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엄마는 왜 인기순위에서 밀렸을까?

by 육아와 생각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라는 어른들이 아이에게 하는 고전적 질문을 생각해 보았다. 아이가 생기기 전에는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도 없거니와 특히 어린아이들에게 이런 질문이 적당할까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사람 마음이란 게 공평함을 추구하여 누가 누구랄 것 없이 똑같이 마음이 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냥 마음 끌리고 정이 가면 더 좋아하는 것이고 영 끌리지가 않거나 내가 싫어하는 면이 보인다거나 나와 맞지 않는 점 때문에 자주 부딪치게 된다면 싫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싫다는 감정에서는 조금 더 뚜렷한 이유를 찾을 수 있지만 누군가가 좋다는 말에는 왜냐고 물어도 그냥 마음이 가고 좋다라고만 대답을 마쳐도 별 문제가 없다. "좋으니까 좋지. 좋은 걸 어떡해. " 이 말에 토를 달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다.


더군다나 아이는 엄마가 좋을 수도 있고 아빠가 좋을 수도 있다. 그리고 둘 다 좋을 수도 있다. 즘에는 아빠들의 육아참여가 많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여서 반드시 주양육자는 엄마고 엄마가 아이의 첫 순위 애정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나는 아니다. 그러므로 일한 만큼 벌어간다고 아빠들도 아이들의 사랑과 지지를 공 들인 만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업맘의 경우 엄마가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아낌없이 할애하여 돌보아주는 애정과 공도 대단하고 아빠가 직장에서 업무에 전념하는 시간 또한 가정사랑과 아이 양육의 연장선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엄마와 아빠 중 누가 돈을 벌고 누가 주양육자 역할을 담당하는지는 요즘 세상에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앞으로도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나 편견으로 인한 오해는 없길 소망한다. :- )



아이의 발달 면에서 보아도 영아기에는 없었던 관계 개념이 생겨나고 나를 돌보아주는 부모에 대한 신뢰는 분화되어 엄마와의 관계 그리고 아빠와의 관계가 분명하게 구분되고 차곡차곡 저장될 것이다.



아이들이 평소에 엄마가 좋은지 아빠가 좋은지 주변 어른 인터뷰에 대비해 적정 답안을 생각해 놓는지는 모르겠으나 그것의 답을 듣고자 하는 것은 어른들의 괜한 불화를 지피는(?) 호기심 이상은 아닌 것 같다.


출처: unsplash



누군가가 좋다는 말은 여러 가지 깊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으면서도 하나하나 자세하게 증거를 열거하지 않아도 되는 말하자면 그 말 한마디로 모든 것이 표현되는 사랑의 작대기와도 같은 것 같다. <사랑의 스튜디오>라는 인기 만점의 프로그램이 있었다. 아직까지도 기억되는 여러 가지 기억중 가장 강렬한 것 중 하나는 모두가 화사하게 웃음이 귀에 걸린 표정으로 박수를 치며 최종적으로 커플로 선정된 분들을 향해 축포를 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tv화면의 출연자들 얼굴에서 얼굴 사이를 종횡무진 누볐던 사랑의 작대기 화살표!! 쁜 하트를 이룬 그분들이 이후에 백년가약을 맺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리 오래지 않은 시간 속에서도 누군가가 좋을 수 있고 사랑의 작대기가 효험을 발휘해 커플로 연결되는 신통방통한 과정을 엿볼 수 있었다.


물론 사랑의 작대기는 가족 간에도 있다. 먼저 여자와 남자가 만나 이룬 사랑의 결실이 아이이고 그 아이를 태아 적부터 품고 아낀 것이 모성애이다. 모태를 옆에서 살뜰히 지키고 보호한 부성애 또한 말할 것도 없다.

이제는 이성적인 사랑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랑의 작대기보다는 마음의 작대기가 더 나을 것 같다. 사랑의 작대기와 마음의 작대기의 차이는 뭘까? 사랑의 작대기가 결실을 이뤄 가정을 이룬 것인데 이제부터는 현재 완료의 기간 개념이 들어간 마음의 작대기다. 가족 구성원이 서로가 서로를 아끼고 보듬고 마음의 작대기가 오고 가는 현장이면서 세월의 깊이를 더한 장맛과도 같은 찐득한 관계 형성이 일품이다.


