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여름 Jan 22. 2021

아이와의 산책길의 마법

익숙함의 필터를 걷어내고.

아이와 산책을 다녀왔다.

매일 산책길에 오르던 여름 그리고 가을과는 달리 최근엔 산책을 거의 나가지 못했다. 코로나의 거리두기 단계가 나날이 오르고 같은 동네 안에서도 확진자수가 하나 둘 늘어나자 아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는 것보다 안전을 지키는 것이 더욱 중요해진 탓이다. 또 하나의 이유는 겨울이라는 것인데, 추워서 밖에 나가기 어려운 것보다 지금 감기에 걸려서 열이라도 난다면 병원을 찾아 치료받기가 어려워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것 역시 코로나로 인한 것이었다.


아이가 산책을 나가는 것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아이에게 '산책'이라는 것이 '밖'이라는 것이 주는 배움이 얼마나 큰지. 또 밖이 주는 해방감은 아이뿐 아니라 나에게도 절실했지만 선뜻 그것을 선택하지 못했다. 그렇게 여러 달이 지나고 있었다.


버티다 버티다 뒤쳐나갔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아이와 잠깐이라도 바깥공기를 마셔야 우리가 행복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 날이었다. 집안에서 아이와 싸우다 싸우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은 날이었다. 우리는 한마음 한뜻으로 마스크로 얼굴을 꽁꽁 가리고 밖으로 나갔다.


평소 가위를 사용하는 나의 모습을 본 아이가 자신도 해보고 싶다며 너무 간절해 하기에 이날은 아이와 함께 가위를 사러 가자며 집을 나섰다. 그러나 바이러스를 향한 두려움으로 아이를 유모차에 태웠다. 혹여 문구점에 사람이 많을까 하는 염려 때문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손을 잡고 걸어서 문구점 한 바퀴를 함께 돌고 아이가 말도 안 되는 무언가를 사고 싶다며 떼를 쓰는 모습을 난생처음 구경하기도 하고 그러다 아이가 원하는 그 무언가를 못 이기는 척 사주는 그런 일들을 해보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현실은 방풍커버까지 바짝 씌운 유모차 안에 있는 아이의 신세계를 만나 반짝이는 눈을 바라보는 것으로 대신했다. 유아용 안전 가위를 사서 집으로 오는 길에 놀이터에 들르고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 짧은 길을 걷는 동안 우리가 산책을 해야 하는, 아이와 밖을 나와야 하는 이유를 새로이 발견한다.


집이라는 좁은 공간 안에서 다른 배경이 없는 그곳에서 매일 나는 아이를 줌 해서 들여다보고 있었다. 아이와 나 둘만이 서로를 바라보며 익숙함이라는 녀석의 손에 아이의 오늘을 쥐어준다. 그렇게 익숙함의 필터에 갇히고 만다. 그러니 아이는 내게 너무 커다랗고 커다랗게 보여 마친 다 큰아이 같아져 버린다. 아이가 다 큰 것 같아서 매일을 함께 뒹굴다 보니 이젠 친구 같아져 버려서 '이렇게 많이 자랐으면서 왜 이런 행동을 아직 하는 거야' 하고  매일 한숨짓고 꾸짖는 날의 연장선이었다. 아이를 이해하려 하기보다 이해시키려 하고 아이를 지켜주기보다 바꾸려 한다. 아이의 사랑스러움에 무뎌져 버린다.


그러나 정작 산책하며 바라본 아이는 작고 작았다.

커다란 전봇대 아래, 높다란 나무 아래, 널찍한 벤치 위에, 커다란 자동차 옆을 걷는 아이는 집에 있던 그 아이가 아니었다. 그 아이보다 너무 작고 작았다. 아직은 조금 뒤뚱대는 걸음이 남아있었고 그 어색한 걸음으로 어설프게 뛰는 시늉을 하는 아이는 아직 너무도 아기 었다. 그렇게 다시 조그마해진 아이를 바라보고 나니 그새 또 가슴이 뭉클한다. 그동안 집에서 줌으로 보느라 다 큰 아이 대하듯 한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아니 한심했다. 다그치고 답답해하던 내 모습이 솟아올라 나의 마음에 돌을 던진다. 아이는 여전히 작고 작았고 아이는 여전히 그저 보살핌이 필요한 오직 사랑이 필요한 연약한 한 생명이었다. 그 어느 곳에도 무해하며 존엄하고 고유하다.


한걸음 물러서서 보는 것.

고유한 그 자체를 바라보려면 한걸음 아니 두세 걸음 정도 떨어져 수많은 풍경 속 아이를 타인으로서 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산책은 그 소중한 관점을 내게 되돌려주었다. 줌 해두었던 내 눈과 내 마음을 제자리로 돌려놓을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래 이 자리가 아이의 자리지. 이 자리가 나의 자리지.


품고, 헤아리고, 사랑하고 아직은 그것만이 아이를 향한 유일한 도움이지.


그렇게 산책길의 배움은, 자연의 가르침은 끝이 없다. 결국 자연이 나를 성장시키고 아이를 빚어나간다.


-아이가 배우는 것인지 내가 배우는 것인지 모를 아이의 산책길에서.






매거진의 이전글 산책의 단 맛.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