 헌신하고 기쁘고도 당연하게 하셨던 것 같다.
더 힘들게 고생을 해서 자식을 먹이고 키우면 키웠지 고생스럽지 않은 일은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세대의 가사나 육아가 편한 세상에 태어나 당연히 누구나 하는 것쯤으로 받아들여져서는 안 된다. 가사와 육아 또한 단연코 쉬운 일이 아니고 엄마만이 당연히 짊어져야 하는 영역도 더 이상은 아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어린아이가 있는 가족은 더욱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졌고 주말이나 휴일 명절에도 사람이 붐비는 곳을 피하고 외출을 자제하려면 가정에서 육아의 시간이 늘고 아이를 먹이기 위해 들이는 시간과 노력도 늘어난다.
솥뚜껑 운전이 쉽다구용??
누가 말했는지 출처는 알 수 없지만 그건 안 해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밥은 뜸 들이기도 아나운서 발음으로 알려주는 전기밥솥이 하고 각종 요리는 쿡탑이 하고 빨래는 통이 통째로 돌아가는 세탁기가 하고 건조는 반짝반짝 빛나는 드럼을 보유한 건조기가 한다. 식사 후 설거지도 이제는 식기세척기가 그릇을 차곡차곡 넣고 버튼만 눌러주면 잘한다. 편하고 좋은 세상이지만 전적으로 쉬운 건 아니다. 해보지 않고 밥상을 함께 준비하지 않고 자주 받아보는 사람이라면 쉽게 생각될 수도 있겠다. 위의 장비들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도구일 뿐이다. 그 도구들을 사용하여 편리함을 얻었다면 편리함을 얻은 대가로 기계를 유지하고 청소하는 시간과 기계에 갖다 넣은 결과물들을 다시 꺼내 정리하는 과정도 필수이다.
청결함을 유지하기 위한 청결 노력
예를 들어서 평평한 인덕션이 아니라면 쿡탑을 단 1회만 가스불을 켜고 사용하여도 사용 흔적이 남는다. 가스불은 열에너지이고 조리하고자 하는 음식과 냄비에 열이 전달되어 끓어오르면 물방울도 튀고 기름도 튀고 국도 튀고 온 사방이 쉽게 오염이 된다. 그리고 깔끔한 사람이라면 그 오염을 매번 사용할 때마다 닦아야 하는데 바닥은 물론 화구 주변 및 덮개, 원형 지지대도 닦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그리고 후드 망 또한 음식 연기를 빨아들이느라 작은 구멍 사이로 촘촘하게 기름방울을 흡수하고 있기 때문에 쉽게 누렇게 오염이 되고 딸깍하고 떼어내어 세제통에 서너 시간 담가놓은 후 세척하는 과정이 있다. 세탁기 세탁조 또한 누적된 빨래들의 먼지 때를 품고 있기 때문에 하루 저녁 불려 빼내는 정기 청소의 대상이고 건조기 또한 열과 바람으로 젖은 빨래들을 말려주었기 때문에 먼지망 청소와 열교환기 청소 과정이 있다.
숨은 노동의 가치
내가 지금까지 별 문제 없이 살아오고 또 살아가고 있는 것은 주변 곳곳에 보이지 않는 손들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언제부턴가 알게 되었다. 예전에 유행했던 그림책 <윌리를 찾아라>를 펼쳐서 윌리를 찾다 보면 그 안에 수많은 사람들이 숨어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숨어있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존재하였지만 자세히 보지 않으면 인식하지 못하는 그리고 늘 수고로움을 아끼지 않고 노력과 헌신을 하는 존재들.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내가 쉽게 놀고 떠났던 아파트 공동 놀이터와 보행로가 늘 깨끗함을 유지하는 것은 낙엽을 날리는 강풍기와 비와 쓰레받기, 걸레를 들었던 청소인력 어르신들이 있기 때문이었고 우리 집 보일러와 가스레인지를 아무 문제없이 사용하고 있는 이유는 안전점검원의 정기방문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냄새나는 음식물 쓰레기를 쌓아둘 필요없이 바로바로 갖다버릴 수 있는 것은 아파트에 모아진 음식물을 수거하러 아침에 특수차량을 운전하여 온 공공인력 덕분이다. 내가 이렇게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낼 수 있는 이유 또한 어린이집서 아이 보는 수고로움을 직업으로 하시는 보육교사 선생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지금 모든 사람들이 경험하고 있는 코로나 팬데믹의 최일선에 계시는 의료인력 또한 내가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인식하지 못할 수 있는 소중한 손길이다. 그리고 내 아이도 엄마 아빠의 도움이 있기에 살아간다.
누구나 반짝반짝 빛나는 삶을 살길 바란다. 그러나 진정 존재감이 어마어마한 분들은 눈에 보이는 빛이 나지 않는다. 오히려 거칠거칠하고 손에는 상처와 때가 끼어있다. 요린이 엄마가 해 준 집밥을 먹고 자란 우리 아이가 세상에서 반짝이고 빛나는 사람이 되어도 기쁘겠지만 곳곳에 숨어있는 소중한 그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잊지 않고 살아가는 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