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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여름 Feb 04. 2021

편안함의 차이

이토록 다름.

 나는 집에 들어오면 묶었던 머리를 푼다. 무언가 일을 할 때나 아이를 돌 볼 때 집중할 때에 머리를 묶었다면 밤이 되어 쉴 때에는 묶었던 머리를 풀어둔다. 음식을 먹거나 책을 읽거나 글을 쓸 때, 허리춤까지 오는 긴 머리를 묶는 것이 훨씬 편 할 것 같이 생각될 수도 있겠으나 나는 머리를 푼다. 하루 종일 묶여 있던 그래서 팽팽히 당겨졌던 머리카락을 해방시켜 주는 기분으로, 그리고 단단하게 조였던 두피를 놓아주는 기분으로 말이다.


밤이 되고 머리를 풀면 그렇게 자유로울 수가 없다. 그렇게나 편안할 수가 없다. 머리를 푼 것만으로도 해방되고 쉼을 느낀다. 나른해지고 흐트러진다. 나는 그래서 모두 나와 같을 줄로만 알았다.


어느 날 단골 헤어숍에서 머리 자르며 친한 디자이너 분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분은 집에 들어가면 머리를 묶는다는 것이다. 자신의 얼굴에 자신의 목에 한가닥의 머리카락도 용납하지 못한다면서 머리를 싹싹 쓸어서 매우 바짝 묶어 올린다고 했다. 그래야 진짜 편하다고 말이다.


나는 그 반대라고 말하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라 묻는 것이다.

 “언니 안 불편해요? 머리 풀고 있으면 너무 불편하잖아. “


오히려 내가 되묻고 싶었다.
‘언니 안 불편해요? 머리 묶고 있으면 너무 불편하잖아요.’


어쩜 이토록 다를까.


사람은 저마다의 편안함이 있다. 저마다 느끼는 편안한 상태가 다르다는 것에 놀란 내가 이상한 것이다. 그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리라.


아무것도 나를 방해하지 않는 상태, 머리카락 한 올조차도 나를 건드리지 않는 상태를 편안하다고 느끼는 이와 나를 옥죄는 모든 것으로부터의 해방, 머리카락들 조차도 제멋대로 흩날리며 자유로이 풀어헤쳐진 상태를 가장 완벽한 편안함으로 느끼는 이.


‘편안함’이란 일상의 단어이지만  ‘편안함의 상태’는 그 누구도 같지 않구나. 이토록 정반대일지도 모르니 말이다.


내게 익숙한 것 내게 편안한 것을 다른 이에게 강요하며 살지는 않았는지, 내가 당연하다 느끼는 것에 소중한이를 욱여넣으려 하지는 않았는지. 어쩌면 살아가며 그런 내식대로의 당연함 편안함을 자애로운 척 베풀며 살아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나이가 들어가며 좋은 점이 있다면, 한 살을 더 먹음으로 한 살어치의 생각과 한 살어치의 성숙이 있다는 것이리라. 때로는 근소한 차이로 때로는 성큼성큼 앞서기도 하나 어찌 되었든 눈곱만큼 좁쌀 하나만큼이어도 다행이다 싶은 마음이 든다.


각자의 스타일대로 각자의 방식으로의 편안함.

그것을 지켜주며 살아가야지.

다른 이의 마음을 모두 헤아릴 수 없다면 그저 강요하지 않는 것 당연시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충분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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