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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memike Feb 14. 2022

비선형적 사고, 그리고 언어


이 글은 테드 창의 소설 ‘당신 인생의 이야기’을 원작으로 한 영화 ‘컨택트’에 대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날이  이야기의 
시작이라고 생각했었어.
추억은 이상한 거야.
생각과는 다르게 기억이 .
우린 너무 시간에 매여있어.
 순서에



영화는 주인공 루이스 박사의 대사로 시작한다. 루이스 박사는 언어학자이다. 세계 곳곳에 12개의 우주선이 착륙하고, 정부는 비밀리에 언어학자 루이스와 이론 물리학자 이안을 우주선 앞에 차린 연구소로 불러들인다. 루이스와 이안의 임무는 7개의 발이 달린 외계인, 헵타포드(hepta-pod)가 지구에 온 목적을 알아내는 것이다. 원형으로 먹물을 흩뿌려 놓은 듯한 도형 문자를 쓰는 헵타포드와 소통을 하기 위해 루이스와 이안은 외계인에게 영어를 가르치기로 한다.



외계인 영어 수업을 다루는 이 영화는 플롯상 대칭적 구조를 이루고 있다. 영화의 시작부터 루이스는 어떤 아이에 대한 단편적이고 불연속적인 기억을 떠올린다. 아이는 루이스에게 단어에 대해 질문한다. 하지만 이를 기억이라고 할 수 있는지는 모호하다. 루이스에게는 현재 아이가 없기 때문이다. 아이에 관한 꿈 같은 기억 회상 장면은 영화 중간중간 삽입되어 있다. 소통의 측면에서 헵타포드와 인간 루이스, 아이와 엄마 루이스의 관계는 유사하다. 전세계 모든 엄마가 그러하듯이 엄마는 갓난 아이에게 손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엄마’라고 반복하여 말한다. 마찬가지로 헵타포드에게 루이스는 헵타포드와의 첫 대화에서 자신을 지칭하며 ‘human’이라는 글자를 보여준다.



나라마다 언어와 문자는 사뭇 다르다. 나는 사과를 먹는다 – I eat an apple. 우리말과 영어는 동일하게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글을 쓰지만 목적어와 서술어가 나오는 순서는 다르다. 불어에는 단어에도 성별이 있다. 언어는 문화를 대변한다. 나아가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의 사고, 인지 방식을 드러내기도 한다. 극중 헵타포드가 쓰는 문자는 시제와 앞뒤가 없다. 인간이라면 긴 문장으로 답할 법한 질문에 헵타포드는 하나의 도형 문자로 대답한다. 이를 극중에서는 ‘비선형 철자법’이라고 칭하며, 이안은 과연 그들이 사고 또한 비선형적으로 하는지 궁금해한다.



영화의 후반 루이스는 다시 기억 같은 꿈을 꾼다. 꿈에서 아이는 점토로 사람 둘과 헵타포드를 만들며 엄마와 아빠가 동물과 이야기한다고 말한다. 헵타포드는 루이스에게 ‘루이스는 미래를 본다’고 말한다. 꿈 속의 아이는 루이스와 이안의 아이다. 다만 아직 태어나지 않았을 뿐이다. 루이스가 미래를 볼 수 있기 때문에 아이와 관련된 장면들이 실제 경험했던 것처럼 선명하다. 헵타포드의 언어를 이해한 루이스는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사고를 할 수 있는 헵타포드처럼 생각하고, 사물을 인지할 수 있게 된다. 헵타포드와의 전쟁이 일어나기 직전 미래를 본 루이스는 기지를 발휘해 전쟁을 막는다.


언어는 사고의 방식, 인지의 방식을 대변하기도 한다.


사실 루이스의 대사로 시작한 처음부터 영화는 비선형적이었다. 영화는 시간상으로 미래에서부터 시작했다. 미래와 과거, 헵타포드와 인간, 아이와 엄마, 영화는 세 개의 관계를 다룬다. 시제와 앞뒤가 있는 언어로부터 벗어나는 순간 사고와 인지의 영역은 확장될 수 있다. 2차원 세계의 사람이 3차원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인간은 헵타포드의 비선형적인 시간을 이해하지 못한다. 반면 헵타포드를 이해한 루이스는 더 이상 시간과 순서에 매여 있지 않다.



논리는 순서와 연관이 많다. 논리는 세상을 이해하는 도구다. 다만 세상은 인간 인지의 범주를 넘어서기도 한다. 인지를 위해서는 순서에 민감할 수 있어야한다. 하지만 순서에 매이는 순간 인지 영역에 한계가 생긴다. 때로는 논리와 순서, 시간에 매이지 않는 비선형적 사고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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