아이를 처음 키우면서 가졌던 생각은 아이가 엄마와의 관계에서 배울 수 있는 점이 있고 아빠와의 관계에서 배울 수 있는 점이 또 다르기 때문에 아이가 아빠와의 관계도 잘 형성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그래서 조금씩 언어가 발달하고 엄마와 상호작용을 하면서 늘 아빠와의 관계를 독려해 주었다. 아빠의 존재를 잊지 않고 아이에게 부각해 주는 관계 조력자 역할을 자처하고 나섰다. 그리고

아이가 밖에서 뛰고 노는 시간이 늘어나는 시기가 되자 공원이나 유원지, 어린이 박물관, 곤충박물관, 공룡 수목원, 꽃 식물원, 동물 먹이주기 체험 등 다양한 곳에 다녔다. 남편의 취미가 tv, 영화 등 영상물에 많이 집중되어 있는 편이라 휴일에 어디 가지 않고 집에 있을 경우 바로 코앞 놀이터도 잘 나가지 않고 영상물만 종일 볼 확률이 높았다. 그 점은 자라나는 귀중한 내 아이가 본받았으면 하는 점이 별로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외부 나들이행을 선택했다. 물론 아이가 나중에 더 커서 여러 가지 영상매체에 관심을 가지고 좀 더 깊은 흥미를 가지게 되는 것은 문제가 아니지만 어렸을 때부터 아침에 일어나 tv 점심 먹으면서 유튜브, 저녁 잘 시간에 케이블 프로그램들을 섭렵하는 광경은 절대 절대 반대이다. 내 아이도 안 되고 다른 아이들도 안 되고 잠깐잠깐은 괜찮지만 아무튼 미디어에 습관적인 노출은 인간적으로 싫었다. 그래서 시작된 것이 우리 집 주말 나들이와 짤막 짤막한 여행들이었다. 그리고 아이와의 시간을 좀 더 활동적으로 해보자는 엄마의 취지와 계획은 잘 맞아 들어갔다. 아이와 아빠 집에 있을 때보다 활기차고 더 다양한 반응을 보였고 아이의 작은 얼굴에서 피어오르는 살아있는 표정들은 다음 나들이 그리고 다음 여행을 실행하게 해주는 에너지원이자 원동력이었

다. 그렇게 아이의 활동적인 시간은 주로 에너지 많은 아빠와 채워나가게 하였고 나는 한 발짝 뒤에 물러서 슈퍼바이저 역할을 자처하고 다소 육아로 지친 몸의 쉼을 선택하였다. 나는 흥이 없는 사람이고 흥과 재미와 에너지 업무를 아빠에게 맡긴

나의 큰 그림은 꽤 괜찮았다고 생각을 했다. 그리고 먼 장거리도 멋있게 운전을 하고 재밌는 체험도 늘 함께 해주는 아빠를 아이도 더 많이 좋아하게 되었다. 아이와의 관계에서 늘 재밌게 놀아주는 아빠를 이길 만한 게 있을까?

그런데 사소하고 애매하지만 나의 입장에서는 속이 뒤집어지는 역모와 배반? 이 일어나고야 말았다. 남편은 내가 부자관계에 보여준 관심만큼 나와 아이와의 관계를 신경 써 주지는 않았다. 자기를 아빠 아빠 졸졸 따라다니며 전적인 신뢰와 사랑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어린 아들에게 사랑이 깊어지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남편의 성향은 자기가 좋아하는 아이한테 1순위 애정을 받고자 수단을 가리지 않았다. 분명히 아이가 화장실에서 장난 삼아 휴지를 다 풀어놓기를 몇 번이고 반복해서 하면 안 된다고 가르쳐야 하는 타이밍이 분명한데 실실 웃어가며 우리 함께 감아보자를 반복했다. 결국엔 반복되는 장난에 내가 화가 나서 소리를 지르고야 말았다. 아이와의 저녁시간은 어떤가? 혼자 떠먹고도 남을 시기에 아이와 꽁냥꽁냥 저녁을 먹겠다고 입에 떠먹여 주는 버릇을 들여버렸다. 그리고 엄마는 다시 혼자 먹도록 알려주는데 꽤 오랜 시간을 들여야만 했다. 그리고 아이가 영상물을 좋아한다고 플레이 타임이 두 시간이나 하는 애니메이션 영화들을 일부러 찾아서 보여주었다.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평소에 서로의 육아방식을 존중하자는 무언의 협약이 있었기 때문에 영 잘못된 방법이 아니라면 일단 인정을 했고 지가 결과를 당해봐야 알지 속으로 쓰린 혀를 끌끌 차며 기다렸다.

