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거 꽂아줘!

아빠까지 퇴근을 일찍 한 날 갈등이 일어났다

by 육아와 생각

"따르릉"

오후 3시 6분 아무에게서도 전화가 걸려오지 않을 법한 시간에 어린이집 선생님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집에 혼자 계시는 할머니가 별안간 전화를 걸어서 그동안 못 해왔던 속앓이가 깊으셨는지 한참이나 얘기를 하시다 끊으신 뒤였다. 네 네하는 공감의 반응을 붙여드리고 꼭 찾아뵙겠다는 약속을 드리고 통화를 마쳤다. 통화내용은 머릿속에서 맴맴 돌았지만 잠시 접어두고 불 앞에 끓고 있는 노란 카레를 바라보고 있던 참이었다. 약간의 긴장과 다급함이 묻어있는 선생님 목소리를 의아해하며 전화를 건 용건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어머니 oo이를 바로 오셔서 데려가실 수 있나요? 같은 반에 한 친구가 열이 나고 아파서 집으로 돌아갔는데 집에 가서 자가검사로 코로나 양성이 나온 상태예요."

조금은 놀랐지만 목소리를 가다듬어 아이를 데리고 와서 검사를 받아봐야 하는 상황인지를 물었다. 같은 공간에서 같이 생활하기 때문에 마스크를 모두 착용하고 있었긴 하지만 검사가 필요했다. 원래는 그때의 시점에서 40분 정도를 기다리면 아이가 집 앞에 당도하는 시간인데도 부랴부랴 집과 좀 떨어진 어린이집으로 자동차를 몰았다. 운전을 하고 있는 동안에 주의력과 판단력은 멀쩡했지만 가속페달을 밟고 있는 오른발은 긴장감으로 경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엄마가 어린이집까지 찾으러 와서 신이 난 oo이를 차에 태우고 친구가 아프다는 간단한 설명과 함께 보건소를 찾았다. 혹시 확산세가 심해서 검사를 못 받거나 어린아이를 데리고 줄을 오래 서야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했지만 다행히 사람들이 많지 않았고 검사 결과는 음성이 나와서 남편과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집으로 돌아왔다. 뜻밖의 소식으로 엄마, 아빠, oo이가 동시에 귀가를 하게 된 날 아빠 육아의 시행착오가 일어나게 되었고 그것의 결과로 세상 억울한 울음을 터트리며 악다구니를 쓰는 장면이 연출되고야 말았다.


저녁을 함께 지어먹고 엄마는 주방에서 식사 정리를 하였고 아빠는 언제나처럼 아이 양치를 시켜주려 하였다. 남편은 아직까지도 아이를 대할 때 다정한 목소리로 애정을 표현하는 시점인지 단호한 목소리로 규칙의 중요성을 알려줘야 하는 시점인지 구분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충분히 아이가 꾸물거려 이제는 진짜 양치를 하러 가자고 단호하게 얘기를 해야 하는 시점에도 부드러운 목소리로 "아빠가 oo이 조금만 더 기다려줄게 이제 양치 좀 하자~"


내가 들어도 양치를 확실히 하자는 얘기인지 알 수 없고 그러면 양치를 언제 한다는 말인지 모를 말이었다. 그렇게 꾸물거리는 양치시간이 반복되었고 아이는 아빠의 양치하자는 말은 바로 듣지 않아도 되는 종이호랑이급 발언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남편은 아내의 육아 조언 따위는 싫어하는 태도를 보였고 본인의 취향을 존중해 잔소리쯤으로 들리는 조언은 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정 안 되겠다 싶었는지 아빠 말을 잘 안 듣거나 소리를 지르는 행동을 하면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를 들먹이다가 조금 더 강한 수가 필요했는지 아이가 좋아하는 장난감들을 하나씩 하나씩 버릴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면 아이가 질색을 하며 아빠의 말에 따랐기 때문에 효과는 있어 보였다. 그리고 얼마 후 조금 더 강한 수가 필요했는지 나무보드의 말을 꺼내어 꽂더니 무엇을 잘하면 어떻게 하고 무엇을 못 하면 어떻게 한다는 장황한 설명을 해댔다. 무슨 상벌의 개념인지 옆에서 들어도 확실히 남는 말이 없었다. 대충 노란 말을 꽂아놓았는데 안 좋은 행동을 하면 노란 말을 빼겠다고 했다.


그렇게 오늘도 oo이는 양치를 하자는 아빠의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고 바닥에 앉아서 쌓기 나무만 열중을 했다. 이때다 싶은 아빠는 나무보드 계획을 실행하고야 말았다.

"너 아빠 말 안 들었으니까 노란 말을 확 빼버릴 거야." 노란 말은 없어지고 말았다.

그때부터 아이는 세상 억울한 일을 당한 희생자가 되어서 울고불고 난리가 났고 얼굴에는 눈물범벅이 되어 노란 말을 꽂아 달라고 스트레스를 높이며 악을 쓰기 시작했다. 아빠는 그럼 양치를 먼저 하고 오라고 원칙을 강요했고 한없이 좋았던 아빠가 갑자기 원칙주의자가 되어서 자기를 압박하자 아이는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였다. 아이는 아직 갈등 상황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막다른 골목에 이른 상황은 일단 중지시키고 양육자는 태도를 바꿔 아이에게 해결방법을 제시해 주는 게 맞는 것 같으나 아빠는 양치를 하고 오라는 원칙을 고수하였다. 아빠의 급작스러운 태도변화에 심적으로 크게 당황해버린 아이는 생각하는 능력을 잃어버렸고 울음과 괴성이 집안을 가득 채우고 말았다.

"여보 그렇게 해봤자 지금은 애가 양치 안 해. 왜 그걸 고집해?" "oo아 울지 말고 아빠랑 같이 양치하자고 해." 남편은 내 말이 또 듣기 싫었나 보다.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울고불고를 하고 오늘의 양치를 마쳤고 상황은 종료가 되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예전의 꽁냥꽁냥 부자가 되어 로봇을 함께 만들고 낄낄낄낄 웃어댔고 티라노사우루스 노래를 함께 부르며 이 밤의 부자 화해 모드는 깊어졌다. 아빠는 좀 전의 억울한 듯 괴성 소리가 가득 찼던 시간을 마음에서 풀어놓지 못하고 아이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담아 놀이시간의 연장을 기뻐하며 애써 수용의 태도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육아는 단호한 목소리가 꼭 필요하다

갈등의 불씨는 완전히 사라졌을까?

오늘과 비슷한 갈등이 내일 또 일어나는 것은 아닐까?

육아는 경험이 왕도인 듯싶다.

아빠의 육아를 아직은 한 발짝 옆에서 지켜보고만 있다.

부모의 부모 다움은 한순간에 완성된 결과물이 아니라 아이를 키우면서 만들어가는 과정이 아닐까?

오늘도 육아 영역에 나는 매듭을 미루었고 마침표는 찍어두지 않고 남겨놓았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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