남편은 아이의 엄마 향한 사랑 표현에는 의문표를 달았고 아빠를 향한 과일 입에 넣어주는 애정공세에는 승리의 미소를 나에게 보란 듯이 날렸다. 속 깊은 대인배인 내가 참았다. 자기는 멋진 장난감들을 사줄 수 있는 돈을 벌어오는 가장이고 엄마는 아니라는 도를 넘는 발언도 생각 없이 일부러 해댔다. 그래그래. 내가 백번 양보하여 잘못된 육아는 수정을 하지만 자녀를 향한 관계의 노력으로 예쁘게 봐주고 말아야지. 참는 자에게는 복이 있다는 성경말씀과 참을 인자 세 번이면 화를 면한다는 옛 성인들 말씀을 기억하는 수밖에. 이렇게 점점 엄마를 존중하지 않는 듯한 아빠의 사랑의 작대기들이 마음에 들지만은 않았고 부자의 애정 넘치는 광경을 진심으로 인정하면서 남편의 마음 씀씀이가 내심 아쉬웠다.


그러나 쿨하게 인정 인정. 가족이지만 나는 나고 너는 너다. 나와 너의 생각 방식은 다르고 '따로 또는 같이하는' 삶 또한 다르지 아니한가. oo이는 엄마도 좋아하고 아빠도 좋아한다. 마음속에 있는 엄마와 아빠에 대한 사랑을 굳이 눈에 보이게 가르지 않는 현명하고 속 깊은 어린이다. 'oo아 엄마는 너를 좋아해. 하지만 엄마가 너를 좋아하는 만큼 똑같이 그 사랑을 돌려받지 않아도 된단다. 엄마는 개인적으로 대인배를 지향한다.' 나는 이렇게 억지 시원시원함을 지향하며 스스로 마음을 정리했다.




tv와 인터넷에서 용감하게 세계여행을 함께하는 빼빼 가족이라 불리는 분들의 삶을 엿 본적이 있다. 가족은 그런 것 같다. 그분들을 보고 나서 마음속에 떠오르는 한 단어는 세계여행도 날씬함도 도전도 아닌 가족이었다. 아이가 조금씩 커나가면서 나름 내가 느끼는 가족에 대한 생각도 하나씩 하나씩 정리하게 된다.


관계의 치우침보다는 관계의 소중함

엄마가 좋은지 아빠가 좋은지의 단순한 분열과 경쟁구도(ㅋㅋㅋ)가 시방 문제가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가족의 중요한 점 중 하나는 어느 가족 구성원 하나 관계의 치우침 없이 소중한 존재임을 서로 확인시켜 주는 것이다. 관계의 치우침은 결국 건강하지 못한 관계를 낳는다. 가족은 함께여서 마땅히 행복감이 더해지는 관계이기도 하지만 함께여서 오히려 불행한 경험을 겪어야 하는 반대의 경우도 있다. 어떻게 인생이 그리고 가족이 즐겁기만 하겠는가..사람은 인생을 배우기기 위해 떠나온 <지구별 여행자>라는 류시화 님의 책이 떠오른다. 그리고 오늘도 나는 엄마라는 가족 구성원의 존재를 배우기 위해 떠나온 <가족별 여행자>라고 대입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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